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본 이순신 리더십 ‘전장의 북소리’[살며 생각하며]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 ‘용장’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니”
학익진으로 적 섬멸한 ‘지장’
뛰어난 지략은 현대전술 교범
엄격한 원칙을 소유한 ‘덕장’
진정성으로 사람 마음 움직여
전 세계적으로 가장 존경받는 해전의 영웅으로 영국의 허레이쇼 넬슨 제독과 이순신 장군이 손꼽힌다. 이순신 장군은 7년의 임진왜란 해전에서 왜군을 물리치고 조선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이다.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마지막 작품인 ‘노량:죽음의 바다’가 지난 연말 개봉돼 관객들의 주목을 받으며 순항 중이다. 그동안 이순신의 리더십은 ‘난중일기’를 중심으로 많이 다뤄졌는데, 영화를 통해 보다 실감 나게 장군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김 감독의 이순신 3부작 중 ‘명량’은 2014년 개봉돼 관객 1761만 명, ‘한산:용의 출현’은 2022년에 개봉돼 728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순신 3부작은 영화마다 다른 배우가 주인공을 맡아 조금씩 다른 이순신의 리더십과 면모를 보여준다. ‘손자병법’을 쓴 중국의 손무(孫武)는 장수를 ‘용장(勇將) 지장(智將) 덕장(德將)’의 세 부류로 나눈다. ‘용장’은 능력이 출중하고 두둑한 뱃심을 가진 용맹함과 강한 리더십으로 군사들을 선두에서 이끌어 가는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력을 지닌 장수다. ‘지장’은 싸움에서 대처할 상황을 파악하고 분석해 전략을 세우는 전략가다. ‘덕장’은 많은 사람을 따르게 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의 소유자로 그 덕성에 감동돼 존경받는 지도력을 가진 이에 해당한다고 한다.
영화 ‘명량’에서 최민식 배우가 연기하는 이순신은, 백성들과 함께하는 용장으로서 칠천량 전투에서 원균이 수군통제사가 되어 거북선·판옥선 수십 척과 병사들을 거의 잃어버려 전투를 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신이 살아 있는 한 적들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라며 열 배가 넘는 왜선에 대해서도 죽을 힘을 다해 싸우면 물리칠 수 있다고 선조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가 명량해전을 앞두고 걱정한 것은, 이미 사람들에게 독버섯처럼 퍼진 두려움이었다. 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방법을 고민하던 이순신은 병사들의 숙소를 모두 불태우며 호령한다. “이제 우리에게는 돌아올 곳이 없다. 죽고자 하는 자 살 것이고, 살고자 하는 자 죽을 것이다!” 그의 용장으로서의 리더십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 데 있다. 우리 앞에 아무리 험준한 산이 있다 해도 죽기를 각오한다면 넘지 못할 산은 없을 것이다.
‘한산:용의 출현’에서의 박해일 배우가 연기하는 이순신은 한산도 앞바다에서 왜군을 섬멸할 당시에 학이 날개를 펼친 듯한 형태의 ‘학익진(鶴翼陣)’이란 전략을 구사했다. 이순신은 적은 수의 전투선을 가로로 넓게 펼쳐 줄지어 쳐들어오는 수많은 왜군 함선을 격파했다. 학익진을 비롯한 이순신 장군의 전술은 현대전에서도 교범으로 평가받는데, 전략가로서 지장의 리더십을 보여준다. 아무리 용기가 있어도 지략이 뛰어나지 않다면 승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선조가 부산포로 왜군이 쳐들어온다는 정보가 있으니 가서 싸우라고 해도, 차라리 어명을 어겨 감옥에 갈지언정 전술에 맞지 않아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하는 넓은 부산포에서의 해전을 거부했던 것이다. 원균이 이끌게 된 조선 수군은 이순신의 염려대로 칠천량 해전에서 처참한 결과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 리더의 지략과 판단력 차이가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보여준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노량:죽음의 바다’에서 김윤석 배우가 맡은 이순신은 엄격한 원칙을 가진 덕장으로서의 특성을 보여준다. 1598년 당시 전황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사망하자 왜군은 퇴각을 서둘렀다. 조선 수군은 순천 왜성 앞바다를 포위해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라는 왜군 행장을 묶어뒀고, 조선 조정에서도 대부분 전쟁이 쉽게 끝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달랐다. “적들을 남김없이 무찌르도록 해주소서”라고 간절히 빌며 홀로 근심한다. 왜군의 특성상 완벽하게 섬멸해야 전쟁을 완전히 끝내는 것이라고 생각한 이순신은 명나라와의 조명연합함대로 왜군의 퇴각로를 막고 적들을 섬멸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고니시에게서 뇌물을 받은 명나라 수군장 도독 진린(陳璘·정재영 분)은 그들을 퇴각하게 놔두자고 한다. 진린이, 구원병을 요청하는 고니시의 연락선을 빠져나가게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순신은 분기탱천했지만 꾹 참고 조선 수군 단독으로라도 싸우겠다고 한다. 그동안 이순신의 지략과 덕성에 탄복하며 이순신을 ‘노야’라는 극존칭으로 부르던 진린도 마음을 바꿔 이순신을 따라 노량해전에 출정한다. 부도독 등자룡(鄧子龍·허준호 분)은 이순신에 대한 존경심에서 조선 수군의 판옥선에 올라 함께 싸우던 중 전사했고, 이순신은 위기에 빠진 진린을 부하들을 보내 구해주었다. 남의 나라 전투 보듯 하던 명나라 군사들이 힘을 합쳐 싸우게 된 것도, 이순신이 노량해전 중 전사했다는 사실을 알고 진린이 온몸으로 바닥을 구르며 슬퍼했다는 것도 이순신의 덕장으로서의 훌륭한 면모를 말해준다.
이 영화에서 힘겹게 싸우는 조선 수군을 독려하느라 이순신이 직접 북을 치는 장면과 북소리는 특히 인상 깊다. 둥∼둥∼ 울리는 북소리는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임진왜란’은 바로 용장·지장·덕장의 면모를 모두 갖춘 이순신 장군의 탁월하고 진정성 있는 리더십에 달려 있었다는 사실이 북소리처럼 가슴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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