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컷 여성 알바생 폭행 그후…“혐오 폭력에 이대로 죽을 수 없다”

김세훈 기자 2024. 1. 5.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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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당이 5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갈수록 증가하는 여성 테러범죄 이대로 죽을 수 없다’ 좌담회를 열었다. 이날 진주 편의점 폭행 사건 피해자 A씨도 좌담회에 참석해 자신의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여성의당 제공.

“퇴원하고 난 뒤로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던 일을 그만둬야 했고, 온·오프라인상에서 온갖 오해와 편견을 견뎌야 했고요. ‘일상을 되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에 절망감이 들었습니다.”

A씨의 일상은 지난해 11월4일 이후 180도 달라졌다. 경남 진주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A씨는 이날 일면식 없는 20대 남성으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가해자는 A씨를 폭행하면서 “머리가 짧은 걸 보니 페미니스트냐. 페미는 좀 맞아야 한다”고 했다. A씨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폭행을 말리던 편의점 손님인 50대 남성이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가해 남성은 체포된 뒤에도 “나는 남성연대다. 페미니스트는 맞아야 한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이후 두 달이 지났다. 그렇지만 A씨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A씨는 사람들 앞에 서면 몸이 떨리는 ‘사지불안증’에 시달린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자신 때문에 다쳤다는 죄책감도 그를 짓눌렀다. A씨는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니 나는 가해자를 피해 도망 다니는데 어르신이 끝까지 가해자를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저 때문에 어르신이 다쳤다는 생각이 들어 무척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2차 가해도 이어졌다. 온라인상에서 ‘페미니스트면 맞아야지’ ‘여자면 페미 편을 들 거 아니냐. 미리 맞은 것일 뿐이다’는 악성 댓글을 마주해야 했다. A씨는 “사건 이후 불특정 다수에게 언어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에게 나는 ‘페미나치’고, 내 짧은 머리는 ‘꼴페미’의 증거가 됐다”며 “그들은 폭행의 책임을 나에게 되묻고 있었다”고 했다.

진주시 하대동 소재 편의점 폐쇄회로(CC)TV 모습. 연합뉴스

여성의당 정책위원회는 5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갈수록 증가하는 여성 테러범죄 이대로 죽을 수 없다’를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이날 좌담회에는 진주 편의점 폭행 사건 피해자 A씨도 참석해 그가 겪은 폭력과 이후 2차 피해 경험 등을 공유했다.

좌담회 참석자들은 여성혐오범죄를 ‘여성폭력’으로 규정할 수 있도록 법률 제·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피해자 지원에 여성혐오 범죄의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됐다.

A씨를 지원하고 있는 정윤정 진주성폭력피해상담소장은 “A씨를 어떤 피해자로 규정해야 하는지부터가 난관이었다”면서 “성폭력·가정폭력 관련법, 성매매 방지법에는 각 피해자를 명명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지원할 수 있으나 여성혐오 범죄 피해자는 단지 폭행 사건의 피해자일 뿐이다. 폭행의 맥락은 고려되지 않는다”고 했다.

정 소장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지원되는 국선변호사가 이 사건에서는 지원되지 않는다”며 “재판부에 나가서 진술하는 것도 가해자 변호인과 소통하는 일도 모두 피해자의 몫”이라고 했다. 그는 “여성폭력 피해자를 보호·지원하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있지만 ‘성을 기반해 복합적으로 일어난’ 여성혐오 범죄 피해자를 지원할 수 있는 조항은 없다”고 했다.

여성혐오 범죄 처벌과 관련한 법·정책 규정이 미비하다는 진단도 나왔다. 이경하 변호사는 “여성혐오 범죄는 피해자뿐 아니라 여성 집단 전체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파급력과 모방범죄 위험이 크다”며 “그럼에도 여성가족부의 ‘2022년 여성폭력통계’에도 일면식이 없는 여성만을 표적으로 삼아 폭행한 여성혐오 범죄는 여성폭력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여성혐오 범죄를 폭넓게 정의하는 조항을 신설하고,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에 ‘여성혐오적 또는 성차별적 범행 동기’를 ‘비난할만한 범행 동기’로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예은 여성의당 정책위원은 “여성가족부와 정당 정책에서 여성폭력 분류에 ‘일면식 없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테러 범죄’를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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