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충상·김용원 상임위원, 인권위 회의 ‘보이콧’ 2주 만에 철회

고경태 기자 2024. 1. 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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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전원위원회에 위원 11명 전원 참석할 듯
2일 시무식에선 서로 날카로운 인사말 주고받아
지난해 12월18일 인권위 전원위원회가 열린 14층 전원회의실에서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의 자리가 비어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내부 최고 의사기구인 전원위원회와 주요 정책 안건을 심의하는 상임위원회를 ‘보이콧’한 김용원·이충상 인권위 상임위원이 2주여 만에 이를 ‘철회’하고 회의 참석 의사를 밝힌 것으로 5일 확인됐다. 오는 8일 열릴 전원위원회엔 인권위원 11명 전원이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은 지난해 12월18일 보도자료를 내고 “위원장의 좌편향 및 불법적 위원회 운영에 대해 비판하고 시정을 촉구했으나 개선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며 “당분간 상임위와 전원위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자료가 나온 당일인 18일 전원위에 불참한 데 이어, 12월21일과 28일 예정된 상임위도 참석하지 않아 회의가 열리지 못했다.

두 사람은 요구한 ‘위원회 운영에 대한 개선책’과 관련해 변화가 없었는 데도 입장을 바꿨다. 이와 관련 이충상 상임위원은 한겨레에 “지난번에 (상임위와 전원위에) 당분간 불참하겠다고 했을 뿐”이라며 “새해에 (이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입장의 변화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용원 상임위원도 8일 전원위에 참석할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인권위 내부에선 회의 ‘불참’ 명분이 부족하다보니 두 사람이 스스로 철회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인권위의 한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불참 선언을 했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전원위 불참을 이어갈 명분이 부족하지 않았겠나. 본인들이 발의한 소위 의사결정 해석방식 변경을 전원위에서 상정해 논의해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도 작동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8일 전원위엔 지난해 10월 이후 계속 밀린 ‘소위원회에서 의견불일치일 때의 처리’ 안건이 재상정된다. 이 안건은 3명의 소위 위원 중 한명만 반대하면 진정을 배척한다는 내용의 변경안이다. 이 안건이 통과되면 상당수 진정 사건이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사장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인권위 안팎에서 제기돼 주목을 모으고 있다.

2일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송두환 위원장이 방명록에 “순국선열의 높은 뜻 이어받아 국민인권 수호의 길 앞장서 걸어가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인권위 제공

송두환 위원장을 비롯한 사무처와 이충상·김용원 상임위원의 갈등은 지난 2일 열린 새해 인권위 시무식에서도 일부 드러났다. 이충상 상임위원은 인사말에서 “알부남을 아시느냐. 저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라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고 한다. 이 상임위원은 4일 한겨레에도 “새해에 싸움은 안 하거나 부득이 하더라도 살살만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지만, 이날 시무식에서 위원장과 다른 상임위원, 사무총장 등은 날선 말을 주고받으며 긴장감이 흐르는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게 인권위 직원들의 전언이다.

송두환 위원장은 시무식 신년사에서 “최근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서울의 봄’에서 수도경비사령관의 한마디가 오래 기억에 남아있다. 국가인권위원회 구성원은 모두 한 편, 인권의 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 분)이 “같은 편 하자”는 합동수사본부장 전두광(황정민 분)의 제안에 “대한민국 육군은 모두 한 편”이라고 맞받아친 말을 빌린 것이다.

송 위원장이 “우리 위원회 내부의 매끄럽지 못한 상황이 언론에 여과 없이 보도되고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론화되기까지 했으며, 인권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우리 위원회의 현황을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며 내부 상황을 돌아본 뒤 한 ‘뼈있는 말’이었다.

송 위원장이 신년사를 하는 동안 행사장 맨 앞줄에 앉아있던 김용원 상임위원은 본인의 인사말 차례가 되자 “인권은 좌가 다르고 우가 다르고 진보와 보수가 다르다. 그것을 다 같다고 하는 건 독선”이라고 말했다. 위원장의 신년사를 즉석에서 바로 ‘독선’이라면서 비판한 것이다. 김 상임위원은 그동안 부산 중구·영도구 국회의원 출마를 저울질해 온 것으로 알려져, 4월 총선 출마자 공직사퇴 시한인 11일 어떤 태도를 보일지 주목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인사말을 한 박진 사무총장은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새해다. 새로운 것은 늘 좋기만 하지 않다. 새롭다는 것은 낯설기 때문에 공포와 혐오를 동반하기도 한다. 그것을 이기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용기와 환대로 맞서면 된다.” 군사망자 유가족 수사의뢰 등 극단적 상황을 만들거나 동성애자 혐오 발언 논란 등으로 문제를 일으켜온 두 사람을 비판하는 의미로 들릴만한 말이었다. 시무식을 지켜본 한 인권위 직원은 “몽둥이만 안 들었지, 말로 싸우는 활극과 다름 없었다”고 말했다.

송두환 위원장과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은 11시10분께 시무식을 끝내고 오후 2시45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함께 참배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중간에 점심시간이 있었으나 각자 먹었다. 위원장과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이 밥을 같이 안드신 지 꽤 오래됐다”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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