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이중수사·여론조작 가능성" 지적···총선 앞두고 정치논란 차단
"문제 있는 법안 거부 헌법상 의무"
정부 이송 하루 만에 재가 마무리
'9일 재표결 목표'로 속도전 펼쳐
野 "군사작전하듯 거부" 지연작전
대통령실 "여야 합의땐 감찰관 지명"
윤석열 대통령이 쌍특검법안(50억 클럽 특검법·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정부로 이송된 지 하루만인 5일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총선을 앞두고 특검으로 불거질 수 있는 정치적 논란을 하루라도 빨리 잠재우려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은 쌍특검법이 초래할 수 있는 이중 수사 가능성, 총선 시기 여론 조작 우려, 불필요한 사법권 차출 등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또한 쌍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대통령의 헌법상 의무라고 강조했다. 이는 김건희 여사 관련 특법법에 대해 배우자인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이해 충돌’이라고 주장하는 야당의 논리를 반박하려는 차원으로도 보인다.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이날 오전 한덕수 국무총리가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쌍특검법에 대한 재의 요구 건의안을 의결한 직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윤 대통령이 국회에 두 가지 총선용 악법(특검법)에 대한 재의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오전 9시 국무회의가 시작한 뒤 심의·의결과 윤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공식 발표하기까지 약 40여 분만에 모든 절차를 마쳤다. 이는 윤 대통령이 앞서 양곡관리법·간호법·노란봉투법·방송3법 등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결정하기까지 법정 기한(정부 이송 후 15일) 동안 여론 수렴 및 숙고 절차를 거쳤던 것을 감안할 때 그야말로 속전속결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대통령실은 이미 지난달 28일 쌍특검법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직후 “정부로 이송되는 즉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예고한 상태였다. 이는 거부권 행사 시기가 늦어질수록 야당의 특검법 ‘재가결’ 추진에 맞설 ‘표 관리’가 어려워진다는 점을 고려한 행보로 보인다. 대통령의 재의 요구를 받아 국회로 돌아가는 특검법이 다시 본회의를 통과하려면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현재 국민의힘 의석수는 112석이어서 13명 이상의 여당 의원이 이탈할 경우 특검법의 재가결을 저지하기 어렵게 된다. 총선 일정에 다가갈수록 여당 내 공천 방향을 놓고 일부 불만이 터져나올 수 있는데 이를 계기로 당내 표 관리가 되지 않을 우려가 있어 대통령실 입장에서는 가급적이면 조기에 거부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국민의힘이 9일 본회의 소집을 요구한 것도 이날 특검법 재표결의 속전속결식 부결을 추진하려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이에 야권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비판하며 ‘지연작전’에 돌입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윤석열 정부가 마치 군사작전을 펼치듯 거부권을 의결했다”며 “(윤 대통령은) 국민을 버리고 가족을 위해 거부권을 남용한 최초의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태호 민주연구원장은 “대통령의 연이은 거부권 행사는 국회의 입법권을 무력화시키는 행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권한쟁의 심판’ 카드도 꺼내들었다. 윤 대통령이 자신의 부인이 연관된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이해 충돌 소지가 있다는 취지다. 헌법재판소의 해석이 어떻게 나오든 9일 특검법 상정을 거부하며 시간을 끌 수 있다는 점을 겨냥한 전략이다. 이에 국민의힘은 “쌍특검법이 총선용 민심 교란 악법이듯 권한쟁의 심판 청구 역시 악의적 총선 전략”이라고 거세게 반발했다.
대통령실 역시 이해 충돌 논란를 의식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문제가 있는 법안을 거부하는 것은 헌법상 의무”라고 강조했다. 야권이 합의 처리 관행을 무시하고 특검법안을 강행한 데다 총선을 앞두고 특검이 진행될 경우 특정 진영에 유리한 수사 진행 상황이 유출될 개연성이 높아 총선에서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논리다. 이 실장은 “이미 재판 중인 관련자들이 이중으로 수사를 받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통령실이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특검 논란과 관련해 특별감찰관 지명과 제2부속실 설치를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여야가 합의해 특별감찰관을 추천한다면 우리는 지명할 수밖에 없다”며 “다만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북한인권재단 이사 선임을 수용해야 특별감찰관 지명에 협조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원래 그런 입장이었다”고 설명했지만 예민한 시점에 관련 제도를 길게 설명한 것 자체가 기존 입장에서의 변화가 관측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 부인 및 가족과 관련된 업무를 처리하는 제2부속실에 대해서도 기존 방침과 달리 설치 가능성을 열어두는 답변을 내놓았다.
주재현 기자 joojh@sedaily.com전희윤 기자 heeyou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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