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착취 굴레 속에서 손수레를 끌다

2024. 1. 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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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2000여 ‘폐지수집 노인’ 시급은 1226원… 수집·분류 위한 대가 없는 노동은 덤일 뿐
박씨 노인이 지난 1월 2일 폐골판지를 들고 골목길을 지나가고 있다. 20년 전 허리를 심하게 다친 박씨는 허리를 곧게 펼 수 없고, 상반신도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효상 기자


1946년생 여성 박씨는 상반신이 오른쪽으로 30도가량 기울었다. 허리는 곧게 펴지지 않는다. 한발 디딜 때마다 무게중심이 오른쪽으로 쏠려 위태위태했다. 그럼에도 걸음은 빨랐다. 거점인 주차장까지 가는 길에 몇 번이고 날랜 몸짓으로 폐골판지를 주웠다. 누군가 수풀 뒤에 숨겨놓은 듯한, 차곡차곡 쌓여 있는 계란판 세 묶음 중 두 묶음을 서슴없이 낚아챘다. 수풀 옆 노점 주인이 이 모습을 바라보다 “어떤 할머니가 놔둔 건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박씨는 “그럼 하나는 두고”라며 마저 손에 쥐려던 한 묶음은 포기하고 주차장으로 가는 발길을 재촉했다.

차들이 드문드문 서 있는 유료 주차장 한켠에 폐지 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박씨가 이날 모은 것들이다. 내일 새벽 고물상으로 가기 전 폐지를 종류별로 나눠야 한다. 분류하지 않으면 고물상은 1㎏당 70~80원은 받을 신문지를 1㎏당 30~40원밖에 안 주는 폐골판지로 취급해버린다. 제값을 받으려면 분류에 공을 들여야 한다.

어쩌다 박씨는 주차장에서 폐지를 분류하게 됐을까. 누구의 선의도 아니었다. 박씨는 이 주차장의 근무자들이 자리를 비우는 오후 시간에 주차장을 대신 봐주는 일을 한다. 그 시간은 5시간일 수도 있고, 6시간일 수도 있다. 근무자들이 얼마나 빨리 근무지로 복귀하느냐에 달려 있다. 빨라도 오후 7시, 늦으면 오후 9시 무렵에야 박씨는 집에 갈 수 있다. 그러고도 주차장에서 어떤 임금도 받지 않는다. 그저 고물을 부려놓을 공간을 얻기 위해 주차장 경비 노릇을 한다. 고용주도 없고, 4대 보험도 없이 하루의 4분의 1을 주차장 관리 일을 하며 보낸다.

박씨는 “차 두 대 (주차할 자리) 값이면 월 50만원이야. 고물을 길에 놔두면 다 가져가고 없어”라고 했다.

박씨 같은 노인들은 더 있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폐지수집 노인들의 삶을 들여다본 책 <가난의 문법>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한 여성은 매일 아침 옆 동네의 상가건물에 가서 청소를 하고, 쓸 만한 재활용품을 수집해 온다. (중략) 다세대주택을 소유한 한 건물주는 노인들을 데려와 건물 내부 청소를 하게끔 하고, 그 대가로 재활용품을 가져갈 수 있게 한다.”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이걸 착취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세계가 있다. 가난한 노인들이 사는 세상이다. 폐지수집 외에 달리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은 이들의 노동력을 한없이 저렴하게 만든다.

한없이 저렴한 노동력


폐지수집 노인 박씨의 손과 발. 박씨는 몇 년 전 폐지수집 중 쓰러지는 손수레에 오른손을 맞아 엄지손가락 뼈가 함몰됐다. 추운 날씨에 반복적으로 박스의 테이프를 떼다 보니 양손 엄지손가락 끝이 갈라져 밴드를 붙였다. 하루에 상당한 거리를 걷기에 발뒤꿈치도 갈라져 있다. 이효상 기자


폐지를 줍는 일 또한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박씨는 새벽 3시 30분이면 눈을 뜬다. 몸이 불편해 잠을 깊이 못 이루는 쪽에 가깝다. 늦어도 새벽 4시 20분에는 주차장으로 내려와 전날 분류해 놓은 폐지를 손수레 2개에 나눠 싣는다. 손수레를 하나씩 끌고 고물상을 두 번 다녀오면 오전 6시가 된다. 새벽 교회에서 나눠주는 바나나와 삶은 달걀을 먹고, 오전 8시부터는 골목길을 누비며 다시 폐지를 모은다. 한 동네에서 10년 넘게 폐지를 주웠기에 언제 어디를 가야 폐지를 많이 얻을 수 있는지 꿰고 있다.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5시에는 상점들을 한 바퀴씩 돈다. 주차장 일을 주로 보는 오후에도 이 시간이 되면 폐지 순찰에 나선다. 동시에 틈틈이 폐지를 분류한다. 주차장 일은 폐지로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한 보조 업무에 가깝다. 주차장 일을 마친 시점을 업무 종료 시간으로 잡으면 박씨는 열너댓 시간을 일한 셈이 된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쏟아붓고 손에 쥐는 돈이 5000원 남짓이다. 시급 계산이 별 의미가 없는 미미한 액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28일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하 개발원)이 연구한 ‘2023 폐지수집 노인 실태조사(이하 실태조사)’ 결과를 일부 공개했다. 개발원은 1 대 1 대면 조사 방식으로 전국 폐지수집 노인 1035명을 만나 실태를 파악했다. 조사 결과, 이들은 일평균 5.4시간씩, 주 6일 폐지를 수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수입은 평균 15만9000원이었다. 시급으로 따지면 1226원으로 지난해 최저임금(9620원)의 13%에 불과했다. 이들의 노동시간에는 폐지를 분류하는 데 쓴 시간은 빠져 있어 실제 시급은 이보다 더 낮을 가능성이 높다.

올해로 21년째 폐지를 줍고 있는 80대 남성 김씨는 이게 다 재활용품 가격 하락 때문이라고 말한다. “리어카에 한 차 실으면 한 300㎏ 들어가는데 예전에는 한 3만원 줬어. 그런데 지금은 한 차 싣고 가봐야 1만5000원 정도밖에 안 준다.” 1996년 12월 9일 한겨레 기사를 보면, 1995년 기준 폐지 수집상은 제지회사에 폐신문지를 1㎏당 100원에, 폐골판지를 1㎏당 70원에 팔았다. 한국환경공단의 자원순환시스템은 고물상으로부터 폐지를 매입해 압축하는 압축업체가 제지회사에 판매하는 폐품 가격을 공시하고 있다. 2023년 12월 기준 폐신문지는 1㎏당 128.5원, 폐골판지는 1㎏당 76.4원에 거래된다. 27년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액면가는 제자리 수준이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폐지 가치는 크게 하락했다고 볼 수 있다. 폐지수집 노인에게는 공시가격에서 압축업체와 고물상의 마진을 뺀 나머지가 돌아간다. 그 몫은 대개 공시가의 절반 수준이다.

좋았던 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때는 폐골판지가 1㎏당 200원 수준에 거래되는 호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폐지 최대 수입국이었던 중국이 2020년 이후 폐지 수입 제한을 단계적으로 강화하면서, 폐지 수출길이 막혔고 폐지 가치도 하락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연구소 소장은 “2020년 중국의 폐지 수입 제한 조치 여파로 폐지 가격이 떨어졌다. 코로나19 때는 온라인 소비가 증가하면서 폐골판지 소비량도 증가했기에 폐지 가격이 좋았다가, 최근에는 글로벌 경기 침체 영향으로 소비가 둔화하면서 값이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치열한 경쟁, 취약한 생계


지난 1월 1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만난 폐지수집 노인 김씨의 손수레. 이날 김씨는 모니터와 전기밥솥, 전기담요, 달력 등을 주웠다. 김씨는 “오늘 정도면 괜찮은 날”이라고 했다. 이효상 기자


물가는 올랐고 폐지 단가는 떨어졌다. 이들의 생계는 더 곤란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실태조사에서 폐지수집 노인은 월평균 74만2000원의 소득을 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노인 월평균 개인소득(129만8000원·2020년 노인실태조사)의 57% 수준이다. 폐지를 수집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용돈이 필요해서(29.3%)’, ‘건강 관리를 위해(9.1%)’라는 답변도 있었지만 절반 이상인 54.8%가 ‘생계비 마련’이라고 답했다. 애로사항으로는 ‘폐지 단가 하락(81.6%)’을 꼽는 이들이 가장 많았고,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묻는 질문에는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85.3%)’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그럼에도 조사자의 88.8%는 ‘향후에도 폐지수집 활동을 지속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다른 선택지가 없는 가운데 심화되는 생계 위협은 폐지수집 생태계의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김씨는 고물상이 문을 열지 않은 올해 1월 1일에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일대의 주택가를 돌았다. 고도 200m 이하 구릉성 산지가 둘러싸고 있는 이 일대 주택가는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오르막의 경사가 가팔라진다. 김씨는 더는 리어카를 몰지 않는다. 80대에 접어들면서 언덕배기에서 리어카 무게를 버티기 쉽지 않아졌고, 폐골판지는 경쟁만 심할 뿐 돈이 안 된다. 대신 손수레를 끌고, 선풍기와 전기밥솥에 소량 들어 있는 구리나 폐신문지를 노린다. 평지에 있는 상가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기에 주택가 안쪽으로 오르고 또 올라야 한다. 전자제품을 찾아도 고물상에 그대로 가져다줄 수는 없다. 집에 가져가 분해해 소량의 금속을 찾아야 한다. 김씨는 이렇게 월 10만원 안팎을 번다.

김씨는 “내가 다니는 고물상 오는 사람들이 못해도 100여명은 될 거야. 하루에도 수십명이 들락날락하는데 종류별로 분류해 어느 정도 모아가지고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고물상이) 사지도 않고 ‘가져오지 말라’ 그래요”라며 “이거 하는 사람이 한 사람 한 사람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아. 나만 해도 안 한다 안 한다 해도 하게 되고, 이거 안 하면 천지 갈 데도 없고 뭘 하고 하루해를 보내느냐 말이야”라고 했다.

개발원은 이번 실태조사에서 폐지수집 노인의 규모를 4만2000명으로 추산했다. 미등록 고물상을 포함해 전국 4200개 고물상을 상대로 조사해 추정한 수치이기에 현실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75세 이상’의 비율이 57.8%로 높았고, 평균 연령은 76세로 조사됐다. 2인 가구가 56.7%였고, 독거가구가 36.4%였다.

폐지 단가를 올리면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홍수열 소장은 “한국사회는 폐지 줍는 노인들 때문에 굉장히 싸게 자원을 재활용하고 있다. 주택가의 폐품 수집을 지방자치단체가 전적으로 책임진다고 했을 때 자원순환 비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폐지 단가가 극단적으로 떨어지는 것에 대한 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폐지 단가를 가지고 이 노인들의 문제를 해결하자고 할 수는 없다. 단가가 올라도 한 달 수입은 고작 몇만원 오르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선진 복지국가의 노인들은 폐지를 줍지 않는다. 결국 복지로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부터 지자체와 폐지수집 노인 전수조사를 실시하는 등 관리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렇게 확보한 폐지수집 노인 명단을 바탕으로 이들의 노인일자리 사업 참여를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실태조사에서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47.3%로 전체의 절반을 넘지 않았다.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경우 소득이 소폭 증가하지만 매일 현금을 받을 수 있는 고물상과 달리 월급으로 지급된다는 점,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해야 한다는 점이 걸림돌로 조사됐다.

연구자들은 궁극적으로 노인의 폐지수집을 중단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이번 실태조사에서 폐지수집 중 ‘부상을 입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22%, ‘교통사고 경험’ 응답은 6.3%로 집계됐다. 실태조사를 주도한 배재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폐지수집은 고강도 저임금 노동이다. 노인에게 맞지 않는 노동이다. 점진적으로 이들이 폐지를 줍지 않아도 되는 상황으로 나아가야 한다. 공공영역에서 연금 등 소득을 보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폐지수집 노인들은 대부분 근로의욕이 있기 때문에 공공일자리와 연계하고, 그 임금을 현실화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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