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변수 많은 해...예금에 넣은 돈 꺼낼 때”
예금 하려면 만기 가급적 길게
반도체 수출 대형주 투자 주목
‘엔테크’ 환차익 시기 지나
“이제는 예금에 묵혀놨던 돈 꺼내야.”
주요 은행의 자산관리 전문가 프라이빗뱅커(PB)들은 은행 정기예금 등에 묵혀놨던 자금을 서서히 다른 투자처로 옮겨야 한다고 입 모아 말했다. 금리인하 기대감에 따라 예금금리 하락세가 빠르게 나타나는 데다, 주식시장 등의 매력도가 올라가면서다.
다만 이들은 올해가 유독 금융시장 변수가 많은 해라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 국내에서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여파, 대외적으로는 대규모 선거 및 전쟁 위험 등 대내외적 변동 요인이 산적해 있다. 다양한 투자처를 살피면서도, 위험도가 낮은 우량자산 위주로 투자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이유다.
▶수출 대형주 유망=5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프라이빗뱅커(PB)들은 지난 2년간 시중의 자금을 흡수했던 정기예금의 인기가 올해를 기점으로 시들해질 거라고 분석했다. 금리 인하 기대감이 채권금리에 반영되며, 한때 5%가 넘었던 은행 정기예금금리가 3% 후반대까지 하락했기 때문이다.
박효성 하나은행 영업1부PB센터 팀장은 “불과 2주 전만 해도 4%를 넘던 예금금리가 오늘 최고 3.75%로 내렸다”며 “지난해에 높은 금리로 1년 만기 예금을 받은 분들이 현재 만기가 돌아오고 있는데, 예금이 아닌 채권과 펀드로 들어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정성진 KB국민은행 강남스타PB센터 부센터장은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경우 (낮아진 금리로 인해) 재가입하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만약 정기예금에 가입한다면 만기를 길게 가져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신정섭 신한은행 PWM서울파이낸스센터 팀장은 “현재 은행 정기예금 1년 만기가 3.8%이니 올해 기준금리가 0.5%포인트가량 내린다고 해도 여전히 평년 대비 높은 3%대 수준”이라며 “시장금리가 기준금리 인하에 앞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만기는 가급적 길게 가져가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PB들이 주목한 분야는 대형주 위주의 주식투자다. 박태형 우리은행 TCE시그니처센터 부지점장은 “2023년은 반도체 시장에서 최악의 해였지만, 되레 외국인의 대형회사 주식 매수가 늘었다”며 “실적 회복이 기대되는 반도체 분야에 대형주가 많이 포진돼 있어 시기가 나쁘지 않다”고 강조했다. 박효정 팀장은 “2023년에 인공지능(AI)이나 반도체 분야가 너무 올랐다는 평도 있지만, 현재 대기자금 규모가 크고 금리 인하를 예상한다면 돈이 흘러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채권투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정성진 부센터장은 “미 국채 등은 추가로 호재가 더 나와야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본다”며 “투자 의향이 있다면, 오는 3월부터 금리 인하 전망이 있으니 자금을 나누어 투자하며 지켜보는 것을 추천한다”고 전망했다. 박태형 부지점장은 “채권의 경우 금리인하 기대감이 선반영 돼, 단기간으로 보면 수익이 나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1년 이상 긴 시기로 본다면 예금보다 국고채 등 우량채권을 중심으로 투자하는 게 수익이 높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엔화 상승폭 제한 전망=최근 인기를 끌었던 엔화 투자에 대해서는 기대수익이 높지 않다는 게 전반적인 견해다. 정성진 부센터장은 “아직 오를 여력이 있지만, 현재 920원인 원/엔 환율이 960원까지 간다고 하면 수익률은 4.3% 정도”라며 “910원 밑이라면 모르겠지만, 투자하기 애매한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신정섭 팀장도 “엔화 약세를 주도했던 엔케이트레이드(NK trade·저금리 국가 통화로 고금리 국가에 투자)가 약화되며 상승폭은 950원 수준으로 제한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달러의 경우 자산 투자 용도로만 사용할 것을 추천했다. 박태형 부지점장은 “달러는 미국의 금리인하로 약세를 띠겠지만, 국내 주가 변동 헤지 등 용도로 일정 비중을 가져가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신정섭 팀장은 “달러는 미 국채, 정기예금 등 좋은 투자대상이 있다”면서도 “환율하락이 예상되는 시점에 달러 투자를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은 아니다”고 평가했다.
▶“부동산 시장 하락 국면 접어든다”=불확실성이 가장 큰 투자처로는 ‘부동산’이 꼽혔다. 다만 PB들은 모두 올해 상반기에 부동산 가격 하락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점쳤다. 박효성 팀장은 “최근 금리인하로 수요가 회복될 수 있다는 얘기도 있지만,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를 생각했을 때, 빠르게 체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부동산은 한 번 더 하락기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태형 부지점장은 “아직 부동산 PF 문제가 있고 미분양 물량들도 산적해 있다”며 “관련 문제들이 청산되며 하락 국면에 접어든 후 다시 반등 기회가 오지 않겠나”고 말했다. 신정섭 팀장은 “임대수익률과 직결되는 상업용부동산은 대출이자 부담으로 지역을 막론하고 약세, 주거용 부동산은 서울 강남 등에서 국지적으로 흥행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아울러 선거, 지정학적 리스크 등 대외적인 요인에 따라 금융시장 상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효성 팀장은 “올해 전 세계 인구 반 이상이 투표를 해야 하는 시점인 데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중국과 대만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큰 상황”이라며 “보수적인 전망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시장 상황에 따라 전체적인 추세가 바뀔 수 있다는 예측도 나왔다. 신정섭 팀장은 “매월 발표되는 미국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다시 높아질 경우, 긴축완화 분위기는 단번에 급변할 수 있다”며 “이에 연동한 금리나 주가 전망을 맹신하기보다 개별 상황에 따라 예금이나 우량채권 등 안전자산 비중을 높게 가져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태형 부지점장은 “올해 시장의 예상대로 미국의 경기침체가 실제로 나타나지 않을 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광우 기자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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