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에 "막걸리 한잔" 제안한 김동명···노정관계 물꼬 트나

세종=양종곤 기자 2024. 1. 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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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인사회서 관계개선 기대 확산
3일 김동명 '막걸리 일화' 소개하자
尹 웃으며 공감·참석자 갈채 쏟아져
어제 노사정 신년회 4년만에 한자리
롤러코스터 관계 딛고 대화·협력 강조
올 근로시간 개편 등 성과낼지 주목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년 신년인사회에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노동계를) 때리더라도 나중에 막걸리 한 잔 하시죠.”

이달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년 신년인사회 행사장. 참석자들이 순서대로 새해 덕담을 할 때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깜짝 제안을 했다. 김 위원장은 어릴 적 몸이 약했던 자신을 괴롭혔지만 나중에 막걸리를 마시면서 서로 친분이 두터워졌다는 한 ‘동네 형’과의 일화를 소개하며 대통령에게 ‘막걸리 회동’ 아이디어를 던진 것이다. 윤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제안을 듣고 화답하듯이 크게 웃었다. 행사에 참석한 한 인사는 “이날 김 위원장의 발언에 가장 큰 박수가 쏟아졌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와 날을 세웠던 노동계의 수장이 대통령에게 허물없는 발언을 하며 분위기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 셈이다. 특히 지난해 노조 회계공시제 참여 등으로 현 정부의 노동 개혁이 일정 정도 성과를 얻었다는 점에서 노동계가 무조건적인 반대 노선에서 방향을 틀어 올해는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겠다’는 포석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권 역시 4월 총선을 앞두고 노동계와 마냥 척을 질 수도 없는 상황이다.

5일 노동계와 정부 등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대통령을 향한 파격 제안에서 보듯이 노동계·경영계·정부가 현안을 논의하는 노사정 대화가 올해는 속도를 낼 가능성이 점쳐진다. 특히 지난해 말 한국노총이 노사정 대화에 다시 복귀하면서 그동안 극단으로 치달은 노동계와 정부의 관계를 개선하고 노동 개혁을 추진하는 동력으로 평가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이날 서울중앙우체국에서 열린 노사정 신년인사회에서도 이 같은 변화의 흐름은 감지됐다. 이날 행사에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김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등 노사정 대화를 이끄는 대표자가 모두 참석했다. 노사정 대표가 신년 행사에 모두 모인 것은 4년 만에 처음이다. 특히 김동명 위원장은 2020년 한국노총 위원장에 취임한 후 처음으로 노사정 신년인사회에 모습을 비쳤다.

참석자들은 지난달 노사정 대화를 위한 첫 회동처럼 노사정 대화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 장관은 “올해는 저출산, 고령화,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 해결해야 할 변화와 도전 과제가 산적하다”며 “같은 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넌다는 동주공제(同舟共濟)의 자세로 노사정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동명 위원장은 “노사정이 오랜만에 다시 만난 이 자리는 그동안 노동자와 서민의 삶이 참 고달팠다는 방증”이라며 “올해는 노사정이 어려움 속에서 소중한 결실을 일궈낸 해로 만들자”고 답했다. 손 회장도 “노사 관계 선진화는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 세대의 일자리를 만들 토대”라며 “노사정이 대화와 협력으로 여러 현안을 슬기롭게 해결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문수 위원장은 “취약 노동자 보호를 위해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며 “한국노총이 한국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중심이 돼달라”고 당부했다.

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중앙우체국에서 열린 노사정 신년인사회에 이정식(왼쪽 세 번째) 고용노동부 장관과 김동명(〃 두 번째) 한국노총 위원장, 손경식(〃 네 번째)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김문수(오른쪽)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사정 대화는 지난해 순탄하지 못했다. 제1 노총인 한국노총은 지난해 6월 대통령 직속 노사정 대화 기구인 경사노위 불참을 선언했다. 매 정부 정책 파트너였던 한국노총의 불참 선언은 7년 5개월 만이다. 한국노총은 정부가 노동계와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인 노동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만 5개월 뒤 한국노총의 복귀는 극적이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줄곧 거부하던 노동조합 회계공시제에 응했고 고용부는 직접 마련하던 근로시간제 개편안을 노사정 대화를 통해 마련하기로 했다. 대통령실도 한국노총을 노동계 대표 조직으로서 공식 인정해 노사정 대화의 문이 다시 열렸다.

노사정 대화는 안팎으로 상당한 기대를 받고 있다. 그동안 노정 관계가 극단으로 치닫거나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민감한 현안을 해결하는 돌파구가 됐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정리 해고를 통한 경제위기 극복 협약을, 문재인 정부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도출했다. 현 정부도 경기 회복, 노동 개혁이라는 2개의 큰 과제를 떠안았다.

노사정은 대화를 통해 현실 인식과 여러 정책도 가다듬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표적인 게 노사 관계다. 경총이 지난해 12월 회원사 124곳을 대상으로 올해 노사 관계에 대해 설문한 결과 62.3%는 ‘올해 노사 관계가 불안할 것 같다’고 답했다. ‘안정될 것’이라는 답변은 13.7%에 그쳤다. 노사정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민주노총은 정권 퇴진을 요구할 만큼 대정부 규탄 수위를 높여왔다. 반면 고용부는 지난해(1~11월) 노사분규로 인한 근로 손실 일수가 10년 동안 최저였다며 노사 관계가 안정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노사정 대화의 우려점은 서로 원하는 의제가 다르다는 점이다. 정부는 노사정 대화를 통한 근로시간제 개편안 마련 시점을 올해 상반기 내로 정했다. 하지만 한국노총은 근로시간제 개편은 의제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동시에 노사정 대화가 정책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하고 있다. 노사정 대화 의제는 조만간 공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종=양종곤 기자 ggm1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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