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래잡기] 희망찬 해돋이를 보았다

2024. 1. 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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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
조국 프랑스 전쟁서 패한 뒤
항만도시 분주한 모습 그려
경제부흥 기대를 화폭에 담다
모네의 소망처럼 갑진년 한해
우리도 희망하는 일 술술 풀리길

해가 바뀐 지 겨우 일주일인데, 새해 첫날부터 충격적인 뉴스가 많아서인지 좀 더 정신없이 지나갔다. 원래 1월 1일부터 설 연휴까지는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고 성실하게 살려고 평소보다 부지런하게 지내면서 하루가 좀 더 길게 느껴지는 시기인데, 이렇게 복잡한 세상의 속도로 올해는 더 빨리 연말을 맞이하면 어쩌나 싶다.

나이가 들수록 한 해가 더 빨리 지나가는 것 같은 기분은 젊을 때에 비해 도파민이 많이 나올 만큼 흥분되는 새로운 경험을 하는 일이 적어서, 뒤돌아보면 남는 기억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고 어느 뇌신경학자가 설명하는 것을 라디오에서 들었다. 비슷한 맥락인지는 모르겠는데, 매일매일이 눈부신 발전을 하던 고도성장 시대에 나고 자랐던 필자 세대에게는 더 이상 '이런 신세계가 있나' 하게 해주는 경이로운 경험은 점점 줄어들고, 오히려 쓸데없이 주워들은 것만 늘어나면서 오만가지 세상 뉴스에 자극받고 걱정하고 신경 쓰느라 의미 없게 시간을 허비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아직은 신년 벽두. 오늘은 좀 식상하더라도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 작품을 들여다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매년 동해안 해돋이 명소가 북적이듯이, 떠오르는 태양은 언제나 하루 혹은 한 해의 시작을 상징하는 모습이고 이처럼 유명한 '해돋이' 작품은 거의 없기 때문에 당연한 선택으로 보일 것 같다. 모네가 해가 발갛게 떠오르는 항구의 모습을 그린 후 제목을 대충 붙인 작품 '인상, 해돋이'는 공개되자마자 비평가들에게 '저 제멋대로인 붓놀림은 뭐냐, 형태는 왜 다 뭉개져 있고, 색감은 왜 이리 괴상하냐'는 비판을 들었다. 결국 "그렇게 대충 머리에 남은 인상을 작품으로 만든 것이냐"는 힐난의 의미로 '인상주의 작품'이라 명명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의 비평가가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신랄하게 비판을 했던 바로 그 인상주의가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양식이 되어 역사에 남게 되었음은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대신 여기에선 이 유명한 작품의 숨은 의미를 살펴볼까 한다. 평온한 풍경화를 많이 그린 것으로 유명한 모네는 사실 애국심이 강했던 작가로, 담담해 보이는 풍경 속에 발전하는 조국 프랑스의 모습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인상, 해돋이'는 찬란하게 떠오르는 붉은 태양이 잔잔한 바다에 반사되고 고기잡이 뱃사공이 말 그대로 그림처럼 등장하는, 어느 날 아침의 평범한 바다 풍경이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보면 멀리 희뿌연 안개 뒤에 연기를 내뿜으며 돌아가는 공장 굴뚝과 큰 증기선, 그리고 기중기의 윤곽이 즐비한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바쁘거나 반대로 한가한 항구 하역장의 이미지로 한 나라의 경제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패전한 지 얼마 안 된 1872년에 그려진 이 작품에서 항만도시 르아브르가 분주하게 돌아가는 모습은 의기소침했던 프랑스인들에게 상공업으로 다시 나라를 재건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모네는 아름다운 경제 부흥의 무대로서 항구의 모습을 거의 시적인 표현력으로 구현해 내면서 조국의 영광을 기원했다.

산업과 기술의 발전으로 조국이 부강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은 150년 전의 모네나 오늘날의 우리나 크게 다르지 않다. 다소 나약했던 작은 나라 조선은 대한민국이 되어 이제 세계적으로 남부럽지 않은 지위를 누리고 있지만, 이 영예로운 자리를 지키는 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동트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일하는 모습에서 모네가 깊은 인상을 받아 어느 한 부분이 강조되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유기적인 풍경화를 만들어 냈던 것처럼, 우리 역시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면서 나라가 잘 돌아가는 데 일조하는 아름다운 풍경의 한 구성원이라는 점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게 모든 일이 술술 풀리면 좋겠다.

2024년 1월 우리의 모습이 먼 미래에는 차오르는 희망의 상징처럼 보이는 날이 올 수 있게 되기를, 우리는 이미 그 시대를 똑똑히 보았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본다.

[이지현 OCI미술관장(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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