자동차 대상 건보료 폐지... 330만 가구, 年 30만원 덜 낸다
경기도에 사는 A(68)씨는 은퇴 후 월 175만원의 연금 소득으로 생활한다. 재산은 5억2000만원 상당 아파트와 SUV 차량 한 대가 전부다. 건강보험 지역 가입자인 그가 매달 내는 보험료는 약 21만원이다. 그런데 이르면 올해 3월부터는 약 13만원만 납부하면 된다. 월 8만원 정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당정(黨政)이 5일 건보 지역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을 낮춰주기 위해 건보료 개선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과 보건복지부는 이날 국회에서 당정 협의회를 열고 ‘건강보험 지역 가입자 재산·자동차 보험료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지역 가입자가 내는 건보료 가운데 자동차 보유에 따른 보험료는 도입 35년 만에 폐지한다. 부동산 등 재산 보유에 따른 부과분은 기본 공제를 현행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확대해 건보료 부담을 낮추는 내용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국무회의에서 “재산과 자동차에 부과된 과도한 보험료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다”며 대책 마련을 주문한 지 열흘 만에 나온 발표다.
이에 따라 자동차·재산 관련 건보료를 내고 있는 353만 가구 중 333만 가구(94.3%)가 월평균 2만5000원, 1년에 약 30만원 건보료를 덜 낼 것으로 보인다. 당정은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을 개정해 이르면 오는 3월 납부하는 2024년 2월분부터 바꾼 건보료 체계를 적용하기로 했다.
건강보험 가입자는 직장 가입자(1989만명)와 피부양자(1691만명), 지역 가입자(910만 가구·1463만명)로 나뉜다. 그런데 직장 가입자는 소득만을 기준으로 건보료가 부과되는 반면 지역 가입자의 경우, 소득은 물론 부동산 등 재산과 자동차를 가진 사람에게도 건보료를 물렸다. 직장과 지역 가입자 간 형평성·공정성 논란이 제기돼왔다. 특히 은퇴 후 일정한 소득 없이 노후를 보내고 있는 고령층에게는 기존 건보료 체계가 생계에 상당한 부담이 됐다는 지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재산에 건보료를 부과하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일본이고, 자동차에 부과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뿐이다.
부산에 사는 B(67)씨는 3년 전 은퇴 후 2022년형 2497cc 그랜저 차량(가액 4000만원)을 소유하고 있다. 연금 100만원과 2억원짜리 작은 아파트가 은퇴 재산 전부다. 그런데 중형 차량이 있다는 이유로 한 달에 약 3만2300원의 건보료를 추가로 내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건보료 개편으로 2월분부터는 내지 않아도 된다. 1년에 39만원 정도를 아낄 수 있는 것이다. 강원도에 사는 자영업자 C(53)씨도 2023년형 3470cc 카니발 차량(가액 6000만원)을 갖고 있어 월 4만5200원 더 내고 있다. 건보료 개편으로 1년에 54만원을 절약하는 것이다. 현재 자동차 보유를 이유로 9만6000가구가 건보료를 더 내고 있는데, 앞으로는 이들의 건보료가 평균 월 2만9000원 인하된다고 보건복지부는 밝혔다.
‘자동차 건보료’는 35년 전인 1989년 도입됐다. 1600cc 이상 차량 또는 가액 4000만원 이상 차량에 부과해 오다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2년 제도를 손질해 가액 4000만원 이상 차량에 부과하고 있었다.
경기도의 자영업자 D(40)씨는 과세표준 2억4000만원 상당 주택을 갖고 있어 재산 건보료로 월 5만5800원 더 내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정부가 ‘재산 건보료’의 기본 공제를 현행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리면서 추가분을 안 내도 된다. 1년이면 67만원을 아낄 수 있다. 이번 개편으로 연금 소득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고령층 중 갖고 있는 집 한 채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로 적지 않은 보험료를 부담해야 했던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재산 건보료를 내는 지역 가입자 353만 가구 중 330만 가구의 재산 건보료가 평균 월 2만4000원 인하될 것으로 예상된다.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는 소득에 따른 보험료율에 맞춰 건보료를 낸다. 그러나 지역 가입의 경우 소득에 따라 건보료를 내는 것은 물론 재산(전·월세 포함)과 자동차를 가진 사람은 건보료를 추가로 내야 한다.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소득 파악이 어려웠던 과거엔 자동차 등을 토대로 소득 수준을 추정해 보험료를 부과하는 게 어느 정도 타당했을지 모르나, 오늘날 기존처럼 재산과 자동차에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식은 불합리하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라고 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건보료는 소득에만 부과되는 것이 옳고, 재산 부과분도 자동차 부과분처럼 폐지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이번 제도 개편으로 건보료 전체 수입은 연간 9831억원 줄어들 전망이다. 지난해 지역 가입자를 통한 건보료 수입(약 9조9000억원)의 10%쯤 된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수입 감소는) 건강보험 지출 효율화를 통해 충분히 보전 가능하다”면서 “곧 발표할 건보 종합 계획에서도 지출 효율화 방안을 제시할 것이고, 추가로 정부·건보공단·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기획단 논의를 거쳐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일각에선 1조원에 가까운 건보료 수입 감소를 지출 효율화로 메울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