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나체 합성사진’에 불법촬영한 대학생···대법, 왜 ‘무죄’ 내렸나

김혜리 기자 2024. 1. 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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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법원. 경향신문 자료사진

여성 지인들의 ‘나체 합성 사진’ 제작을 의뢰하고 이를 보관한 20대 남성에게 대법원이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문제의 사진들은 컴퓨터 파일 형태였는데 이는 당시 법이 규정한 ‘음란한 물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사진·영상 무단 편집 행위는 현행법에서는 처벌 대상이지만, 이 같은 조항이 없던 때 이뤄진 범행이어서 처벌을 피했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음화제조교사·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5일 밝혔다.

이씨는 2017년 4월부터 11월까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지인 사진을 이용한 ‘음란물’ 제작을 총 17차례 의뢰한 혐의로 기소됐다. 얼굴과 나체 사진을 합성해주는 SNS 계정에 아는 여학생들의 사진을 보내 합성을 의뢰한 것이다. 그는 의뢰 과정에서 지하철과 강의실 등에서 6차례 피해자들의 신체를 불법촬영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도 받았다.

이씨의 범행은 그가 휴대폰을 분실하면서 발각됐다. 휴대폰을 습득한 행인이 주인을 찾아주려고 메시지를 확인하다 합성사진을 발견하고 한 피해자에게 알린 것이다. 피해자들은 단체로 2017년 12월 이씨를 고소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씨는 합성사진을 소장하고 다른 곳에 유포하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2심은 이씨의 혐의를 대부분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음화제조죄를 규정하는 형법 244조는 문서, 도화, 필름 등 ‘음란한 물건’을 제조하는 행위를 금지하는데, 대법원은 이씨가 제작을 의뢰한 합성사진과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 파일은 당시 법이 규정하는 음란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허락 없이 타인의 사진이나 영상을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게끔 편집하거나 합성하는 행위는 2020년 3월 이른바 ‘딥페이크 처벌법(개정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이 신설됨에 따라 처벌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씨는 해당 법이 생기기 전 범행을 저질러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이씨의 불법촬영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 취지로 판단했다. 경찰이 수사과정에서 이씨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았으므로 이씨가 찍은 불법촬영 사진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 증거능력이 없다고 본 것이다. 경찰은 별도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지 않고 피해자가 제출한 이씨의 휴대폰을 포렌식해 전자정보를 유출했고, 이씨에게 참여기회를 보장하지 않았다.

이로써 이씨는 서울고법에서 재판을 다시 받게 됐다. 대법원이 음화제조교사·불법촬영 혐의에 대해서 무죄 취지로 판단했기 때문에 새로운 증거가 제출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씨는 피해자 1명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만 처벌받을 가능성이 크다.

범행 당시 한양대 소속 학생이었던 이씨는 2018년 3월 학교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은 피해자들이 페이스북에 ‘한양대 남학생의 지인사진을 이용한 음란물 제작사건 피해자모임’이라는 페이지를 만들고 직접 대응에 나서면서 대학가에 파장을 일으켰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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