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책은 유성이다 … 수천개 운석이 돼 떠돌다 다른 책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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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설가 인터뷰의 끝 무렵에 자주 건네던 질문이 있다.
'언제부터 책을 사랑하셨습니까.' 독자가 어느덧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기 때문인지, 희귀한 동족(同族)에게 어떤 계시처럼 내려앉았을 열병의 첫 번째 순간이 자주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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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설가 인터뷰의 끝 무렵에 자주 건네던 질문이 있다. '언제부터 책을 사랑하셨습니까.' 독자가 어느덧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기 때문인지, 희귀한 동족(同族)에게 어떤 계시처럼 내려앉았을 열병의 첫 번째 순간이 자주 궁금했다. 한때 우상이었던 저들이 씩 웃으면서 기억의 도서관 문을 열어젖혀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전율했다. 그건 영웅 서사시였고, 또 복음서였다.
모든 작가는 작가이기 이전에 열병에 걸린 독자다. 프랑스 현대철학자 장뤽 낭시(1940~2021)도 그렇다. '사유의 거래에 대하여-책과 서점에 대한 단상'이 그 증거물이다.
1940년 프랑스 보르도 인근에서 태어난 낭시는 책을 '사유의 거래'로 정의하고 저자, 독자, 편집자, 서점인의 관계를 차분하게 성찰한다. '책에 관한 책'은 너무 많지만 이 책은 저자가 다른 철학서에서 중요한 감각으로 다루는 촉각(정확히는 책과 손가락 사이 '접촉'의 문제)의 관점에서 대상인 책의 물성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차별화된다.
책은 활자로 묘사된 이데아다. 책의 이데아는 이데아의 전달에 있다. 그러나 이데아는 간파되거나 정복될 수 없는 무엇이다. 플라톤이 말했듯 이데아는 읽어낼 수 없다. 그것이 낭시가 말하는 책의 '불가독성'이다. 그러나 독서는 헛것이 아니다. 읽어낼 수 없지만 이데아는 전달되고 또 침묵 속에서 대화함으로써 존재의 흔적을 드러낸다. 이데아는 독서행위에 깃든 본질적인 동요와 불안 속에서 태어나 독서를 통해 해명되는 하나의 형태다.
그렇다면 독서란 무엇인가. 독서란 '새롭게 등장한 하나의 세계'와 '독자의 내면에 이미 존재했던 세상'의 격렬한 뒤섞임이다. 출판사의 편집자(editor)는 저 뒤섞임을 계획하는 사람이다. 편집자의 라틴어 어원 'edo'는 '끄집어내다, 밖으로 보내다'란 뜻이라고 한다. 편집자는 텍스트에 감춰진 고유한 의미를 읽어버린 후 자신이 생각하는 이데아의 풍경을 내보낸다. 편집자의 숭고성은 이 지점에서 생성된다.
편집자가 저자에게서 '끄집어낸' 사유의 증거는 사유의 거래 장소인 서점에서 독자를 만나며 세상과 뒤섞인다. 독자에게 당도한 저자의 비밀스러운 이데아는 봉인이 풀렸다가 책의 닫힘과 동시에 다시 흩어진다. '책은 유성이다. 그것은 수천 개의 운석이 돼 흩어진다. 그것들의 떠돌이 운항은 새로운 책과의 갑작스러운 충돌이나 재회, 응결을 야기한다(59쪽).' 독자라는 종족은 독서로서 우주의 참여자가 돼 별의 잔해이면서 별의 씨앗인 활자를 매만지고 있다. 유구한 활자의 운항 속에서 어느 별의 먼지는 우리 안에 퇴적된다. 그게 독서의 목적이다.
이 책은 동시에 '거래'를 사유하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거래란 본질적으로 가치화한다는 것이다. 가치화할 때의 방향은 타자 지향적이다. 책은 타자를 지향하며 책은 타자로 인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서점에 꽂힌 모든 책은 타인이라는 우주를 향해 응결된 한 권의 별인 것이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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