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암표 걸려도 20만원 물면 돼~”…되팔이 키운 ‘50살 구닥다리 법’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4. 1. 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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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표 팔아도 벌금 고작 20만원이하
경범죄처벌법·공연법 등 구멍 숭숭
가수·협회·판매처 단속에도 못막아
암표 신고건수 2년새 359→4244건
개인간 거래 과도한 규제 논란은 변수
1~2월 5주간 서울 홍대 소극장에서 2년 만의 대면 콘서트를 열려다 암표 문제로 잠정 취소한 가수 장범준. 사진=장범준 유튜브 캡쳐
“암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일단 공연 티켓 예매를 전부 취소합니다.”

새해 벽두부터 암표가 기승이다. 밴드 버스커버스커 출신 가수 장범준이 2년 만에 대면 공연을 열려다가 일단 취소했다. 당초 계획은 1회당 객석 100명도 되지 않는 소극장에서 자신의 그림을 전시하고 60분간 노래하며 팬들과 만나는 10회차 공연이었다. 그런데 지난 1일 예매 오픈하자마자 순식간에 매진된 직후 중고장터와 소셜미디어에 정가 5만5000원의 3배 넘는 가격으로 암표 판매 글이 올라왔다. 장범준은 “표를 정상적인 경로 외에는 구매하지 말아달라”며 “추후 좀 더 공평하고 좋은 방법을 찾아 다시 공지하겠다”고 밝혔다.

가수들이 직접 암표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이달 19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마지막 콘서트를 여는 가수 우즈(본명 조승연)도 소속사 이담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암표 근절 공지를 했다. 매크로 등 부정한 방법으로 예매하거나, 거래 사이트·개인 소셜미디어 등에서 매매되는 경우를 모두 부정 티켓 거래로 간주하고 예매 취소나 법적 조치를 취한다. 예매자 본인이 직접 예매 후 관람해야 해 티켓 실물 양도가 불가능하다. 부정 거래 증거를 제보하는 팬에겐 공연 티켓 1매를 증정하기로 했다.

이런 노력에도 암표 피해는 늘고 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신고된 공연 암표 건수는 2020년 359건, 2021년 785건에서 2022년 4244건으로 급증했다.

최근 인터파크·예스24·멜론 등 공식 티켓 판매처나 공연 기획사에서 자체적으로 매크로 예매, 부당 거래를 적발하거나 해당 티켓을 취소하는 식의 강수를 두고는 있지만 단속만이 능사도 아니다. 가령 암표 거래가 많은 아이돌 공연에선 신분증 검사 등 본인 확인 절차가 관행처럼 굳어져있는데, 불편을 호소하는 관객들도 많다. 자녀의 관람을 위해 부모가 예매한 표, 형제·자매가 예매한 표로도 입장을 거부 당하는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에 낡은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은 온라인에서의 암표 거래를 불법으로 보지 않는다. 암표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경범죄처벌법이 흥행장(공연장), 경기장, 역 등 오프라인 현장에서 웃돈을 받고 티켓을 되파는 경우를 암표 매매로 규정하고 있어서다. 처벌 규정도 적발시 2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수위가 낮다. 50년 전 만들어진 규정이 조금씩 손질돼온 탓에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웬만한 공연·경기 티켓 한 장이 20만원을 넘는데다, 암표상이 조직화된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음레협)가 지난해 전국 성인 572명에게 실시한 암표 거래 실황 조사에 따르면, 암표 거래에 지불하는 금액은 1~5만원 수준이라는 응답이 45.5%로 가장 많았지만, 20~50만원 3.7%, 50만원 이상 0.7% 등의 응답도 있었다. 이렇게 암표가 성행하면 소비자의 사기 피해나 암표상의 부당 이득 문제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관객의 공연 관람 횟수가 줄고 공연 산업 전체에 피해를 준다.

올해 3월부터 시행될 개정 공연법도 미봉책이다. 매크로를 이용한 티켓 되팔기를 불법으로 보고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는 규정이다. 윤동환 음레협 회장은 “현실적으로 분업화된 암표상 개개인의 매크로 구매를 적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우선 50년 전에 만들어진 암표 법률부터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아예 제도적으로 웃돈을 얹은 거래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는 “티켓은 물품이 아닌 일회성 소모품이라 리셀 품목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짚었다. 이 협회는 최근 암표 단속에 소홀하거나 불법 티켓거래 신고를 접수하지 않는 리셀 사이트 4곳에 대해 공정위에 불공정약관 심사를 해달라고 신고했다.

자칫 사인간 거래를 지나치게 규제할 수 있는 부분엔 논의가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2019년부터 ‘특정흥행입장권 불법전매 금지법’을 시행 중이다. 공연·경기 등 티켓 중 주최 측이 동의 없는 유상 양도를 금지하는 경우엔 표에 예매자 정보를 표시하고 본인만 입장할 수 있게 했다. 이런 표는 판매 가격보다 비싸게 재판매하면 불법으로 보고 1년 이하 징역이나 100만엔 이하 벌금으로 처벌한다. 다만 이 경우도 개인간 단발적 거래보다는 반복적으로 판매하는 암표상들이 대상이다. 여전히 암암리에 거래되는 암표 수요와 공급은 적발하기 어려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종현 음공협 회장은 “암표 근절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 전환”이라며 “아티스트와 함께 꾸준히 암표 근절 캠페인을 전개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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