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 임신부 아이 구급차서 직접 받은 소방관
2023년 1월 4일 새벽, 코로나19 확진 임부 진통 출동 지령 받아
코로나 탓 수용 병원 안 나와 구급차 무한 대기 중 출산 임박
맥박수 '오르락내리락' 반복 위기 속 세 아이 출산 경험으로 무사히 임부 출산 도와
그들의 단련된 마음과 몸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다. 지난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소방청에서 제출 받은 ‘소방공무원 건강 진단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소방공무원 정기 검진 실시자 6만2453명 중 4만5453명(72.7%)이 건강 이상으로 관찰이 필요하거나 질병 소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 이상자 중 6242명(13.7%)은 직업병으로 인한 건강 이상으로 확인됐다.
이상 동기 범죄 빈발,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점차 복잡해지고 대형화되는 복합 재난 등 갈수록 흉흉하고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 매일 희망을 찾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농연(濃煙) 속으로 주저 없이 들어가는 일선 소방관들. 평범하지만 위대한 그들의 일상적인 감동 스토리를 널리 알려 독자들의 소방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소방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고취하고자 기획 시리즈 ‘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11월 9일 ‘소방의 날’을 시작으로 매주 한 편씩 약 1년에 걸쳐 연재한다.
40대 초반으로 세 아이의 엄마인 경기도 부천소방서 류미덕(41) 소방관에게 코로나19는 더 큰 도전이었다. 피로 누적이 해소되지 못한 채, 평소보다 고된 업무와 육아에 수면 유도제를 먹고 잠드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일상의 웃음이 사라졌고 아이들에게도 짜증이 늘어만 가자 류 소방광은 스스로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정신적 탈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불안정한 자세로 환자를 들고 옮기는 들것 이송의 반복으로 인해 양측 손목의 통증은 더욱 심해져만 갔다. 구급 대원의 일을 더 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노후에 대한 고민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시기였다. 조금이라도 몸과 맘에 휴식이 필요했지만 현장은 류 소방관에게 쉼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씩씩하게, 동료들에게 폐가 되지는 말잔 마음가짐으로 출근한 지난해 1월 3일 밤. 그리고 그날의 야간 근무가 막바지에 다다르던 4일 오전 5시 44분께. 류 소방관에게 임신부의 진통으로 인한 출동 지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그 출동 지령엔 ‘코로나19 확진’도 함께 떠 있었다. 류 소방관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에도 산통을 느끼는 임부들을 무사히 병원 이송한 경험을 바탕으로 “온 마음을 다해 안정시켜 드리고 병원에서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게끔 도와드려야겠다”고 다짐하며 구급차에 올랐다.
다행히 현장에 도착했을 때 임신부 A씨는 출산 임박에 따른 진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맘에 류 소방관은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지난해 코로나19에 대한 규제가 완화됐음에도 여전히 코로나19 확진 임신부를 받아 주는 병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1시간, 2시간. 그렇게 구급차 내에서 대기하며 애꿎은 시간만 흘러갔다.
그에 따라 A씨가 느끼는 진통 간격이 짧아졌고 진통의 세기도 점점 강해졌다. 그러다 구급차 내에서 A씨의 양수가 터져버리고 말았다. A씨는 더욱 고통스러워 보였다. 세 아이를 자연분만했던 류 소방관은 A씨의 출산이 임박했음을 직감했다. 류 소방관의 긴장감도 고조됐다.
류 소방관은 아이를 받을 준비를 하기 위해 주들것 아래에 자리를 잡고 소독 등 안전 조치를 천천히 해 나갔다. 이젠 그대로 구급차에서 아이가 태어나든 병원이 선정되든 둘 중 하나였다. 시계는 이미 오전 8시를 한참 지나 있었다.
임부가 느끼는 통증은 더욱 심해졌고 맥박수도 여전히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던 그때 드디어 아이의 머리가 보였다. 류 소방관은 A씨와 함게 호흡을 맞추며 힘을 줬다 뺐다를 반복했다. 분만을 위한 고통의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너무나도 소중하고 귀한 아이가 류 소방관의 양손으로 들어왔다.
류 소방관이 재빨리 아이의 입에서 양수를 빼내고 몸을 닦아 주며 자극을 주니 아이는 우렁차게 울어댔다. 아이는 건강하고 예뻤다. 눈물이 절로 났다. 류 소방관은 긴 시간을 버티며 절망하지 않고 자신과 구급 대원들을 믿고 맡겨 준 A씨가 대단하게 느껴졌고 감사했다. 오히려 산모는 “나 잘했지요?”라고 밝게 웃었다. 류 소방관은 그런 산모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칭찬과 위로 그리고 격려를 아낌없이 해 줬다. 아이와 산모는 그렇게 구급차 출산 이후 병원으로 이송됐다.
류 소방관은 두 환자의 병원 이송을 마친 이후 그때껏 느껴 보지 못했던 뜨거운 감정을 느꼈다. 너무나 기뻤고 스스로가 대단히 자랑스러웠으며 뿌듯했다. 구급 활동이 즐거움으로 다가온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소방관 그리고 구급 대원은 정말 훌륭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류 소방관은 한동안 이 뜨거운 감정을 기억하며 기대감으로 구급 출동에 임하게 됐다. 그동안 류 소방관을 괴롭혔던 번아웃 증후군 역시 씻은 듯 날아갔다.
지난 4일, A씨와 그의 남편은 돌을 맞은 아이를 데리고 부천소방서를 찾았다. 류 소방관 등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작년 아이 백일에 이은 두 번째 방문이었다. 떡을 해 온다는 A씨 부부의 제안을 정중히 사양하고 오히려 소방서에서 아이의 생일 케이크를 준비했다. 류 소방관은 사비를 털어 아이의 신발 등 선물까지 마련했다. 그 생일은 아이에게도 A씨 부부에게도 류 소방관에게도 잊을 수 없는 특별한 날이었다.
이연호 (dew901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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