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 총리 17명중 13명 배출···英을 지배하는 '옥스퍼드'

김지영 기자 2024. 1. 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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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초엘리트
사이먼 쿠퍼 지음, 글항아리 펴냄
입학생 대다수는 상류층 백인남성
광부 딸에 공립학교 졸업이 발목
美 前 NSC보좌관 힐도 못들어가
인맥쌓고 정치감각 익히는데 주력
옥스퍼드로 연결된 엘리트주의가
의회 반대에도 '브렉시트' 이끌어
[서울경제]

데이비드 캐머런, 테리사 메이, 보리스 존슨, 리스 트러스, 리시 수낵. 2010년 이후 재임한 영국의 총리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모두 옥스퍼드 대학 출신이라는 점이다. 194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총리 17명 중 13명이 옥스퍼드를 졸업했다. ‘옥스퍼드’를 이해하지 않고는 영국의 정치, 경제, 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간 ‘옥스퍼드 초엘리트’는 영국을 움직이는 힘인 옥스퍼드 초엘리트주의를 분석한 책이다. 책의 저자는 세계 최고의 축구 작가인 ‘사이먼 쿠퍼’다. 저자는 런던의 공립학교를 졸업하고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했다. 현재 영국 사회를 이끄는 엘리트들과 비슷한 시기에 옥스퍼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저자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사례들인 만큼 책의 내용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사실 어느 나라나 특정 대학을 중심으로 권력 카르텔은 형성된다. 프랑스에서는 에나르크·그랑제콜, 미국에서는 하버드, 한국에서는 서울대가 그 역할을 한다. 영국에서 옥스퍼드가 차지하는 영향력은 단순 학연으로 묶는 권력 카르텔을 넘어선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그 근거로 옥스퍼드의 인적 구성부터 폐쇄적인 문화 등을 지목한다. 책에 따르면 과거 옥스퍼드 입학 인원의 대다수는 중상~상류층의 백인 남자들이었다. 전직 옥스퍼드 교수가 공립학교 출신의 지원자가 많지 않아 사립학교 출신만 입학시켰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서 국가안보회의(NSC) 유럽 러시아 담당 보좌관이었던 피오나 힐도 과거 옥스퍼드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광부의 딸로 태어나 공립학교를 졸업한 그의 출신이 발목을 잡았다.

옥스퍼드에 입학한 상류층에게 대학은 열심히 공부해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공부와 노력은 중산층의 몫으로 자신들은 인맥을 쌓고 정치 감각을 익히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봤다. 보리스 존슨의 막내 동생 조 존슨이 대학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자 가족들이 ‘바보’로 여긴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 비롯됐다. 옥스퍼드 출신의 엘리트 관료들은 대학에서 전공한 학문에서도 이같은 특권 의식을 이어갔다. 그들은 대부분 철학과 정치, 경제를 전공했고 수학과 과학은 ‘상류층에게 맞지 않는 전공’으로 간주했다.

옥스퍼드에서 만연화된 상류층의 이너 서클 문화는 대학 내 토론 모임인 ‘옥스퍼드 유니언’에도 반영됐다. 보수 학생들의 모임인 옥스퍼드 유니언은 보리스 존슨, 마이클 고브 등 유력 정치인들이 회장을 역임했다. 상류층이 아닌 학생들도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었지만 공개 토론 활동은 오직 상류층 학생의 몫이었다. 상류층 학생들은 사립학교 시절부터 익숙하게 사용해온 용어, 복장, 호응법 등을 통해 다른 학생들의 입을 닫게 만들었다.

저자는 옥스퍼드로 연결된 엘리트주의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이끌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브렉시트는 엘리트가 주도한 반엘리트주의의 반란에서 시작됐다고 봤다. 2016년 총리였던 데이비드 캐머런은 영국의 EU 잔류를 주장했으나 런던 시장이었던 보리스 존슨은 강하게 브렉시트를 주장했다. 둘 다 이튼스쿨, 옥스퍼를 졸업한 전형적인 옥스퍼드 이너서클이다. 당시 존슨은 부스스한 머리로 나타나 유머를 섞어가며 대중을 설득했다. 옥스퍼드 엘리트 출신이 브렉시트를 설득했기에 국민들이 이를 지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브렉시트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에서 국민의 절반 이상은 브렉시트를 찬성했다. 옥스퍼드에서 철학, 정치, 경제를 전공한 의원의 95%가 EU 잔류에 투표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옥스퍼드의 이너서클이 계속해서 영국 사회를 좌우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옥스퍼드 자체적으로도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2020~2022년 옥스퍼드에서 공립학교 출신 입학률은 68%가량으로 역사상 가장 높다. 다만 여전히 사립학교 출신이 상대적으로 옥스퍼드에 많이 입학하고 있고 대학에서 에세이 쓰기, 대중 연설 행동 등의 훈련을 제공한다. 저자는 “존슨 등이 17살에 옥스퍼드로부터 입학을 거절당했다면 브렉시트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난 25년간 영국 정치는 옥스퍼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였다”고 말한다. 1만8000원.

김지영 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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