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범인은 누구?… 14년만에 재심 결정

조홍복 기자 2024. 1. 5.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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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시골마을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의 피고 부녀는 2010년 2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순천지원 형사1부(재판장 홍준호)는 당시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로 최모(당시 59세)씨와 정모(당시 68)씨를 살해한 혐의(존속살해 등)로 구속기소된 최씨의 남편 백모(당시 60)씨와 막내딸(당시 27)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그때 “유죄를 입증할 뚜렷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선 자백의 신빙성이 명확해야 한다”며 “백씨 부녀의 검찰 진술은 신빙성을 인정할 만한 정황증거와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고 무죄 선고 배경을 밝혔다.

1심과 달리 2011년 11월 2심과 2012년 3월 대법원 판결은 정반대였다. 존속살해, 살인,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백씨(현재 74)와 막내딸(현재 41)은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 형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반전이 일어났다. 지난 4일 12년 이상 살인죄로 복역 중인 부녀가 석방된 것이다. 광주고등법원이 이날 대법원 확정 판결 11년 10개월 만에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에 대해 재심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사건 발생 14년 4개월 만이었다.

이번 재심 결정으로 2심과 대법원 판결은 뒤집혔다. 재심은 이미 확정된 판결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 판결을 취소하고 다시 재판을 받게 하는 형사 제도다. 부녀는 형집행이 정지됨에 따라 즉각 석방됐다.

2009년 초여름 전남 순천 황전면 용림마을에서 발생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이 재심 결정으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피고인 백모(왼쪽)씨가 지난 4일 오후 재심 결정에 따른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 전남 순천교도소에서 나오고 있다./뉴스1

◆범행 도구 ‘막걸리’ ‘청산염’ 구입경로 불분명

범행 도구로 사용된 ‘막걸리’와 ‘청산염’ 구입 경로가 논란의 중심이었다. 검찰은 “백씨 부부는 2009년 7월 2일(장날) 순천 아랫장 한 식당에서 국밥을 함께 먹은 뒤 750mL 막걸리 3병을 샀다”고 말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그 식당 장부와 식당 주인 진술로 미뤄볼 때, 식당에선 900mL 막걸리만 취급했다”고 말했다.

청산염 구입경로도 밝히지 못했다. 아버지 백씨는 검찰 조사에서 청산염 구매 시기에 대해서 “4~5년 전” “언제인지 몰라”로 오락가락 진술했다. 검찰은 “백씨는 1992년 해충 박멸을 위해 청산염을 구입한 뒤 이를 범행에 이용했다”고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백씨가 청산염을 구입했다는 자전거 가게의 주인은 1999년 사망한 만큼 진술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특히 청산염은 공기와 만나면 독성이 제거되기 때문에 백씨 진술대로 검은 비닐과 신문지로 보관한 청산염은 범행 사용 전 이미 독성을 잃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부녀간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서도 입증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순천, 문제의 '독극물 막걸리'./뉴시스

◆범인은 누구인가… “마을 주민 아니면 제3의 인물”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인가. 사건 초기 용의자는 백씨 집에서 10m 떨어진 곳에 사는 이웃 배모(당시 51)씨였다. 문맹인 백씨는 1남 3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지적장애가 있는 막내딸은 2008년 11월부터 2009년 5월까지 6차례 강간과 성추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지목한 가해자는 배씨였다. 유력 용의자 배씨가 이 사건을 덮으려고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를 백씨 집에 두고 갔다고 경찰은 봤다. 하지만 경찰은 증거를 찾지 못했고, 배씨는 2009년 8월 25일 무혐의로 풀려났다. 경찰은 “마을 주민이 아니라면 제3의 인물이 범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검찰이 자백 강요, 피고에 유리한 증거 제출 안해”

재심 개시를 결정한 광주고법 형사 2-2부는 변호인의 “경찰 초동수사 당시 수집된 사건 화물차 관련 방범카메라(CCTV) 자료가 새로 발견된 무죄의 명백한 증거”라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검사가 피의자 심문 당시 유도 신문을 했다”고도 밝혔다.

백씨 부녀 법률 대리인 박준영 변호사는 “검사가 자백을 강요하고, 부녀에게 유리한 증거를 재판에 내지 않았다”며 “수사 기록을 분석한 결과 담당 검사와 수사관이 자백을 강요하며 부녀의 혐의 부인 과정을 빼고, 하지 않은 진술을 조서와 의견서에 허위로 기재했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에 따르면, 검사는 당시 재판에서 백씨가 오이 재배를 위해 청산가리를 얻어 보관했고, 이를 범행에 활용했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검사가 ‘오이 농사에 청산가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농부 50여 명의 진술을 확보해 놓고도 의도적으로 법원에 내지 않았다”고 했다.

또 그는 “검사가 압수한 플라스틱 숟가락에서 청산염이 검출되지 않자 압수 조서와 감정 결과도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다”며 “경찰이 백씨 부녀의 행적을 파악하기 위해 도로와 버스 CCTV 영상을 조사해 딸만 막걸리 없이 버스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도 검사가 ‘CCTV 기록이 없다’고 거짓말하며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백씨 가족도 “검찰이 강압수사를 했다”는 입장이다. 백씨 아들은 “문전옥답 일구는 재미로 살던 아버지와 막냇동생이 어머니를 죽였다고는 아직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남 순천 황전면에서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를 마시고 숨진 최모씨의 집 전경./조선DB

당시 수사 검사를 비난하는 의견도 나왔다. 전남 여수을 선거구 출마를 준비 중인 더불어민주당 조계원 예비후보는 5일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 광주지검 순천지청 차장검사였던 김회재 의원은 백씨 부녀를 가족을 살해한 파렴치한 범죄자로 낙인찍었다”며 “검찰은 백씨 부녀를 기소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고 밝혔다.

조 예비후보는 “김 의원은 차장검사로서 직접 1심 판결(무죄)에 대해 부당하다는 의견까지 제시하며 브리핑을 했다”며 “이 사건 수사와 공소 유지에 상당한 관여를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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