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의 호수, 호두 까기 인형 그리고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만국의 공통언어인 음악과 춤의 조합은 언제나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특히 춤은 인간의 본능이자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시키고 서로에게 즐거움을 주며 사람 사이의 소통을 돕기도 한다. 어찌 보면 춤-몸짓은 인간의 첫 번째 언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춤을 뜻하는 영어 ‘Dance’의 어원은 ‘생명의 욕구’를 나타내는 산스크리트어 ‘Tanha’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한자어 ‘舞(춤출 무)’는 잘못이나 사악함을 털어낸다는 종교적 의미 또한 갖고 있다.
이렇듯 춤과 음악은 우리 존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는 또 다른 언어의 은유적 표현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서양의 전통적인 춤 공연예술인 발레는 스토리와 음악이 있다는 점에서 오페라와 같지만 가사를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좀더 친숙하다고 할 수 있겠다.
러시아의 대 작곡가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는 발레공연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가 프랑스 작곡가 생상과 친분을 쌓고 교류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두 작곡가 모두 발레에 애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이코프스키는 오랫동안 발전된 발레와 클래식음악을 접목하여 서로의 시너지를 극대화 하였다. 그의 아름다운 작품에는 마리우스 프티파(Marius Petipa)라는 무용수이자 안무가가 있었는데, 프티파는 발레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거장으로 추앙 받고 있다.
고전발레를 완성시킨 인물로 평가 받고 있는 프티파의 안무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통해 고전 발레공연은 한 차원 높은 예술성을 가지게 되었다.
연말에 자주 공연되는 그의 세 작품 <백조의 호수>와 <호두 까기 인형> 그리고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현재 차이코프스키의 가장 큰 히트 작품들 중 하나다.
꼭 발레 공연과 함께 하지 않고 따로 모음곡형식으로도 자주 연주되는 그의 발레 곡에는 어떠한 매력과 스토리가 숨어있을까.
◆ 백조의 호수(Swan Lake)
전체 4막으로 이루어진 <백조의 호수>는 러시아의 전래동화 <백색오리> 또는 독일의 민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오데트 공주와 지그프리트 왕자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악한 마법사 로트바르트의 저주에 걸려 낮에는 백조로 변하는 오데트 공주와 지그프리트 왕자가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지그프리트 왕자를 속여 자신의 딸과 결혼을 시키려던 로트바르트가 자신의 딸 오딜을 오데트로 변장시켜 흑조로 나오는 장면은 영화 <블랙스완>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현대에는 오데트역을 맡은 프리마 발레리나가 보통 블랙스완의 오딜역을 함께 소화하는 1인2역을 하는 것이 정형화 되어있는데, 이는 20세기에 들어와서 굳어진 형식으로 볼 수 있다.
원래는 각각 다른 인물이 오데트와 오딜역을 맡도록 되어있지만, 발레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레리나로 꼽히는 이탈리아의 피에리나 레냐니(Pierina Legnani)가 1인2역을 한 이후 이와 같은 형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특히 3막의 무도회장면은 주인공 발레리나가 영화 블랙스완 처럼 선과 악을 오가야 하는 내면연기와 고난도 32회전(푸에떼 Fouette)를 선보여야 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고 한다.
전체 발레공연은 보통 2시간 남짓의 공연시간을 갖고 있지만 차이코프스키의 음악만을 하이라이트로 공연하는 경우는 이보다 훨씬 짧게 연주되곤 한다.
이 작품에는 아름다운 바이올린 솔로가 여럿 있는데, 특히 주인공들의 그랑 파드되(2인무)의 애절한 장면에 연주된다.
<백조의 호수>는 서정적이고 전통적이며 지금은 모두가 좋아하는 대중 클래식음악이 되었지만, 초연 당시엔 혹독한 비평을 받아 차이코프스키가 많은 실망을 했다고 한다.
사실 오리지날 결말은 왕자가 호수에 뛰어들어 죽는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고,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교향곡 수준이어서 당시 무용수들이 음악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불평도 있었기 때문이다.
차이코프스키가 36세 완성한 작품 <백조의 호수>는 1878년 초연 이듬해 볼쇼이 발레단에 의해 왕자와 공주가 결혼하는 해피 엔딩 스토리로 공연되었는데 여전히 많은 발레단들은 오리지널 버전에 충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호두까기 인형(Nutcracker)
15세기 중부유럽에서 만들기 시작한 호두까기 인형은 말 그대로 호두를 까기 위한 인형이다.
인형의 입에 호두를 넣고 등뒤 레버를 올리면 호두가 깨지는 실용적인 목각인형으로 크리스마스기간 신도들간의 선물용 또는 장식용으로도 쓰이기도 했다.
이 호두까기 인형을 소재로 독일의 작가 에른스트 호프만은 아름다운 동화를 썼다. 그의 동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차이코프스키의 아름다운 음악과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느껴지는 줄거리로 연말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다.
호프만의 동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상당부분은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삼총사>의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페르(Dumas pere)가 각색했으며 작품의 줄거리는 이렇다.
크리스마스 이브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 받은 어린 소녀 클라라(마리 또는 러시아에서는 마샤 라고도 부른다)는 선물의 기쁨도 잠시, 오빠의 질투와 장난으로 인형이 망가지게 된다.
클라라가 슬픔에 잠긴 채 꿈속 나라로 빠져들고 그곳에서 생쥐나라와 장난감 나라간의 전쟁이 시작된다.
호두까기 인형이 장난감 나라의 병정들을 지휘하고 생쥐나라 대왕과 맞서 싸우는데, 전세가 불리해지자 클라라가 합세하여 생쥐대왕을 물리치고 왕자였던 호두까기 인형의 마법도 풀리는 행복한 결말이 전체적인 줄거리다.
호두까기 인형의 음악을 작곡한 차이코프스키는 아름다운 음악과는 달리 작품을 의뢰 받았을 당시 많은 고뇌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물질적, 정신적 후원자였던 폰 메크 부인과의 관계가 끝나가고 있었고, 그의 동성애를 알아차린 주변인들의 사회적 비판도 심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뉴욕 카네기 홀 연주를 마치고 프랑스에 들렸을 무렵 아끼는 여동생 샤샤의 사망소식은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우울증에 빠져있는 그는 어린 조카를 생각하며 호두까기 인형의 악상을 떠올리게 되는데, 바로 주인공 클라라를 여동생 샤샤의 딸 타티아나로 생각하고 자신을 극중 호두까기인형을 선물한 대부 드로셀마이어로 상상해 작곡한 것이다.
차이코프스키는 여동생 샤샤를 상징하는 사탕과자 요정이 등장할 때 사용될 악기 또한 고심하였는데, 파리에서 첼레스타(Celesta)라는 건반악기를 발견한 것이다. 첼레스타의 맑고 유리구슬 같은 소리는 동화 속 요정의 움직임을 상상하게 만들어 주었다.
파리에서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그는 예정보다 9개월늦은 12월에 작품을 올리게 되었다. 당시 연주준비 상황이 원활하지 못해 초연은 호평 받지 못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작품의 진가를 알아본 청중들에 의해 점점 많은 인기를 얻었다.
차이코프스키는 전체 15곡으로 되어있는 이 작품 중 8곡만 발췌해 오케스트라 모음곡으로 만들었고, 자신이 직접 초연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꽃의 왈츠 또한 모음곡 대미장식에 포함되어있다.
◆ 잠자는 숲 속의 미녀(Sleeping Beauty)
프랑스 작가 샤를 페로 원작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많이 알려진 동화다. 마녀 또는 노파의 저주로 물레에 찔려 영원한 잠에 빠진 공주가 왕자의 키스로 저주에서 풀려나 행복하게 결혼한다는 이야기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다.
동화를 수집한 샤를 페로 이외에도 러시아의 전래동화, 17세기 이탈리아 출신 작가 바실레, 독일의 그림형제 등의 작품에도 이런 비슷한 이야기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전체 3막5장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그의 두 번째 발레 음악작품으로 첫 번째 백조의 호수보다 당시 더 많은 호응을 이끌어내었다.
1888년 안무가 프티파에게 발레음악 장면에 필요한 부분을 전달받은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의 작은 마을에서 프롤로스코에서 구성을 마친 뒤 이듬해 1889년 관현악곡으로 편곡을 시작했고 1890년 마린스키극장에서 작품을 초연했다.
초연 당시 왕궁을 재현한 크고 웅장한 무대와 화려한 의상 등을 선보였는데 이 작품을 위해서만 마린스키 극장예산의 1/4 정도가 투입되었다고 한다.
사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이전 작품보다는 낫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공연을 본 황제가 나쁘지 않네 정도의 반응을 보였고, 당시에는 엄청난 성공작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차이코프스키가 죽고 2~30년뒤 런던 공연의 대성공을 시작으로 불후의 명작반열에 올라서게 되었다.
이 작품은 아름다운 바이올린 솔로협연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왈츠풍의 음악이 적절히 배치되어 우아하며 기품이 넘친다.
그의 교향곡 작품들이 우울한 감성과 애수가 느껴지는 반면 발레음악은 밝고 화려하며 듣는 이에게 우아한 몸짓을 상상하게 만드는 특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 음반추천
<백조의 호수>는 (구)소련 국립오케스트라와 스베틀라노프(Evgeny Svetlanov) 또는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G.Rozhdestvensky)의 음반을 추천 드린다.
호두까기 인형모음곡은 안탈 도라티(Antal Dorati)의 음반과 페도세예프(Vladimir Fedoseyev)와 모스크바 방송 교향악단도 좋다. 개인적으로 비쉬코프(Semyon Bychkov)와 베를린 필하모닉의 조합도 마음에 든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또한 안탈 도라티의 음반이 호평을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앙드레 프레빈(Andre Previn)의 연주도 명연이며, 러시아 내셔널오케스트라와 플레트네프(Pletnev)의 지휘도 수작이라 할 수 있다.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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