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학 ‘쥐락펴락’ 하는 기부자들…“영향력 어느정도?” [세모금]

2024. 1. 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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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 문화, 美대학서 ‘정치적 도구’로 작용하기도
이사진에 포함되는 등 대학에 영향력 행사
하버드·유펜 총장 사임 전 기부 중단 선언 나와
미국서도 의견 분분…“기부자들 도구 돼선 안 돼”
지난 3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의 하버드 대학 캠퍼스에 있는 하버드 야드의 와이드너 도서관 계단에 방문객들이 돌아다니고 있다.[EPA]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반(反) 유대주의 논란을 겪던 클라우딘 게이 하버드대 총장이 과거 자신이 쓴 논문에 대한 표절 논란까지 휘말리자 지난 2일(현지시간) 결국 자진 사퇴를 선택했다. 그동안 유대인 혐오 논란에 대한 모호한 답변에 이어 논문 표절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사퇴 압박을 받아왔지만, 일각에선 미국 대학에 막대한 금액을 기부하는 이들이 게이 총장의 사임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대학에서 기부는 ‘정치적 도구’로 작용할 만큼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대학에 헌납한 금액을 대가로 일부 기부자들은 이사진에 들어가는 등 대학과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NYT)는 일생 동안 모은 거액의 금액을 대학에 기부하는 대가로 대학 정책과 규칙에 일정 부분 영향력을 미친다고 전했다.

총장 발언 한 마디에…‘대학 운영 핵심’ 기부행렬 ‘뚝’
지난해 12월 5일 클라우딘 게이 미국 하버드대 총장이 미국 하원 교육 노동위원회가 진행한 청문회의사당 교육위원회 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게이 총장은 이날 반 유대주의에 관한 질문에 대해 모호한 답변을 해 사퇴 압박을 받던 중, 논문 표절 논란까지 불거져 지난 2일 자진 사퇴했다. [AP]

미국에서 거액 기부는 대학 운영의 핵심 축이다. NYT는 펜실베니아대(유펜)와 하버드대의 기부금은 각각 210억달러(한화 약 27조5000억원), 500억달러(한화 약 65조5000억원)인 탓에 미국의 상위권 대학마저도 기부금 이탈은 큰 영향력을 미친다고 보도했다.

때문에 최근 사퇴한 게이 총장 역시 하버드대 기부자들 사이에 지지가 무너진 것이 사임에 핵심적인 배경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버드대의 기부금 수익률은 2.9%로, 지난해 스탠퍼드대의 기부금 수익률은 4.4%에도 못 미쳤다.

올해 하버드대 지원자가 4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는 소식도 동문 기부자들의 실망감을 키웠다고 NYT는 전했다. 한국의 수시 입학에 해당하는 조기 전형인 ‘얼리 디시전’에 지원한 하버드대 2024학년도 입학 희망자 수는 전년에 비해 17%나 줄었다.

지난해 12월 5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교육 노동위원회가 진행한 청문회에 참석한 엘리자베스 매길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유펜) 총장. 매길 총장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와중에 '반(反) 유대주의'에 모호한 태도를 보인 일로 논란을 일으켜 같은 달 9일 사임했다. [AP]

게이 총장에 앞서 반 유대주의에 관한 질문에 모호한 답변으로 지난달 9일 자리에서 물러난 엘리자베스 매길 펜실베니아 총장 역시 기부자들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지난달 8일 BBC 방송에 따르면 스톤릿지 자산운용의 로스 스티븐스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매길 총장이 보인 행태에 “경악했다”면서 1억달러(한화 약 1300억원) 규모의 기부를 철회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유펜 기부 재정에 적신호가 켜졌던 것이다.

기부자들을 중심으로 대학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고 NYT는 평가했다. 지난 1995년 예일대는 자신이 후원한 커리큘럼에 특정 교수들을 선발하도록 한 억만장자 동문의 요구를 거절해 결국 기부금 2000만달러(한화 약 262억원)를 반납한 일도 있었다. 유타 대학에서도 1989년 자신의 이름을 딴 의료 센터를 설립하려고 했던 사업가에게 1500만달러(한화 약 197억원) 상당의 주식을 돌려주기도 했다.

대학 이사회에도 자산가·기부자들 포진…영향력에 비판도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하버드 대학 캠퍼스 하버드 야드에 있는 존 하버드 동상. [EPA]

미국 대학들은 기부를 장려 등의 이유로 수십 명의 기부자가 포함된 이사회를 설립하고 있다. 실제로 유펜의 이사회 투표자 48명 가운데 36명은 정년 퇴임 연령인 70세를 초과했지만, 여전히 회의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금융가 출신이거나 월스트리트에서 막대한 부를 쌓았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분석했다.

미국 MIT의 경우 대학 내 74명의 이사진이 있고, 코넬대에는 64명의 이사진이 있다. 하버드대의 경우 이사회 정원은 한때 7명이었다가 13명으로 늘었고, 현재는 한 명이 공석인 12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대학 이사진들 중에는 특정 대학과 학업적 연관이 전혀 없는 이들도 포함돼 있다고 FT는 전했다. 미국대학협회 회장이자 마운트 홀리요크 칼리지의 전 총장인 린 파스케렐라는 “기업 출신의 이사들은 대학만의 결속력이나 투명성, 운영방식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매리 파파지안 미국 대학 이사회 협회 상임 부회장도 “기부자들은 대학을 지원하는 대가로 그들의 권리를 표현하고 있다”면서도 “여기서 대학 이사회는 이들의 의견을 듣고 어떤 것이 대학을 위한 최선의 선택인지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부자의 도구가 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기부자들이 대학에서 영향력을 어느 정도까지 발휘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미국에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인 에드워드 록 뉴욕대 법학과 교수는 “대학 총장 기부자 등 지지자와의 기부 관계를 유지해야 하면서도 대학의 교리가 정치적이나 경제적인 외부 영향력에 좌우되지 않도록 조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yckim645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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