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에도 꽃이 핀다', 언젠가 맞이할 개화를 기다리며
아이즈 ize 이덕행 기자
김백두의 아버지 김태백(최무성)은 씨름계의 전설이다. 큰형 김금강은 금강장사를 5번 차지했으며 작은형 김한라는 한라장사를 6회나 차지했다. 유일하게 이름값을 못 하는 건 자신뿐이다. 가장 높은 체급의 이름(백두)을 가졌지만, 가장 낮은 체급에서 뛰고 있으며 형들과 달리 변변한 장사 타이틀 하나 없다. 은퇴 위기까지 몰렸지만, 그저 씨름이 좋은 백두는 결국 씨름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런 백두가 마침내 자신의 실력을 꽃피울 날이 올 수 있을까.
ENA '모래에도 꽃이 핀다'(극본 원유정, 연출 김진우)는 20년째 떡잎인 씨름 신동 김백두(장동윤)와 소싯적 골목대장인 그의 첫사랑 오유경(이주명)이 다시 만나며 벌어지는 청춘 성장 로맨스를 담은 작품이다. 어린 시절 촉망받는 유망주로 씨름 스타가 될 만한 조건을 모두 갖췄지만, 현재는 변변한 타이틀 하나 없는 씨름 선수 김백두는 장동윤이 맡았다. 어린 시절, 동네를 휘어잡은 골목대장이자 오두식이 아닌 새로운 이름으로 거산군청 씨름단 관리팀장이 된 오유경은 배우 이주명이 연기한다.
장동윤은 김백두라는 캐릭터를 외적으로 또 내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하며 드라마를 이끌어가고 있다. 김백두는 씨름선수라는 캐릭터의 특성상 외적인 부분에 먼저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장동윤은 배역을 위해 14kg을 증량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씨름에서는 상의 탈의가 기본이기 때문에 단순히 몸집을 불리는 것만으로는 느낌을 주기 어렵다. 장동윤은 단순히 몸집을 불린 것을 넘어 '탄탄하다'는 인상을 주는 몸을 완성하며 외적인 몰입도를 높였다.
김백두라는 캐릭터가 가진 특징과 서사 역시 잘 풀어내고 있다. 백두는 받았던 기대에 비해 변변치 않은 성과를 이뤄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백두의 천성 때문이다. '삥땅 친' 4만원을 돌려주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본인도 승부 조작 루머에 휩싸였지만 공범 취급을 받는 임동석(김태정)에게 농담을 가장한 위로와 믿음을 보내는 백두를 어찌 미워할 수 있으랴. 그렇다고 매 순간 '맹탕'인 건 아니다. 순간 번뜩이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유일하게 오유경이 오두식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어릴 적 봤던 비디오에 나온 추미숙이라는 이름을 바탕으로 오유경이 잠복수사 중인 경찰이라는 점을 알아채기도 한다.
장동윤은 이렇게 만사가 천하태평인 김백두의 우유부단함과 간간히 보여주는 날카로움,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속에 숨겨둔 마음까지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고 있다.
오유경을 연기한 이주명은 장동윤과 좋은 호흡을 보여주고 있다. 달라진 이름으로 고향에 내려온 오유경은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를 끝까지 눈치채지 않기를 바라지만, 집요할 정도로 파고든 백두 덕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그래서인지 백두에게만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 백두와 유경이 티격태격하면서 조금씩 서로의 진심을 알아차리는 과정은 풋풋함을 선사한다.
두 사람을 둘러싼 인물들도 인상적이다. 이 밖에도 씨름부 필두(우현)을 중심으로 씨름단에 무슨 일이 생기기만하면 움직이는 마을 남자들과 이를 바라보는 거산시장 삼총사, 아들은 라이벌 관계지만 서로는 절친 관계인 백두 엄마(장영남)와 진수 엄마(황석정) 등 정 많고 개성 넘치는 거산시장 사람들의 모습은 따뜻함을 선사한다. 지금은 하루가 멀다하고 흰둥이만 좇고 있는 석희(이주승) 역시 매번 헛다리만 짚지만, 그래도 중요한 순간 한 건을 해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또 외지인에서 시나브로 거산 사람이 된 주미란(김보라)의 사연 역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모래에도 꽃이 핀다'는 단순히 따뜻한 드라마에 그치지 않는다. 다시 씨름에 도전한 백두의 이야기 말고도 또 다른 이야기가 큰 줄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최칠성의 사망에서 시작되는 살인 사건 이야기다. 마을 사람들이 주는 힐링과 좌절을 딛고 이겨내는 백두의 성장이 주를 이룰 것 같은 작품의 분위기와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승부조작·불법도박 등의 장치는 등장인물들과 사건 사이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며 별다른 위화감을 주지 않는다.
물론, 가장 큰 이야기는 김백두의 성장사다. 선수를 은퇴하겠다는 백두의 말에 태백은 "악착같이 물고 늘어져 뭣 좀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안드냐"고 호통친다. 이에 백두가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는데도 끝까지 뭣도 못 보여주면 그때는?"이라고 되묻자 태백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물론, 말은 이렇게 했지만, 백두는 여전히 씨름에 진심이다. 술김에 했던 은퇴 선언을 아무도 말리지 않아 자연스레 은퇴하는가 싶다가도 '뻔뻔하게' 다시 돌아오고, 한때는 절친이었던 친구가 코치가 되어 자신을 엔트리에서 제외하자 '꼭 뛰어야겠다'고 소리치는 백두의 모습에서 그 진심을 확인할 수 있다.
척박한 모래판 위에서 꽃이 핀다면, 그 거름은 진심일 것이다. 그리고 씨름을 향한 백두의 진심은 충분한 자양분이 되어 꽃망울을 키우고 있다. '모래에도 꽃이 핀다면'을 계속 본다면 그 꽃망울이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직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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