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700억 투입한 넷플릭스, 본전 생각 안 날 수 있겠나('경성크리처')
일제강점기와 크리처의 만남, 기획은 기발한데 전개는 어째서
[엔터미디어=정덕현] "헌데 그런 말도 안되는 걸 빌미 삼아 내 걸 다 빼앗겠다잖아, 저놈들이. 지 것들도 아니면서 지 것들인 양 저리도 당당하게, 저리도 뻔뻔하게!"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경성크리처>에서 장태상(박서준)이 일제에 대한 분노를 터트리는 건, 짐짓 이시카와 경무관이 자신의 것인 금옥당을 빼앗으려 하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경성 최고의 전당포 금옥당의 대주이자 경성 제1의 정보통인 장태상은 애초부터 독립운동에는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는 척 한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알고 있다. 그건 일종의 위장술이라는 걸.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일제와 싸우는 독립군의 서사는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저 <미스터 션샤인>을 떠올려 보라. 물론 고애신(김태리)은 의병이었지만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독립운동에 뛰어들 세 남자, 유진초이(이병헌), 김희성(변요한), 구동매(유연석)은 애초 조선 독립에는 그다지 관심도 없던 인물들이었다. 이래야 뻔한 독립군 서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물론 결국에는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의병으로 변모해 목숨을 던지는 극적 순간이 탄생하지만.
그래서 <경성크리처>의 장태상의 위장술(?)은 이미 <미스터 션샤인>의 구도를 본 시청자들에게는 손쉽게 들통난다. 이제 장태상 앞에 나타난 윤채옥(한소희)에 점점 매혹되고 그래서 사라진 어머니를 찾는 그녀의 길에 어쩌다 합류하게 되면서 장태상은 변화할 것이다. 어쩌면 친일하는 아버지가 부끄러워 독립운동을 한다고 나서지만 저들의 잔혹한 고문과 협박 앞에 무너지는 권준택(위하준) 같은 도련님보다 이 길바닥에서부터 자라난 들풀같은 장태상이 더 위기에 처한 조선인들을 구하게 될 거라는 것도 시청자들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물론 우리에게는 731부대와 마루타로 상징되는 일제강점기의 참혹한 생체실험을 '크리처'라는 장르물로 해석한 부분은 그 자체로는 신박한 시도다. 하지만 거기에 대중적인 서사를 넣기 위해 너무 익숙한 모성애 코드를 씨앗으로 심어놓은 부분은 이 신박함이 진부해지게 된 안타까운 지점이다. 시청자들은 윤채옥의 어머니가 바로 그 실험 대상이 되는 순간, 드라마 후반부에 크리처가 된 어머니가 윤채옥과 마주하게 되는 장면을 쉽게 예상하게 된다. 거기서 어쩔 수 없이 흘릴 수밖에 없을 눈물 또한.
이처럼 <경성크리처> 파트1은 경성과 크리처로 대변되는 이질적인 소재의 결합 자체가 흥미롭고 또 장르적인 재미도 어느 정도 있는 작품이지만, 문제는 이러한 장르물들을 충분히 접하게 된 시청자들의 눈높이에는 어딘가 기시감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700억대의 제작비에 박서준, 한소희가 주연을 맡았고 무엇보다 <스토브리그>의 정동윤 감독과 <낭만닥터 김사부> 시리즈의 강은경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기대감은 하늘을 뚫고 올라갈 정도가 됐고, <킹덤>이나 <스위트홈>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K콘텐츠의 신화가 될 것인가 하는 기분좋은 상상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한없이 올라간 기대감에 맞추지 못한 작품의 기시감은 고스란히 실망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을 테다.
게다가 지상파의 16부작 미니시리즈의 분량에 비교하면 적어 보이지만 넷플릭스에서 한 시즌으로서는 결코 적지 않은 10부작 중 7회분이 방영되면서 그 사건의 배경이 옹성병원 안에 거의 머물러 있는 것도 답답한 느낌을 줬다. 지하 병동에서 크리처에 따라 이리저리 추격하고 도주하는 일련의 이야기들은 우주도 아닌데 <에일리언> 같은 폐쇄 공포의 틀에 갇혀 버린다. 이처럼 느린 전개에 윤채옥이 어머니를 알아보는 장치로서 목걸이라는 오브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설정 같은 너무 단순하고 디테일이 떨어지는 요소들은 오래도록 어떤 순간들을 기다리며 바라본 기대감을 무너뜨린다.
여기에 짐짓 독립운동에는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머니가 독립운동을 하다 저들에게 끌려갔고 그래서 마음 깊은 곳에는 어머니처럼 보이는 조선인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장태상이라는 인물에 대한 박서준의 연기 분석도 어딘가 평면적인 느낌을 준다. 이 인물은 복합적이다. 겉모습과 속내가 꼬일대로 꼬여있다. 그걸 누군가 휘적여 풀어내면 엄청난 에너지로 폭발력을 낼 수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를 평면적으로 해석해 표현하다 보니 조선인을 구하기 시작하는 그 장면에서의 설득력과 감흥이 덜하게 느껴진다.
다시 생각해도 아쉬움이 큰 파트1이었다. 경성과 크리처의 만남을 이어붙인 기획은 신박했지만 이를 풀어나가는 전개는 밀도와 디테일이 떨어졌다. 차라리 6부작 정도로 압축했다면 좀더 낫지 않았을까. 차라리 회차를 줄이고 한 번에 공개했다면 어땠을까. 끝내 작품이 하려는 메시지의 의미가 단번에 드러났다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작품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늦은 감이 있지만 파트2에 거는 기대가 크다. 파트1이 만들어낸 갈증을 파트2가 해소시켜줄지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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