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에 ‘관우’를 잃었다…그럼에도 다시 날아오르길[이상한 동물원①]
성인이 되면서 마음이 복잡하면 들르는 나만의 장소가 있다. 수의대 시절에는 오토바이를 몰아 도심을 벗어났다는 기분이 들 때 나타났던 초등학교 분교에 한참을 앉아 있다 오고는 했고 동물원 입사 초기에는 지금 동물병원이 들어선 자리에서 마음을 잠시 쉬었다 사무실로 내려왔다.
지금은 청주 미호강이 그런 곳이다. 겨울 미호강은 북쪽에서 오는 새들로 붐빈다. 월동을 마친 봄이면 청주보다 남쪽에서 겨울을 보낸 새들이 번식지로 올라오면서 쉬는 중간 기착지이기도 하다. 대청댐이 담고 있는 담수가 청주 도심을 지나는 무심천, 다시 미호강과 섞여 흐르면 금강이 된다. 겨울철 금강하구는 수많은 새가 동시에 날아올라 군무를 이루는 곳이다.
맑고 찬 어느 겨울날 미호강에서 큰 새를 만났다. 맹금류로 보이는 큰 새가 날자 겁먹은 주변 물새와 비둘기들이 같이 날아올랐다. 차 안에 상비해둔 쌍안경으로 올려다보니 흰꼬리수리였다. 그곳에 있었으나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사랑의 시작이라고 했던가? 집에 와서도 미호강의 흰꼬리수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오랜 세월 동물원에서 박제처럼 앉아 있는 흰꼬리수리 관우가 겹쳤다. 관우를 날게 해주고 싶었다.
수소문 끝에 맹금류 야생방사훈련 전문가를 섭외했다. 관우를 훈련해보고 싶다는 동물복지사(구 사육사)가 전문가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몇달 동안 관우는 복지사의 손에 있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친화훈련을 했다. 익숙해진 후로는 야외에서 나는 훈련을 받았다. 관우가 나는 모습을 보며 낮에는 동물원 주변을 날아다니다 밤에는 동물원에 들어와 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관우의 훈련 적응은 예상보다 빨랐다. 긴 시간 갇혀 지낸 대형 맹금류는 가슴근육이 퇴화되어 야생 복귀가 힘들다는 생각이 기우였음을 알았다. 전문가도 구조된 지 얼마 안 되는 다른 흰꼬리수리가 있다면 관우를 길잡이해 함께 자연 복귀도 가능하다고 했다. 오랜 세월 동물원 좁은 케이지가 세상의 전부였던 관우가 저 먼 시베리아에 돌아갈 수 있다고? 몇년 전 동물원 황조롱이와 백로의 방사 경험도 관우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결과적으로 관우의 방사훈련은 실패했다. 야외비행을 하다가 농약에 중독된 비둘기를 먹고 2차 중독이 되었다. 며칠 치료했지만 끝내 죽어서야 바라만 보았던 하늘로 돌아갔다. 관우가 죽은 후 전문가와도 자연스럽게 연락을 끊었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사고였으나 한동안 관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국내로 월동하러 오는 대형 맹금류로는 참수리, 흰꼬리수리, 독수리가 있다. 이들은 시베리아와 몽골에서 어른 새들과의 경쟁에서 밀린 아직 어린 새들이다. 이 중 독수리가 가장 많은데 어린 독수리 몇천 마리가 국내에서 월동한다. 겨울철 수백m 상공을 나는데도 까마귀 크기로 보이고 무리를 지어 바람을 타고 있다면 독수리가 분명하다.
몽골의 봄, 새끼 독수리는 둥지에서 어미가 주는 동물사체(독수리는 사냥을 하지 못하는 청소부 동물이다)를 먹으며 빠르게 성장한다. 4개월 만에 성체 크기가 되면 어미도 더 이상 먹이를 주려 하지 않는다. 망설임은 있지만 둥지 안 모든 독수리들이 그랬듯이 거친 세상으로 뛰어내려야 한다. 몸은 커졌지만 생존에 필요한 기술은 아직 미숙하다. 포식자로부터 안전하게 자신을 지키고 스스로 먹이를 구해 살아가야 한다. 몽골에 혹독한 겨울이 오면서 개체 간 먹이 경쟁은 더 심해진다. 어른 새들이 역시 한 수 위다. 결국 생존을 위해선 새로운 먹이터를 찾아야 한다. 날고 날아 육지의 끝에 다다르니 그곳은 한국이다.
2019년 구조된 독수리에 위치추적기를 달아 청주시 외곽에서 방사했다. 독수리 등에 매단 위치추적기는 2시간마다 좌표를 알려왔다. 1월 말에 방사한 독수리는 충청도 일대를 배회하다 3월 초가 되자 갑자기 북진을 시작했다. 단 며칠 만에 휴전선을 넘고 평양을 지났다. 내몽골로 들어가면서 신호가 잠시 끊겼다가 몽골에 진입하면서 신호가 살아났다. 독수리는 겨울이 올 때까지 몽골에 머물렀다. 북쪽에서 추위가 몰려오자 같은 해 12월 청주로 돌아왔다. 그 후 2년 더 몽골을 오가는 것을 확인했다. 독수리에게는 인간이 쳐놓은 철책과 국경은 의미가 없었다.
추위와 먹이 경쟁을 피해 한국에 오는 어린 독수리들은 사람으로 치면 청소년기이다. 아직 위험에 대한 경험이 없는 청소년 독수리다 보니 많은 사고를 당한다. 가장 많은 원인은 청주동물원 흰꼬리수리 관우와 마찬가지로 농약 중독이다. 그다음이 교각이나 전선 같은 인공구조물에 충돌하는 경우이다. 빠른 속도로 나는 새는 충돌 시 날개 골절은 필연이다. 너구리 같은 육상동물이 심한 사고를 당하면 다리 절단술을 받는다. 포유류는 다리가 하나 없어도 나머지 세 다리로 생활이 가능해 방사되지만, 나는 독수리는 한쪽 날개의 부상이 치명적이다. 봄이 되면 멀리 몽골로 날아가야 하는 독수리는 치료 후에도 완전한 비행 능력을 확인할 훈련 장소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내에는 대형 맹금류의 훈련 장소가 마땅치 않다.
청주동물원은 문화재청 천연기념물 보존사업에 선정되어 국내 최대 독수리 방사훈련장을 만든다. 훈련장은 2024년 설계를 거쳐 2025년 완공되며 농약 중독에서 회복하거나 골절 수술을 받은 독수리가 사용하게 된다. 또 2024년 상반기에는 환경부 생물자원 보전사업으로 외과수술실이 신축된다. 수술실은 수술 부위 오염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무균 시스템과 수술 시 통증을 줄이는 최소침습 수술 장비도 갖추게 되어 독수리의 수술과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김해의 개인동물원에서 구조된 사자 바람이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같은 동물원에서 한 달 전 문화재청의 보호 요청으로 독수리를 데려왔다. 이름도 하늘이라고 지었다. 처음 본 하늘이는 시중에 파는 앵무새장을 본떠 만든 새장에 갇혀 있었다. 바닥에 있는 것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는지 사람이 다가가면 힘들더라도 거꾸로 천장에 매달려 나름대로 최선의 거리를 만들었다. 독수리는 DMZ에서부터 경남지역까지 전국적으로 넓게 분포한다. 고성군에는 일부 지역에서 축산 부산물을 주기적으로 공급해줘 굶주린 독수리가 모여든다. 하늘이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갇혀 지냈는지 모르지만 국내에서 인공번식 사례가 거의 없는 점을 감안하면 몽골에서 경남으로 날아온 배고픈 독수리 중 구조된 개체가 아닐까 추측한다. 청주에 온 하늘이는 혈액, 분변을 채취해 건강검진을 받고 있다. 건강에 이상이 없을 경우 최근 만들어진 맹금류 방사장으로 옮겨진다.
2025년 들어서는 독수리 방사훈련장에서 비행하는 하늘이를 상상해본다. 사람과의 거리가 충분히 확보되어 하늘이가 천장에 매달리지 않아도 될 만큼의 높이와 크기를 갖춘 훈련장이 될 것이다. 지금은 하늘이의 방사훈련이 잘될지 알 수 없다. 순조로운 훈련을 이어간다고 해도 흰꼬리수리 관우처럼 마지막 단계에서 실패할 가능성도 있다. 한겨울 차를 몰아 경남으로 가는 출장길, 날고 있는 독수리 무리가 반가워 속도를 맞춰본다. 어느 해 봄 하늘이가 저 무리에 섞여 기억에 있을 몽골로 돌아가길 바란다.
김정호 수의사
야생동물의 구조와 보호를 주목적으로 하는 ‘특별한 동물원’ 청주동물원에서 20년 넘게 수의사로서 일하고 있다. 야생동물 수의사가 되고 싶었으나 수의대 졸업 당시 야생동물을 치료하며 사는 직업이 없어 대안으로 동물원에 입사했다. 동물원이 갈 곳 없는 야생동물들의 보호소이자 자연 복귀를 돕는 야생동물 치료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저서로는 <코끼리 없는 동물원>(2021)이 있다.
<김정호(청주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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