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라', 잘나가는 여자들의 남편은 왜 항상 불륜에 휩싸일까

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2024. 1. 5.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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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마에스트라', 사진=tvN

'차마에' 이영애가 분전 중인 tvN 드라마 '마에스트라'를 보고 있으면 짙은 기시감이 든다. '마에스트라'는 한국 드라마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지휘자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많은 사람들이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베바)를 떠올렸고, '강마에' 김명민과의 차별화에 기대를 보였다. 그러나 12부작 중 8화까지 방영된 지금, 사람들은 더 이상 '베바'를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에스트라'는 '미스티' '부부의 세계'와 같은 DNA를 지녔다. 불륜과 치정, 추문이라는 DNA를. 

전 세계에 단 5%밖에 되지 않는다는 여성 지휘자를 뜻하는 마에스트라(Maestra). 주인공 차세음(이영애)은 1화 오프닝에서 술에 취한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총을 겨누며 공연에 데려가는 파격적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차세음이 오케스트라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을 인물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홈페이지에 설명된 차세음은 '아시안 여성이라는 한계를 오히려 유니크함으로 포장할 줄 아는 쇼업의 귀재'이자 '최고의 오케스트라에서 오는 러브콜을 마다하고, 늘 해체 직전의 오케스트라에 가서 기적을 만들어내는' 인물이다. 20여 년 만에 한국으로 와 선택한 오케스트라도 해체 위기에 놓인 더 한강 필하모닉, '한필'이다. 

한필의 지휘자를 맡으며 차세음이 보인 첫 행보부터 파격적이다. 한때 자신의 바이올린 스승이자 한필의 정신적 지주인 오랜 악장 박재만(이정열) 대신 20대 막내 단원 이루나(황보름별)를 악장으로 올리는 파격 인사를 단행하고, 무조건 실력 위주로 대할 것이라며 단원들을 거세게 압박한다. 단원들에게 "똥덩어리"라는 막말을 일삼았던 '강마에'보다 언사만 격식을 갖출 뿐, 그 압박감은 다를 게 없다. 그러나 거기까지. 차세음이 오케스트라와 음악에 보이는 헌신과 집착은 곳곳에 보이지만, 그의 노고는 차세음의 남편이자 한필의 상임 작곡가이자 차세음의 남편인 김필(김영재) 교수와 한필의 호른 연주자 이아진(이시원)의 불륜 사실이 2화 엔딩에 드러나면서 빛이 바란다. 남편과 불륜을 저지른 아진은 남편의 아이까지 임신하며 차세음의 속을 뒤집고, 자상한 남편이었으나 내심 아내의 명성에 짓눌린 '살리에르 증후군'에 시달리던 김필은 그럼에도 그 명성에 기대 지내던 안락함을 버리지 못한다. 

'마에스트라', 사진=tvN

그 이후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도 결국 불륜과 치정으로 시작된 추문에 얽힌 것들이다. 차세음이 거슬렸던 김봉주(진호은)가 김필과 이아진의 불륜 사실을 세상에 퍼뜨리면서 차세음과 한필에 위기가 닥쳤고, 그로 인해 차세음에게 집착과 순정을 보이는 유정재(이무생)가 김봉주를 자극하는 바람에 차세음은 마약 스캔들에 얽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오케스트라의 이야기는 실종됐다. 남편의 불륜이라는 추문에 휩싸이는 차세음, 남편의 상간녀의 자동차 엔진을 조작했다는 의심을 받는 차세음, 이혼을 거부하는 남편에게 약점 잡히지 않고자 스스로 그토록 숨겨왔던 래밍턴 병에 걸릴 수 있음을 밝히는 차세음, 단원들에게 마약을 권했다는 혐의로 긴급체포되는 차세음, 여기에 김봉주의 죽음으로 사망 사건의 범인으로 의심되는 차세음까지.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남편 김필의 불륜에서 시작되었다. 이쯤 되면 한국 드라마는 똑똑하고 강단 있는 중년 여성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족쇄로 오직 불륜으로만 승부 보는 느낌이 들 정도다. 

남편의 불륜으로 감정의 파고를 겪거나 인생의 변곡점을 맞는 여성은 무수히 많았다. 한국 드라마에서 불륜이 등장하지 않고서는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불륜은 흔한 소재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남편의 불륜으로 버림받는 '아내의 유혹'의 구은재(장서희) 같은 여성보다 처음부터 남편의 불륜에 엄혹하게 대처하는 차세음 같은 여성이 많아졌다. 남편의 불륜에 감정이 다칠 순 있지만 자기 스스로 쌓은 다른 것들을 놓칠 수 없다는 소위 '잘난 여자'들이 많아졌단 소리다. '부부의 세계'의 지선우(김희애)를 생각해보라. 번듯한 외모 외엔 아무것도 없던 남편 이태오(박해준)에게 영화 제작사를 차려줄 만큼 그 능력이 출중하다. 그 유명한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를 시전하던 남편을 고스란히 자신의 세계에서 도려내겠다며 아들을 죽인 것마냥 연기까지 하는 지선우의 대처는 살벌할 정도였다. 

'부부의 세계', 사진=JTBC

무서울 만큼 잘난 여자들 그늘에 사는 남편이 항상 불륜이나 그로 인한 치정에 휩싸이는 건 이제 식상할 정도다. 불륜을 저지르진 않았지만 아내의 야망에 기꺼이 협조하지도, 그렇다고 아내를 놓지도 못해 결국 아내의 옛 연인을 우발적으로 살해했던 '미스티'의 강태욱(지진희)도 잘난 아내에게 어느 정도 짓눌린 남편이었다. 혼외자라는 상처를 내세워 불륜을 합리화했던 'VIP'의 박성준(이상윤)이나 불륜의 결은 다르지만 '남자친구의 차수현(송혜교)의 전 남편 정우석(장승조)이나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의 송가경(전혜진)의 남편 오진우(지승현)처럼 표면적으로는 아내보다 지닌 게 많아도 능력 면에서 아내보다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남편들도 있었다. 전업주부임에도 뭐 하나 꿀릴 것 없이 똑부러졌던 '품위있는 그녀'의 우아진(김희선)의 남편 안재석(정상훈)이나 자신이 잘나가는 의사임에도 각성한 아내로 인해 가정이 풍비박산 나며 인생 쉽지 않음을 깨달았던 '닥터 차정숙'의 차정숙(엄정화) 남편 서인호(김병철)도 빼놓을 수 없다. 

남편의 불륜이 도화선이 된 것도 모자라 살인, 체포 등 자극적인 단어들로 지속되는 '마에스트라'는 점점 '미스티' '부부의 세계'의 고급스러운 막장을 닮아간다. 물론 '미스티'에 김남주가 있었고, '부부의 세계'에 김희애가 있었던 것처럼, '마에스트라'에는 이영애가 있다. 그 차갑고 단단한, 고급스럽게 느껴지는 이영애의 연기 덕분에 온갖 막장스러운 설정과 자극적인 도파민이 난무함에도 그 누구도 쉽게 막장을 언급하지 않을 뿐이다. 똑똑한 여성을 원톱으로 내세운 드라마가 많아지고 있다. 제발 '마에스트라' 이후에는 그 여성들의 난관과 각성의 이유가 '남편의 불륜' 말고도 다양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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