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섭의 내로남불] 대한민국 대통령 향한 北김여정의 내로남불
정작 北이야말로 우직하고 미련하게 북핵에 올인…北은 대화 시도할만큼 교활함·영특함 없나
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지난 2일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신년 메시지'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위협적인 존재로 재평가했다. 김 부부장은 윤 대통령에 대해서는 "지금 조선반도의 안보형세가 당장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매우 위태롭게 되고 안보불안이 대한민국의 일상사가 된 것은 전적으로 윤 대통령의 '공로'"라면서 "대한민국의 '주적'인 우리의 분노를 최대로 격앙시켜주고 서울을 겨냥한 방아쇠의 안전장치를 완전히 풀어준 것 같은 능력은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김 부부장은 "어리숙한체하고 우리에게 달라붙어 평화 보따리를 내밀어 우리의 손을 얽어 매여 놓고는 돌아앉아 제가 챙길 것은 다 챙기면서도 우리가 미국과 그 전쟁사환 군들을 억제하기 위한 전망적인 군사력을 키우는데 이러저러한 제약을 조성한 것은 문재인"이라면서 문 전 대통령을 '참 영특하고 교활한 사람', '입에는 꿀을 바르고 속에는 칼을 품은 흉교한 인간'으로 지칭했다. 그러면서 "문재인의 그 겉발린 평화 의지에 발목이 잡혀 우리가 전력 강화를 위해 해야 할 일도 못하고 적지 않은 시간을 허비한 것은 큰 손실", "지금 생각해보면 만약 제2의 문재인이 집권하였더라면 우리로서는 큰일일 것"이라고 했다.
김 부부장의 이같은 발언은 남한 내 정치에 과몰입한 일부 강성 지지층이 김 부부장의 발언에 대해 이런저런 해석을 내도록 유도하면서 갈등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일견 북한 입장에서 이해가 될 법한 대목도 있다. 예를 들어 문 전 대통령을 교활한 사람으로 지칭한 부분의 경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하노이 미북정상회담까지 문재인 전 대통령을 속였다고 믿었으나 나중엔 자신이 속은 것으로 믿었을 수 있다. 김 위원장 본인이 상황을 오판해 핵 협상이 되는 것을 전제로 하노이까지 요란하게 이동했으나 결국 빈손으로 되돌아오는 망신을 당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2019년 8월 5일 자 친서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각하께서 우리의 관계를 오직 당신에게만 득이 되는 디딤돌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면, 저를 주기만 하고 아무런 반대급부도 받지 못 하는 바보처럼 보이도록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남쪽의 바보들을 약간 놀라게 했고 이는 퍽 재밌었다"고 했었다.
다만 김 부부장의 '유도 의도'와는 달리 주장을 찬찬히 뜯어보면 애당초 '사실관계가 틀린 부분'이 상당수 포함돼 있어 이를 걸러 내고 본다면 의외로 여러 해석이 나오기 어려운 메시지이기도 하다.
먼저 북한은 문 전 대통령 집권 당시에도 '전력 강화를 못 하고 시간을 허비한 적'이 없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17년 11월 29일 새벽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발사에 성공한 직후 "오늘 비로소 국가 핵 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로켓 강국 위업이 실현됐다"고 주장했다. 이는 김 위원장이 대화에 나서기 전 이미 핵 무력을 완성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한 북한이 미국과 대화 분위기일 당시 보였던 퍼포먼스인 '영변 핵시설 파괴' 역시 IAEA의 검증이나 핵 신고 등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이후 핵을 포기하려는 제스처라기보다는 핵보유국임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나아가 김 부부장의 메시지는 '남한이 평화를 떠드는 상황에서 북한만 급격히 군사전력을 강화하면서 한반도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것은 내심 부담스럽다'는 전제가 깔려야만 성립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남한 입장에선 착각하기 쉬울지 몰라도, 북한 입장에선 전혀 맞지 않는 얘기다. 북한은 그간 남한이 압박을 고수하던 평화를 얘기하든 군사력 강화에 집중해왔고 국지도발도 서슴지 않았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자신들이 발견한 남한의 해수부 공무원을 본국에 돌려보내지 않았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의 평가가 진정성읽게 읽히지 않는 것은 세상에 상대하기가 수월한 사람에게 분노를 최대로 격앙하는 바보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영특하고 교활해 상대방을 속이면서 자신의 잇속을 채웠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끼면서 분노를 최대로 격앙한다. 실제 김 부부장의 메시지 속에서도 가장 격앙된 반응을 보인 대목은 문 전 대통령을 평가하면서 "핵과 미사일 발사시험의 금지를 간청하고 돌아서서는 미국산 F-35A를 수십 대씩 반입하고 여러 척의 잠수함들을 취역시켰으며 상전에게 들러붙어 미사일 사거리 제한 조치의 완전 철폐를 실현하는 등 할 짓은 다 한 것"이라고 언급한 부분이다. 하나 더 짚자면 세상에는 '미련하고 우직하지만 그 점 때문에 상대하기 버거운 사람'도 있다. 미련하고 우직하게 핵전력에 '올인'해온 북한을 평생 보고자란 김 부부장이 그 점을 모를 리 없다. 당연히 지금도 자신들이 미국에 버거운 상대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어느 나라건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거나 군비를 늘리지 않고 이길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할 것이라는 점에서, 북한이 차선을 택하는 상황을 감사하다고 하는 것도 '정신승리'에 가깝다. 다른 사람이 아닌 김 위원장이 직접 2019년 8월 5일 자 친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도발적인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취소 또는 연기될 것으로 믿었다. 한반도 남부에서 실시 되는 연합군사훈련은 도대체 누구에 대한 것이며, 봉쇄시키려 하며, 물리치고 공격하려는 대상이 누구냐"며 "저는 분명히 기분이 상했고, 이를 각하에게 숨기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나.
김 위원장은 같은 글에서 지금이 실무급 대화를 가질 시점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어떤 종류의 실무급 대화가 가능하겠느냐. 제가 간절히 원했던 제재 완화 문제에 대한 것도 아닐 것이며, 4차 정상회담의 장소에 대한 것도 아닐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도 원하는 것을 적이 않았다고 주장할 셈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보면 김 부부장의 메시지는 반어법에 가깝다. 만일 김 부부장이 정말로 문 전 대통령이 교활해 다루기 까다롭고 윤석열 대통령이 미련하고 우직해 다루기 쉽다고 생각했다면, 북한은 지금 남북 간 대화 채널을 열고 소통하자고 해야 맞다. 윤 대통령을 잘 다룰 수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반대다. 윤 대통령이 더 다루기 어렵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김 부부장 본인부터 남한에 수사적 위협을 입에 달고 살며 상대의 분노를 최대로 격앙시켜주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임재섭기자 yj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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