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내성 '슈퍼박테리아'와의 전쟁 시작됐다
'슈퍼 박테리아'로 불리는 항생제 내성균을 정복하기 위한 전쟁이 본격화했다. 슈퍼 박테리아를 잡는 새로운 항생제 후보물질과 약물 조합이 소개됐다. 과학자들은 유전자 감시를 통해 항생제 내성균을 조기에 발견하는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기존 항생제가 통하지 않는 항생제 내성균은 환자가 적기에 치료를 받는 데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지만 현재는 환자 스스로의 회복력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카바페넴계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카바페넴 내성 아시토박터바우마니균(CARB)을 각각 1순위 중요 병원체와 '긴급한 위협'으로 분류했다. 국제 사회에서도 항생제 내성균을 새로운 공중보건 위험요소로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학계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낼지 관심이다.
● 슈퍼 박테리아 무력화하고 출현 감시한다
4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는 여러 종류의 항생제 내성균을 무력화할 수 있는 새로운 항생제 후보물질을 발견한 연구 결과가 게재됐다. 케네스 브래들리 스위스 로슈 제약 연구 및 초기 개발(pRED) 글로벌책임자가 이끄는 연구팀이 발견한 이 후보 물질은 특정한 아미노산이 사슬처럼 결합한 형태인 펩타이드를 활용한다. '조수라발핀'이란 이름의 이 펩타이드는 세포의 외막에서 항생제의 침투를 방해하는 지질다당류(LPS)의 작용을 억제함으로써 원활한 항균작용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
실험 결과 CRAB에 감염된 동시에 폐렴을 앓고 있는 쥐에게서 폐렴균 수치가 무사히 낮아지는 것이 확인됐다. 100개 이상의 CRAB 샘플을 사용한 실험에서도 효과를 보였다. 가장 골치아픈 항생제 내성균을 극복할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기존의 약물들을 조합해 항생제 내성균을 퇴치하는 방안도 모색되고 있다. 독일 소재 유럽분자
생물학연구실(EMBL)의 나소스 타이파스 연구원팀은 지난해 10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미생물학'에 항생제 내성균에 효과를 볼 수 있는 약물 조합 1만개를 추려 보고했다. 연구팀은 서로 다른 항생제를 조합하거나 항생제와 비항생제를 조합했을 때 항생제 내성균을 회피할 수 있는지 여부를 살필 계획이다.
항생제 내성균의 출현을 감시하는 효과적인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학계의 과제다. 스티븐 조르제비치 호주 시드니공과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지난해 10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리뷰 유전학'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항생제 내성균의 발달과 확산을 감시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항생제 내성은 미생물이 항생제 내성을 가진 유전자 돌연변이에게서 유전 정보를 획득할 때 생긴다. 어떤 유전 정보가 내성을 유발하는지, 어떤 환경에서 유전 정보의 이동이 일어나는지를 확인하면 항생제 내성균에 대항할 새로운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특정한 패턴을 찾아낼 수 있는 AI는 이같은 작업을 수행하는 데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 국내선 국립감염병연구소 중심으로 연구 활발…올해 예산은 그대로
국내 기관 중에선 질병관리청을 중심으로 항생제 연구 인프라가 만들어지고 있다.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감염병연구소는 항생제 내성균 관련 연구에 올해 11개 과제에 약 25억원을 할당할 계획이다. 특히 '세균 먹는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를 활용한 새로운 항생 물질을 찾는 연구에 착수할 계획이다. 올해는 연구의 구체적인 방향성을 확립하는 소액 규모의 기획 과제가 진행되며 내년부터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할 예정이다.
다만 예산은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다. 2024년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으로 국립감염병연구소의 항생제 내성균 과제 규모는 지난해 예산에서 덩치를 키우지 못했다. 새로운 기획 과제의 경우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유가족이 국내 감염병 대응 강화를 위해 건넨 기부금이 활용됐다.
항생제 내성균을 극복한 항생제 개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2022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글로벌 항생제 시장 규모는 2024년 320억달러(41조7856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홍미영 KISTEP 생명기초사업센터장은 이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항생제 내성균 대책은 과다사용의 위험성에 초점을 맞춘 항생제 사용량 감소가 중심이 됐다"며 "또 낮은 보험수가로 인해 국내 기업의 신약개발 의욕이 저하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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