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소방관이다” 마음속 외침에 달려가 보니 아이들이…[따만사]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2024. 1. 5. 14:00
화염 속에서 잠든 초등생 남매 구한 양일곤 소방장
지난해 8월 서울소방재난본부와 서울특별시홈페이지 ‘칭찬합시다’에 ‘초등생 2명을 살리고 사라진 분을 찾는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양 소방장은 순간 머리가 복잡해 졌다. “지금 장비도 없고, 너무 연기가 많고 불길이 센데…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울 때, 마음속에 “너는 소방관이다”라는 외침이 들렸다.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 양 소방장은 비상벨을 눌러 주민들에게 화재 사실을 알렸다. 119에 신고하긴 했지만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고 만 있을 순 없었다. 그는 디귿자(ㄷ) 형태의 건너편 복도에서 옥내소화전을 찾아 끌고 왔다. 양 소방장이 관창(물뿌리는 부분)을 잡고 관리소직원이 꼬인 호스를 풀어줬다.
양 소방장은 “사람이 죽기 전에 느낀다는 주마등이 스쳐 지나갔다”며 “평소 근무할 땐 장비를 갖추고 하기에 호흡곤란을 거의 느끼지 못했는데, 이날 ‘보호 장비 없이 화재를 진압하는 건 위험하다’는 사실을 몸소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넓찍한 ‘분무 형태’로 분사 방식을 바꾸고 이를 방패 삼아 열기와 연기를 밖으로 밀어내며 화염에 맞섰다. 그리고는 소방차가 도착하기도 전에 초기진화를 완료했다. 소방관들이 온 후에는 현장을 인계한 후 자리를 떠났다. 이때 옷은 소방수와 검은 연기 오염에 젖어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남매 부모 “하늘에서 내려주신 분”
이 사건은 서울소방재난본부와 서울특별시청 홈페이지 ‘칭찬합시다’에 글이 올라오며 외부에 알려지게 됐다. 글을 올린 아파트 관리소장은 “처음 불이 난 곳으로 가봤을 때 놀라운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린 사람이 소방호스를 이리저리 쏘고 있었다. 소방호스를 만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화재가 다 진압되고 난 다음에는 그분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맙다는 말도 못해서 수소문을 해보니 마포소방서에 근무하는 소방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근무도 아닌 시간에 아무 장비없이 본인의 안위는 돌보지 않고 맨몸으로 초기 진화해 많은 입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준 것에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구조된 어린이의 부모도 글을 올려 “지나던 행인이 불을 다 꺼 주셨고 그분이 소방관이었다는 사실을 경위 진술 과정에서 듣게 됐다. 이분은 하늘에서 내려준 분이라고 느꼈다. 덕분에 저희 아이들은 무사하다”고 감격해 했다.
“홀딱 젖어 집에온 남편…말 안해 몰라”
댓글에도 양 소방관을 향한 격려와 칭찬이 쏟아졌다. 일부 누리꾼들은 “이분 집에 가서 아내에게 등짝 스매싱 맞았겠다”며 후기를 궁금해 했다.
중학교 3학년과 1학년 아들을 둔 양 소방관은 그날 작은 아들을 모임 장소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에 집 근처에 다 와서 화재 현장을 목격했다. 집에 있던 아내는 남편이 올 시간이 됐는데도 돌아오지 않자 휴대전화로 전화를 해봤지만 응답이 없었다.
이때 밖에서 소방차 사이렌이 울리고 동네가 소란스럽자 큰아들이 걱정되는 마음에 아빠를 찾아 나섰다. 동네를 돌아다니던 아들은 “길가에 아빠 차가 세워져 있는데 아빠는 안보인다. 아무래도 아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고 엄마에게 알렸다.
영문을 모르던 부인 김여진 씨는 “처음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남편이 차로 사람을 쳤나? 거의 잠옷 바람으로 나갔는데 대체 어디로 갔지?’라고 생각 했다”고 말했다.
얼마 후 남편은 온몸이 물에 젖은 채 집에 돌아왔다. 양 소방장은 곧장 샤워실로 들어가 1시간이 넘도록 몸을 씻었다. 코와 입에서 기침과 함께 계속 검은 이물질이 나오고 몸에 벤 불 냄새가 가시지 않는 탓이었다.
부인 김 씨는 “평소 물 아끼라더니 왜 그렇게 오래 샤워하나 했다. 본인이 얘기를 안했다. 금방 나오겠지 했는데 욕실에서 나오질 않았다. 나와서도 ‘그냥 뭐 도왔다’ 이런식으로 얼버무려서 넘어갔다. 그런데 다른 분들이 글을 써주고 기사화 되며 자세히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남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들면서도 혼자서 그런 일을 했다니 마음이 아프고, 아내된 입장에서 앞으로는 맨몸으로는 안 들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털어놨다.
양 소방장은 이 일로 지난달 15일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주최한 ‘2023생명존중대상’을 받았다. ‘생명존중대상’은 위험한 순간에도 소중한 생명을 구한 사회의 영웅들을 발굴해 알리는 상이다.
양 소방장은 “결코 저 혼자 해낸 일이 아니다. 끝까지 소방호스를 잡고 보조역할을 해준 관리소 직원분이 큰 도움이 됐다. 여자 아이가 문을 빨리 열어준 것도 고맙다. 그때 만약 아이가 문을 열어주지 않았더라면 내게 큰 트라우마로 남았을 텐데 무사해서 너무 감사하다. 격려해주시는 시민들께도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전했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
지난해 8월 서울소방재난본부와 서울특별시홈페이지 ‘칭찬합시다’에 ‘초등생 2명을 살리고 사라진 분을 찾는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이 사건은 지난해 8월 4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의 한 아파트에서 일어났다. 오전 10시경 아파트 2층에 있는 세대 창문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상황을 목격한 건 아파트 단지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진 사거리를 지나던 차량 운전자였다. 서울 마포소방서 소속 양일곤 소방장(43·남)이다. 양 소방장은 이날 휴무일이어서 집에서 쉬다가 반팔·반바지 차림으로 나온 상황이었고 김포는 관할 구역도 아니었다.
양 소방장은 순간 머리가 복잡해 졌다. “지금 장비도 없고, 너무 연기가 많고 불길이 센데…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울 때, 마음속에 “너는 소방관이다”라는 외침이 들렸다.
그는 “이대로 그냥 가면 평생 후회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핸들을 돌렸다. 불이난 아파트 인근 도롯가에 차를 세운 그는 장비도 없이 무작정 불이 난 2층으로 뛰었다. 그리고 현관문 앞에 도착했지만 초인종은 작동하지 않았다. 강제로 문을 열어보려 했지만 그럴만한 도구도 없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문을 ‘쾅쾅쾅’ 두드렸다. 혹시라도 안에 자고있는 사람이 있다면 소리를 듣고 깨지 않을까 해서였다. 예감은 맞았다.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잠에서 덜 깬 모습으로 현관문을 열어줬다.
“휴~” 양 소방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에 다른 사람은 더 없니?”라고 묻자 여아는 “동생이 한 명 더 있어요”라고 답했다.
남동생 역시 안방에서 자고 있던 상태였다. 화염이 분출하고 있던 바로 그 방이다. 아침에 어른들이 일을 나가고 남매만 잠을 자는 사이 안방 베란다 실외기에서 불이난 것이다. 조금만 늦었어도 끔찍한 참사로 이어질 뻔한 상황이었다.
“뜨거운 수증기 확~주마등 스쳐지나”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 양 소방장은 비상벨을 눌러 주민들에게 화재 사실을 알렸다. 119에 신고하긴 했지만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고 만 있을 순 없었다. 그는 디귿자(ㄷ) 형태의 건너편 복도에서 옥내소화전을 찾아 끌고 왔다. 양 소방장이 관창(물뿌리는 부분)을 잡고 관리소직원이 꼬인 호스를 풀어줬다.
불이난 지점을 향해 물을 쏘자 순간적으로 수증기가 증발하며 뜨거운 열기와 검은 연기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그는 17년차 소방관이지만 방호복과 방독면도 없이 반팔·반바지 차림이었기에 일반인과 다를 바 없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찔해 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몸을 낮췄다.
양 소방장은 “사람이 죽기 전에 느낀다는 주마등이 스쳐 지나갔다”며 “평소 근무할 땐 장비를 갖추고 하기에 호흡곤란을 거의 느끼지 못했는데, 이날 ‘보호 장비 없이 화재를 진압하는 건 위험하다’는 사실을 몸소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넓찍한 ‘분무 형태’로 분사 방식을 바꾸고 이를 방패 삼아 열기와 연기를 밖으로 밀어내며 화염에 맞섰다. 그리고는 소방차가 도착하기도 전에 초기진화를 완료했다. 소방관들이 온 후에는 현장을 인계한 후 자리를 떠났다. 이때 옷은 소방수와 검은 연기 오염에 젖어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남매 부모 “하늘에서 내려주신 분”
이 사건은 서울소방재난본부와 서울특별시청 홈페이지 ‘칭찬합시다’에 글이 올라오며 외부에 알려지게 됐다. 글을 올린 아파트 관리소장은 “처음 불이 난 곳으로 가봤을 때 놀라운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린 사람이 소방호스를 이리저리 쏘고 있었다. 소방호스를 만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화재가 다 진압되고 난 다음에는 그분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맙다는 말도 못해서 수소문을 해보니 마포소방서에 근무하는 소방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근무도 아닌 시간에 아무 장비없이 본인의 안위는 돌보지 않고 맨몸으로 초기 진화해 많은 입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준 것에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구조된 어린이의 부모도 글을 올려 “지나던 행인이 불을 다 꺼 주셨고 그분이 소방관이었다는 사실을 경위 진술 과정에서 듣게 됐다. 이분은 하늘에서 내려준 분이라고 느꼈다. 덕분에 저희 아이들은 무사하다”고 감격해 했다.
“홀딱 젖어 집에온 남편…말 안해 몰라”
댓글에도 양 소방관을 향한 격려와 칭찬이 쏟아졌다. 일부 누리꾼들은 “이분 집에 가서 아내에게 등짝 스매싱 맞았겠다”며 후기를 궁금해 했다.
중학교 3학년과 1학년 아들을 둔 양 소방관은 그날 작은 아들을 모임 장소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에 집 근처에 다 와서 화재 현장을 목격했다. 집에 있던 아내는 남편이 올 시간이 됐는데도 돌아오지 않자 휴대전화로 전화를 해봤지만 응답이 없었다.
이때 밖에서 소방차 사이렌이 울리고 동네가 소란스럽자 큰아들이 걱정되는 마음에 아빠를 찾아 나섰다. 동네를 돌아다니던 아들은 “길가에 아빠 차가 세워져 있는데 아빠는 안보인다. 아무래도 아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고 엄마에게 알렸다.
영문을 모르던 부인 김여진 씨는 “처음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남편이 차로 사람을 쳤나? 거의 잠옷 바람으로 나갔는데 대체 어디로 갔지?’라고 생각 했다”고 말했다.
얼마 후 남편은 온몸이 물에 젖은 채 집에 돌아왔다. 양 소방장은 곧장 샤워실로 들어가 1시간이 넘도록 몸을 씻었다. 코와 입에서 기침과 함께 계속 검은 이물질이 나오고 몸에 벤 불 냄새가 가시지 않는 탓이었다.
부인 김 씨는 “평소 물 아끼라더니 왜 그렇게 오래 샤워하나 했다. 본인이 얘기를 안했다. 금방 나오겠지 했는데 욕실에서 나오질 않았다. 나와서도 ‘그냥 뭐 도왔다’ 이런식으로 얼버무려서 넘어갔다. 그런데 다른 분들이 글을 써주고 기사화 되며 자세히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남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들면서도 혼자서 그런 일을 했다니 마음이 아프고, 아내된 입장에서 앞으로는 맨몸으로는 안 들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털어놨다.
양 소방장은 이 일로 지난달 15일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주최한 ‘2023생명존중대상’을 받았다. ‘생명존중대상’은 위험한 순간에도 소중한 생명을 구한 사회의 영웅들을 발굴해 알리는 상이다.
양 소방장은 “결코 저 혼자 해낸 일이 아니다. 끝까지 소방호스를 잡고 보조역할을 해준 관리소 직원분이 큰 도움이 됐다. 여자 아이가 문을 빨리 열어준 것도 고맙다. 그때 만약 아이가 문을 열어주지 않았더라면 내게 큰 트라우마로 남았을 텐데 무사해서 너무 감사하다. 격려해주시는 시민들께도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전했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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