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만 부추기는 정치인 막말, 우려스럽다”[만나고 싶었습니다](3)
2024. 1. 5. 13:02
강상구 노회찬정치학교 교장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말이 쏟아지지만, 상대를 향한 ‘분노의 막말’과 실체 없이 텅 빈 ‘좋은 말’들은 유권자들의 귀에 가 닿지 못한다. 강상구 노회찬정치학교 교장은 “(막말은) 일종의 ‘매운맛’ 중독이다. 그런 말들이 쌓이고 쌓여 물리적인 폭력으로까지 연결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회찬의 말’이 있던 시기에는 막말의 바다 속에서도 사람들이 바라볼 수 있는 ‘부표’ 같은 게 있었다. 지금은 그게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 교장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말해 논란이 된 ‘동료 시민’에 대해서는 “좋은 의미의 말이 ‘한동훈’이라는 메신저에서 나오자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그 색안경은 사람들이 알아서 낀 게 아니라 한 위원장이 나눠준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좋은 말’의 의미가 정치인의 삶의 궤적과 일치할 때만 그 말에도 힘이 생긴다는 뜻이다. 강상구 교장은 2019년 <노회찬의 말하기>(이음), <언제나, 노회찬 어록>(루아크)을 출간했고 지난해 11월에는 노회찬재단에서 ‘약자들의 무기, 노회찬의 말하기 교실’을 진행했다. 연 1회로 기획됐던 강의는 문의와 요청이 잇따르면서 곧 2기 강의 개설을 앞두고 있다. 연 7회로 일정도 대폭 늘어났다. 강 교장은 “노회찬의 말이 주는 후련함은 지금 양당 정치세력의 극단적 지지자들만 열광하게 하는 후련함과 달랐다. 평범한 국민, 사회적 약자들이 ‘내가 주인이구나’라고 알게 되는 후련함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3일 서울시 구로구 천왕동에서 강상구 노회찬정치학교 교장을 만났다.
-정치인 고(故) 노회찬 전 의원의 말에 주목하는 이유는.
“정치인의 말은 공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정치인의 말’이라고 하면 ‘막말’이 떠오를 정도로 경쟁세력에 대한 분노만 부추기는 말이 너무 많다. ‘막말’은 지지자를 결집하는 데 효과적이다. 또 막말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극렬 지지세력의 반응도 더해진다. 일종의 ‘매운맛’ 중독이다. 그런 말들이 쌓이고 쌓여 물리적인 폭력으로까지 연결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또 거대양당 간 막말을 앞세운 싸움 속에서 비정규직, 기후재난, 소수자의 권리 등 약자들의 시급한 문제들은 실종된다. ‘노회찬의 말’이 있던 시기에는 막말의 바다 속에서도 사람들이 바라볼 수 있는 ‘부표’ 같은 게 있었다. 지금은 그게 보이지 않는다. 막말 중독에 해독제가 없는 셈이다. 정치인의 말이 정쟁의 도구, 차별·혐오의 도구가 된 상황에서 말을 평등의 도구, 풍자의 도구 나아가 약자의 무기로 썼던 노회찬의 말에 주목하는 이유다.”
-노회찬 의원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국면에서 치러진 17대 총선을 앞두고 방송사 토론에 나서면서 대중에게 각인됐다. 양당체제를 비판하며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 먹으면 고기가 시커메집니다. 판을 갈 때가 왔습니다’라고 말한 일은 지금도 유명하다. ‘판갈이론’은 이전부터 있었는데, 유독 노 의원의 말이 큰 화제가 됐던 이유는 뭘까.
“‘삼겹살 불판’은 ‘정치치제를 바꾸자’는 말이다. 어려운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상에서 쓰는 말들도 아니었다. 노 의원이 ‘삼겹살 불판’이라는 친숙한 재료를 사용해 메시지를 담아냈기에 화제가 될 수 있었다고 본다. 물론 비유 자체의 신선함만으로 사람들이 그렇게 오래 기억하지는 않는다. 철학이 없는 비유는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당시 노 의원은 ‘삼겹살 불판’만이 아니라 국민의 시선, 사회적 약자들의 시선에서 새로운 논리, 신선한 비유·풍자 등을 종합적으로 제시했다. 이를 통해 노 의원은 ‘TV 보고 계시는 국민 여러분이 정치의 주인이다’라는 메시지를 주었다. 예를 들면 당시 법원은 2002년 한나라당이 LG그룹으로부터 150억원이 실린 2.5t 탑차를 불법 정치자금으로 받은, 일명 ‘차떼기’ 사건 판결에서 재벌 총수, 국회의원의 형을 감경해줬다. 노 의원은 이에 대해 ‘국회의원은 3선 의원이므로 형을 낮춘다. (재벌 총수는) 한국경제에 오랫동안 이바지한 바가 크므로 낮춘다. 다 그런 식이에요. 국가 경제를 위해 30년 동안 노동자로 일해왔기 때문에, 지난 25년간 농사짓느라고 땀 많이 흘렸기 때문에 형을 경감한다, 이런 판결 있습니까?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생전 처음 듣는 논리였지만, 이 발언으로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해야 하나, 만 명만 평등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드러냈다. 동시에 노동자와 농민, 사회적 약자들, 소위 힘없고 백없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올려놓았다. 그 외에도 많다. 토론회에서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민주당, 자민련 의원들이 서로 발언하겠다고 나섰다. 사회자가 이를 제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자 ‘밖에서는 국민을 괴롭히더니, 안에서는 사회자를 괴롭히네요’라고 말해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함께 후련함을 남겼다. 이 후련함은 양당의 정치세력이 할 말 못할 말 다하면서 극단적 지지자들만 열광하게 하는 지금의 후련함과는 다르다. 평범한 국민, 사회적 약자들이 ‘내가 주인이구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저거였어’라고 알게 되는 후련함이다. 당시 토론을 보던 국민 입장에서는 명절도 아닌데 종합선물세트를 덜컥 받은 느낌이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구성품이 가득했고, 그 구성품 하나하나가 국민의 목소리 그 자체였기 때문에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노회찬 의원 말의 원천, 철학은 무엇이었나.
“‘노회찬의 말’의 근원은 ‘약자와 함께하는 철학’이다. 말로만 약자를 위하는 것과 실제 그런 철학을 지니고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어 최근 한동훈 위원장의 ‘동료 시민’이라는 말이 논란이 되고 있다. ‘시민’의 사전적 의미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정치적 권리를 갖고 있는 주체’다. 만약에 노 의원이 ‘동료 시민’이라는 말을 썼다면 모두 수긍했을 것이다. 한 위원장도 ‘동료 시민’의 뜻을 지식의 수준에서는 이해하고 있겠지만,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좋은 의미의 말이 ‘한동훈’이라는 메신저에게서 나오자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 색안경은 사람들이 알아서 낀 게 아니라 한 위원장이 나눠준 것이다. 대다수의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많은 정치인이 ‘공정’, ‘평화’, ‘상식’ 등의 좋은 말을 하지만, 그들은 그런 말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좋은 말’이 뻔하고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노회찬 의원은 ‘뻔한 말’을 실제 삶에서 구현하려 했던 사람이다. 노 의원은 어떤 원칙을 가졌기에 그렇게 살게 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저야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살았을 뿐이에요. 어려움이 예상되더라도 옳다고 믿으면 행하라, 이렇게 교과서에서 배웠지 옳은 건 옳은 것이지만 대충 불리할 때는 뒤로 빠져라, 그렇게 가르치는 선생님은 한분도 안 계셨습니다.’ 교과서가 ‘뻔한 말’의 잔칫상 같은 것 아닌가. 그 말을 보고 진짜 삶을 그렇게 살아버린 것이다. 노회찬 말의 힘은 ‘말 아닌 것의 힘’ 바로 삶에서 나왔다.”
-‘노회찬의 말’과 일치되는 정치인 노회찬의 궤적을 소개해 달라.
“‘투명인간’으로 불렸던 분들과 늘 함께했다. 2009년 쌍용자동차정리해고 반대투쟁, 용산참사 현장 등 긴급한 필요가 있는 현장에 항상 함께했다. 국회의원으로서 발의한 법안을 살펴보면 더욱 그렇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2021년 제정됐지만, 2017년 4월 노 의원이 사회운동 연대단체와 함께 준비해 발의한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이 그 토대였다. 2007년에는 민주노동당 민생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법제화를 위한 운동을 해 전국의 영세자영업자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당시 노 의원은 신용카드사들이 대형 유통업체에는 낮은 수수료를 받으면서 중소상인들에게는 폭리를 취하는 행태를 지적했고, 2007년 11월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가 대폭 인하됐다. 이 노력은 굉장히 오랫동안 지속돼 2018년 ‘중소자영업자의 신용카드 우대수수료율 적용확대를 위한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 발의로 이어졌다. 차별과 혐오에 맞선 싸움도 중요했다. 2005년에는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고, 2007년 통과됐다. 2006년에는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 등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고, 2008년에는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차별금지법에는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 금지’가 포함돼 있다. 노 의원은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못한 것을 두고 ‘우리의 민주화가 절반밖에 안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회찬의 말하기 특징으로 ‘선명하게 말하기’, ‘쉽게 말하기’, ‘친절하기 말하기’, ‘재미있게 말하기’, ‘통쾌하게 말하기’ 등을 꼽았다.
“앞의 세 가지는 ‘말의 철학 및 자세’와 관련된 것이다. 뒤의 두 가지는 ‘말의 기술’에 대한 것이다. 흔히 노회찬 의원을 떠올리면 ‘말의 기술’을 주로 떠올리지만 이는 수면 위에 올라온 것이고, 수면 아래에는 ‘말의 철학 및 자세’가 거대하게 자리하고 있다. ‘선명하게 말하기’는 과격하거나 거칠게 말하는 것과 다른데 어느 당을 막론하고 이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 잘 들려야 선명한 거다. 노 의원은 “정치를 배달증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자신의 뜻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자신의 말이 쉽고 일상적으로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또 ‘내가 한 말은 이미 누가 한 말이다’라는 말도 했다. 말의 창조자이면서 동시에 수집가였는데, 평범한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며 ‘말의 재료’를 건져 올리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책에서 본 말을 읊조리는 게 아니라 자신이 대변해야 하는 사람들의 말을 하는 게 정치인의 기본이다. 쉽게 말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 노 의원의 말 중 요즘 같은 때 소개하고 싶은 재미있고 통쾌한 말이 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이 중국 건국 55주년 기념 리셉션에 참여했을 때, 방중을 비판하는 당원들도 있었다. 중국공산당의 천안문 사태 무력 진압, 티베트 인권 탄압 때문이었다. 당시 노 의원은 ‘외교는 사교가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요즘 딱 들어맞는 말 같다. 또 ‘대다수 국민에게는 대한민국이 험지입니다’라는 말도 했다. 선거철에 정치인들이 당선 가능성만을 두고 ‘험지냐 아니냐’를 따지는데, 많은 국민은 대한민국에서 학교 다니기 힘들고, 취업하기 힘들고, 아이 키우기 힘들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정치인의 말하기가 점점 ‘토론 배틀’처럼 돼가는 경향이 있다.
“정치세력 간에 전쟁하듯 싸우지만, 거기에는 진짜 삶 속에서 전쟁을 치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없다. 정치라는 무대에 선 ‘잘난 자들’끼리의 격투기에 불과하다. 노회찬 의원은 정치라는 무대 위에 ‘무대 밖의 프레임’을 갖고 왔다. 관중으로 머물기를 강요당한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일이었다. 예컨대 노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306세대’를 언급했다. ‘386(3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세대’라는 말에는 대학에 다녔다는 의미가 들어 있지만, 그 세대 중에는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이 사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국회의원, 재벌 감형’ 비판도 마찬가지다. 이런 프레임이 신선하게 보이는 건 한국 정치의 주류에게는 없는 사고의 틀이기 때문이다. 노 의원은 단지 토론에서 이기는 것, 타당을 비판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이 이기는 것, 기존 양당제의 폐해를 넘어 새로운 정치체제로 나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토론에서도 ‘무대 밖의 프레임’을 견지했다.”
-총선을 앞두고 노회찬 의원을 언급하는 정치인이 많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도 ‘함께할 수 있는 스펙트럼은 노회찬의 정의당까지’라고 말했다.
“여성에 대한 혐오에 기반해 정치적 자산을 쌓은 게 이준석 전 대표다. 노회찬 의원이 최초로 발의한 법안이 ‘호주제 폐지 법안’이었다. 3월 8일 여성의날마다 장미꽃을 나눠줬다. <82년생 김지영>(조남주·민음사)을 읽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권했고, 조남주 작가와의 대화에서는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야만으로부터 탈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야만에 편승했던 게 이 전 대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노회찬의 정의당’까지 함께할 수 있다니. 그동안의 과오를 반성하겠다는 뜻인가. 그런 거라면 부끄러워 말고 솔직히 말하길 바란다. 노회찬 의원이 계셨더라면 ‘정상참작’을 해보겠다거나 ‘성평등 세상으로의 귀순을 환영한다’고 했을 수도 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이 전 대표가 아무리 김칫국을 마셔도 노회찬 의원이 떡 줄 생각을 했을 리가 없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말이 쏟아진다. 정치인의 말은 어떠해야 할까.
“정치인의 말이 한 사회에 모범이 돼야 하는데, 지금은 정치권이 말의 우범지대가 됐다. 정치인의 말이 사회변화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또 지금 정치인들의 말은 그저 정쟁의 수단이다. 일례로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취임사에는 복수심만 가득했다. 민주당 싫은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새로 뽑힌 운전사가 보복운전을 다짐하면 되나. 국민을 안전하게 목표지점으로 모시고 갈 생각 같은 건 없나. 노 의원은 ‘분노는 뜨겁지만 물도 끓일 수 없다’고 했는데, 이런 식의 분노가 제일 하찮은 분노다. 세상의 변화나 시민들의 삶에 대한 비전을 두고 벌이는 경쟁은 불가능한가. 예를 들어 주요 정치인들이 기후재난 대책을 놓고 격론을 벌이는 일을 본 적이 없다. 그런 걸 좀 해보자. 끝으로 품격 있고 세련되게 말하자. 위트가 가미되면 더 좋다. 예를 들면 이렇게 말이다. 2018년 정의당 신년인사회 때 노회찬 의원은 ‘포복절도의 한 해를 만들겠습니다’라고 했다. ‘가득 찰 포(飽), 배 복(腹)으로 배를 가득 차게 만들고, 절도(絶盜)는 도둑을 근절하겠다는 의미’라면서 ‘민생을 챙기고 세금도둑, 양심도둑을 근절하겠다’고 말했다. 올해가 진짜 그런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말이 쏟아지지만, 상대를 향한 ‘분노의 막말’과 실체 없이 텅 빈 ‘좋은 말’들은 유권자들의 귀에 가 닿지 못한다. 강상구 노회찬정치학교 교장은 “(막말은) 일종의 ‘매운맛’ 중독이다. 그런 말들이 쌓이고 쌓여 물리적인 폭력으로까지 연결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회찬의 말’이 있던 시기에는 막말의 바다 속에서도 사람들이 바라볼 수 있는 ‘부표’ 같은 게 있었다. 지금은 그게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 교장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말해 논란이 된 ‘동료 시민’에 대해서는 “좋은 의미의 말이 ‘한동훈’이라는 메신저에서 나오자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그 색안경은 사람들이 알아서 낀 게 아니라 한 위원장이 나눠준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좋은 말’의 의미가 정치인의 삶의 궤적과 일치할 때만 그 말에도 힘이 생긴다는 뜻이다. 강상구 교장은 2019년 <노회찬의 말하기>(이음), <언제나, 노회찬 어록>(루아크)을 출간했고 지난해 11월에는 노회찬재단에서 ‘약자들의 무기, 노회찬의 말하기 교실’을 진행했다. 연 1회로 기획됐던 강의는 문의와 요청이 잇따르면서 곧 2기 강의 개설을 앞두고 있다. 연 7회로 일정도 대폭 늘어났다. 강 교장은 “노회찬의 말이 주는 후련함은 지금 양당 정치세력의 극단적 지지자들만 열광하게 하는 후련함과 달랐다. 평범한 국민, 사회적 약자들이 ‘내가 주인이구나’라고 알게 되는 후련함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3일 서울시 구로구 천왕동에서 강상구 노회찬정치학교 교장을 만났다.
-정치인 고(故) 노회찬 전 의원의 말에 주목하는 이유는.
“정치인의 말은 공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정치인의 말’이라고 하면 ‘막말’이 떠오를 정도로 경쟁세력에 대한 분노만 부추기는 말이 너무 많다. ‘막말’은 지지자를 결집하는 데 효과적이다. 또 막말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극렬 지지세력의 반응도 더해진다. 일종의 ‘매운맛’ 중독이다. 그런 말들이 쌓이고 쌓여 물리적인 폭력으로까지 연결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또 거대양당 간 막말을 앞세운 싸움 속에서 비정규직, 기후재난, 소수자의 권리 등 약자들의 시급한 문제들은 실종된다. ‘노회찬의 말’이 있던 시기에는 막말의 바다 속에서도 사람들이 바라볼 수 있는 ‘부표’ 같은 게 있었다. 지금은 그게 보이지 않는다. 막말 중독에 해독제가 없는 셈이다. 정치인의 말이 정쟁의 도구, 차별·혐오의 도구가 된 상황에서 말을 평등의 도구, 풍자의 도구 나아가 약자의 무기로 썼던 노회찬의 말에 주목하는 이유다.”
-노회찬 의원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국면에서 치러진 17대 총선을 앞두고 방송사 토론에 나서면서 대중에게 각인됐다. 양당체제를 비판하며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 먹으면 고기가 시커메집니다. 판을 갈 때가 왔습니다’라고 말한 일은 지금도 유명하다. ‘판갈이론’은 이전부터 있었는데, 유독 노 의원의 말이 큰 화제가 됐던 이유는 뭘까.
“‘삼겹살 불판’은 ‘정치치제를 바꾸자’는 말이다. 어려운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상에서 쓰는 말들도 아니었다. 노 의원이 ‘삼겹살 불판’이라는 친숙한 재료를 사용해 메시지를 담아냈기에 화제가 될 수 있었다고 본다. 물론 비유 자체의 신선함만으로 사람들이 그렇게 오래 기억하지는 않는다. 철학이 없는 비유는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당시 노 의원은 ‘삼겹살 불판’만이 아니라 국민의 시선, 사회적 약자들의 시선에서 새로운 논리, 신선한 비유·풍자 등을 종합적으로 제시했다. 이를 통해 노 의원은 ‘TV 보고 계시는 국민 여러분이 정치의 주인이다’라는 메시지를 주었다. 예를 들면 당시 법원은 2002년 한나라당이 LG그룹으로부터 150억원이 실린 2.5t 탑차를 불법 정치자금으로 받은, 일명 ‘차떼기’ 사건 판결에서 재벌 총수, 국회의원의 형을 감경해줬다. 노 의원은 이에 대해 ‘국회의원은 3선 의원이므로 형을 낮춘다. (재벌 총수는) 한국경제에 오랫동안 이바지한 바가 크므로 낮춘다. 다 그런 식이에요. 국가 경제를 위해 30년 동안 노동자로 일해왔기 때문에, 지난 25년간 농사짓느라고 땀 많이 흘렸기 때문에 형을 경감한다, 이런 판결 있습니까?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생전 처음 듣는 논리였지만, 이 발언으로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해야 하나, 만 명만 평등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드러냈다. 동시에 노동자와 농민, 사회적 약자들, 소위 힘없고 백없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올려놓았다. 그 외에도 많다. 토론회에서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민주당, 자민련 의원들이 서로 발언하겠다고 나섰다. 사회자가 이를 제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자 ‘밖에서는 국민을 괴롭히더니, 안에서는 사회자를 괴롭히네요’라고 말해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함께 후련함을 남겼다. 이 후련함은 양당의 정치세력이 할 말 못할 말 다하면서 극단적 지지자들만 열광하게 하는 지금의 후련함과는 다르다. 평범한 국민, 사회적 약자들이 ‘내가 주인이구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저거였어’라고 알게 되는 후련함이다. 당시 토론을 보던 국민 입장에서는 명절도 아닌데 종합선물세트를 덜컥 받은 느낌이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구성품이 가득했고, 그 구성품 하나하나가 국민의 목소리 그 자체였기 때문에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노회찬의 말’이 있던 시기에는 막말의 바다 속에서도 사람들이 바라볼 수 있는 ‘부표’ 같은 게 있었다. 정치인의 말이 정쟁의 도구가 된 상황에서 말을 평등의 도구, 풍자의 도구 나아가 약자의 무기로 썼던 노회찬의 말에 주목하는 이유다.”
-노회찬 의원 말의 원천, 철학은 무엇이었나.
“‘노회찬의 말’의 근원은 ‘약자와 함께하는 철학’이다. 말로만 약자를 위하는 것과 실제 그런 철학을 지니고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어 최근 한동훈 위원장의 ‘동료 시민’이라는 말이 논란이 되고 있다. ‘시민’의 사전적 의미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정치적 권리를 갖고 있는 주체’다. 만약에 노 의원이 ‘동료 시민’이라는 말을 썼다면 모두 수긍했을 것이다. 한 위원장도 ‘동료 시민’의 뜻을 지식의 수준에서는 이해하고 있겠지만,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좋은 의미의 말이 ‘한동훈’이라는 메신저에게서 나오자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 색안경은 사람들이 알아서 낀 게 아니라 한 위원장이 나눠준 것이다. 대다수의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많은 정치인이 ‘공정’, ‘평화’, ‘상식’ 등의 좋은 말을 하지만, 그들은 그런 말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좋은 말’이 뻔하고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노회찬 의원은 ‘뻔한 말’을 실제 삶에서 구현하려 했던 사람이다. 노 의원은 어떤 원칙을 가졌기에 그렇게 살게 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저야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살았을 뿐이에요. 어려움이 예상되더라도 옳다고 믿으면 행하라, 이렇게 교과서에서 배웠지 옳은 건 옳은 것이지만 대충 불리할 때는 뒤로 빠져라, 그렇게 가르치는 선생님은 한분도 안 계셨습니다.’ 교과서가 ‘뻔한 말’의 잔칫상 같은 것 아닌가. 그 말을 보고 진짜 삶을 그렇게 살아버린 것이다. 노회찬 말의 힘은 ‘말 아닌 것의 힘’ 바로 삶에서 나왔다.”
-‘노회찬의 말’과 일치되는 정치인 노회찬의 궤적을 소개해 달라.
“‘투명인간’으로 불렸던 분들과 늘 함께했다. 2009년 쌍용자동차정리해고 반대투쟁, 용산참사 현장 등 긴급한 필요가 있는 현장에 항상 함께했다. 국회의원으로서 발의한 법안을 살펴보면 더욱 그렇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2021년 제정됐지만, 2017년 4월 노 의원이 사회운동 연대단체와 함께 준비해 발의한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이 그 토대였다. 2007년에는 민주노동당 민생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법제화를 위한 운동을 해 전국의 영세자영업자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당시 노 의원은 신용카드사들이 대형 유통업체에는 낮은 수수료를 받으면서 중소상인들에게는 폭리를 취하는 행태를 지적했고, 2007년 11월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가 대폭 인하됐다. 이 노력은 굉장히 오랫동안 지속돼 2018년 ‘중소자영업자의 신용카드 우대수수료율 적용확대를 위한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 발의로 이어졌다. 차별과 혐오에 맞선 싸움도 중요했다. 2005년에는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고, 2007년 통과됐다. 2006년에는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 등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고, 2008년에는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차별금지법에는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 금지’가 포함돼 있다. 노 의원은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못한 것을 두고 ‘우리의 민주화가 절반밖에 안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회찬의 말하기 특징으로 ‘선명하게 말하기’, ‘쉽게 말하기’, ‘친절하기 말하기’, ‘재미있게 말하기’, ‘통쾌하게 말하기’ 등을 꼽았다.
“앞의 세 가지는 ‘말의 철학 및 자세’와 관련된 것이다. 뒤의 두 가지는 ‘말의 기술’에 대한 것이다. 흔히 노회찬 의원을 떠올리면 ‘말의 기술’을 주로 떠올리지만 이는 수면 위에 올라온 것이고, 수면 아래에는 ‘말의 철학 및 자세’가 거대하게 자리하고 있다. ‘선명하게 말하기’는 과격하거나 거칠게 말하는 것과 다른데 어느 당을 막론하고 이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 잘 들려야 선명한 거다. 노 의원은 “정치를 배달증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자신의 뜻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자신의 말이 쉽고 일상적으로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또 ‘내가 한 말은 이미 누가 한 말이다’라는 말도 했다. 말의 창조자이면서 동시에 수집가였는데, 평범한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며 ‘말의 재료’를 건져 올리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책에서 본 말을 읊조리는 게 아니라 자신이 대변해야 하는 사람들의 말을 하는 게 정치인의 기본이다. 쉽게 말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 노 의원의 말 중 요즘 같은 때 소개하고 싶은 재미있고 통쾌한 말이 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이 중국 건국 55주년 기념 리셉션에 참여했을 때, 방중을 비판하는 당원들도 있었다. 중국공산당의 천안문 사태 무력 진압, 티베트 인권 탄압 때문이었다. 당시 노 의원은 ‘외교는 사교가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요즘 딱 들어맞는 말 같다. 또 ‘대다수 국민에게는 대한민국이 험지입니다’라는 말도 했다. 선거철에 정치인들이 당선 가능성만을 두고 ‘험지냐 아니냐’를 따지는데, 많은 국민은 대한민국에서 학교 다니기 힘들고, 취업하기 힘들고, 아이 키우기 힘들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정치인의 말하기가 점점 ‘토론 배틀’처럼 돼가는 경향이 있다.
“정치세력 간에 전쟁하듯 싸우지만, 거기에는 진짜 삶 속에서 전쟁을 치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없다. 정치라는 무대에 선 ‘잘난 자들’끼리의 격투기에 불과하다. 노회찬 의원은 정치라는 무대 위에 ‘무대 밖의 프레임’을 갖고 왔다. 관중으로 머물기를 강요당한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일이었다. 예컨대 노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306세대’를 언급했다. ‘386(3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세대’라는 말에는 대학에 다녔다는 의미가 들어 있지만, 그 세대 중에는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이 사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국회의원, 재벌 감형’ 비판도 마찬가지다. 이런 프레임이 신선하게 보이는 건 한국 정치의 주류에게는 없는 사고의 틀이기 때문이다. 노 의원은 단지 토론에서 이기는 것, 타당을 비판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이 이기는 것, 기존 양당제의 폐해를 넘어 새로운 정치체제로 나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토론에서도 ‘무대 밖의 프레임’을 견지했다.”
-총선을 앞두고 노회찬 의원을 언급하는 정치인이 많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도 ‘함께할 수 있는 스펙트럼은 노회찬의 정의당까지’라고 말했다.
“여성에 대한 혐오에 기반해 정치적 자산을 쌓은 게 이준석 전 대표다. 노회찬 의원이 최초로 발의한 법안이 ‘호주제 폐지 법안’이었다. 3월 8일 여성의날마다 장미꽃을 나눠줬다. <82년생 김지영>(조남주·민음사)을 읽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권했고, 조남주 작가와의 대화에서는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야만으로부터 탈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야만에 편승했던 게 이 전 대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노회찬의 정의당’까지 함께할 수 있다니. 그동안의 과오를 반성하겠다는 뜻인가. 그런 거라면 부끄러워 말고 솔직히 말하길 바란다. 노회찬 의원이 계셨더라면 ‘정상참작’을 해보겠다거나 ‘성평등 세상으로의 귀순을 환영한다’고 했을 수도 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이 전 대표가 아무리 김칫국을 마셔도 노회찬 의원이 떡 줄 생각을 했을 리가 없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말이 쏟아진다. 정치인의 말은 어떠해야 할까.
“정치인의 말이 한 사회에 모범이 돼야 하는데, 지금은 정치권이 말의 우범지대가 됐다. 정치인의 말이 사회변화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또 지금 정치인들의 말은 그저 정쟁의 수단이다. 일례로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취임사에는 복수심만 가득했다. 민주당 싫은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새로 뽑힌 운전사가 보복운전을 다짐하면 되나. 국민을 안전하게 목표지점으로 모시고 갈 생각 같은 건 없나. 노 의원은 ‘분노는 뜨겁지만 물도 끓일 수 없다’고 했는데, 이런 식의 분노가 제일 하찮은 분노다. 세상의 변화나 시민들의 삶에 대한 비전을 두고 벌이는 경쟁은 불가능한가. 예를 들어 주요 정치인들이 기후재난 대책을 놓고 격론을 벌이는 일을 본 적이 없다. 그런 걸 좀 해보자. 끝으로 품격 있고 세련되게 말하자. 위트가 가미되면 더 좋다. 예를 들면 이렇게 말이다. 2018년 정의당 신년인사회 때 노회찬 의원은 ‘포복절도의 한 해를 만들겠습니다’라고 했다. ‘가득 찰 포(飽), 배 복(腹)으로 배를 가득 차게 만들고, 절도(絶盜)는 도둑을 근절하겠다는 의미’라면서 ‘민생을 챙기고 세금도둑, 양심도둑을 근절하겠다’고 말했다. 올해가 진짜 그런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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