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에 호남 출신이라서?…‘인간 박정훈’ 가짜뉴스로 공격받다
지난해 7월 채아무개 해병대 상병 순직 사건 이후 한겨레는 관련 보도를 하면서 박정훈 대령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이번 사안의 본질이 호우 피해 실종자 수색 중 숨진 채 상병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 해병대 수사단 수사에 대한 부당한 외압이 있었는지를 밝히는 데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지난해 온라인에서는 박정훈 대령을 흠집내려는 부정확한 정보가 떠돌았고, 국방부 검찰단도 구속영장에서 “무지” “망상” 같은 거친 단어로 박정훈 대령을 깎아내렸다. 지난해 8월 박 대령을 두고 “좌파이고 군 내부에서 소수인 호남 출신이라 소외 의식과 소영웅 심리에서 비롯된 돌출 행동을 했다”는 주장이 군 안팎에서 나왔다.
박 대령은 경북 지역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같은 이름의 학교가 광주에도 있다. 일부에선 이를 근거로 박 대령을 호남 출신이라 단정하고 호남 지역에 대한 편견을 끌어와 그를 비난했다. 메시지(주장)로 반박이 안 되니 메신저(사람)를 공격한 것이다.
1971년생인 박 대령은 경북 출신이다. 해군사관학교 출신이 아니고 경북대 법대를 졸업하고 해군사관후보생(OCS)으로 1996년 해병대 장교로 임관했다
박 대령의 어머니는 포항여성불교연합회 회장이고 포항의 한 새마을금고 이사장을 역임했다. 영남에서 이런 조직들은 국민의힘의 주요 지지 기반이다. 박 대령의 어머니는 지난해 8월 불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평소에도 해병의 명예를 걸고 제대하는 순간까지 규칙에 어긋나지 않게 일하는 것이 소망이라고 했고, 청정, 결백과 정의를 우선 가치로 여기고 최선을 다해 일해 왔다. 이번 일을 겪으며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평상시 하던 대로 올바르고 반듯하게 했구나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8월30일 국방부 검찰단이 작성한 박 대령에 대한 구속영장에는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내용들이 들어있다. 구속영장을 보면, 박 대령이 해병대사령관에게는 수사와 관련한 권한 자체가 없다고 주장하며 해병대 사령관의 명령과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며, “이런 피의자(박 대령)의 주장은…무지에서 비롯된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고 적혀있다. 이어 “피의자의 주장은 모두 허위이고 망상에 불과하다” “아전인수격”이라고도 주장했다.
그는 해병대 사령부 직할 군사경찰 부대인 해병대 수사단의 책임자였다. 해병대 수사단장은 해병대 군사경찰의 선임 장교로 병과장을 겸한다. 박 대령은 28년간 군사경찰로 각종 수사를 해왔다. 그는 군 복무를 하면서 고려대학교에서 법학 석사와 법학 박사 학위를 땄다. 박사 논문 제목은 ‘형사절차상 협상에 관한 연구’였다. 그의 군 경력과 학력을 감안하면 “법령 해석에 대한 무지가 범행의 동기”란 국방부 검찰단의 주장은 인신공격에 가깝다.
구속영장은 “피의자가 야금야금 공개하고 있는 사망사건 기록”이라며 박 대령 쪽 언론 대응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또 “피의자의 처 명의의 차명폰을 개설하여 이를 이 사건 이후 계속 사용하고 있다”는 주장도 했다.
구속영장에는 “군 검찰 조사에서 해병대 수사단 제1광역수사대장, 제1광역수사대 수사관들이 피의자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와 충성심을 보였다”고 적혀 있다. 박 대령은 수사단장 보직 해임 이후 해병대 사령부로 출근해 특정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해병대 수사단 소속 수사관들이 왕래하며 그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국방부 검찰단은 이를 증거 인멸의 정황으로 봤다. 박 대령이 해병대 군사경찰 병과의 병과장을 계속 맡고 있어 군사경찰 업무 전반에 대한 지휘·감독과 인사 추천·진급 심사 권한이 있어 여전히 해병대 군사경찰병과 인원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지난해 11월28일 박정훈 대령이 군사경찰 병과장 보직에서도 해임됐다.
박 대령의 보직 해임 이후에도 해병대 수사관들이 그에게 보인 신뢰와 충성심은 무척 이례적인 경우다. 통상 군대에서 큰 사건·사고가 벌어지면 평소 친분이 있던 사람들도 오해와 연루를 우려해 당사자와 접촉을 끊거나 “알고보면 원래 문제가 있던 사람” 이라고 비난에 가세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한 해병대수사관은 박 대령 변호인에 보낸 ‘사실확인서’에서 “오로지 진실된 수사와 정직한 수사로 규정과 절차에 입각하여 경찰로 이첩한 우리 수사단장이 무슨 죄가 있단 말입니까? 너무나도 억울한 심정입니다. 하루 빨리 진실이 밝혀져 수사단장의 빠른 복직과 명예회복이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밝혔다. 이미 ‘끈 떨어진’ 박 대령을 여전히 “우리 수사단장”이라고 부른 이유를 국방부 주장처럼 그가 여전히 인사·진급 권한을 가졌다고만 보긴 어렵다.
박 대령에 대한 군 내부 평가를 들어보면 “강직하고 원칙적인데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믿고 따를 선배” 같은 이야기가 많다. 일부에선 “융통성이 없다”는 이야기도 한다. 박 대령이 눈치가 빠르고 융통성이 있었으면 국방부와 윗선의 의중을 잘 파악해 약삭빠르게 처신했을텐데, 강직한 성격 탓에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 대령은 탄탄하고 강인한 인상을 준다. 그는 철인 3종경기 기록이 있을만큼 평소 운동으로 다진 강한 체력을 갖고 있지만 지난 7월 이후 몸과 마음이 무척 힘들다고 한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치아가 빠지고 상담 심리 치료, 최면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최근 박 대령에게 “총선에 출마하느냐”란 관심이 쏟아졌다. 지난달 18일 박 대령은 입장문을 내어 “정치인보다 군인으로서 명예를 지키겠다”며 총선 출마 가능성을 일축했다. 박 대령은 “그동안 수차례 직간접적으로 정치권으로부터 영입 의사가 있었지만 저는 정치인보다는 군인으로서 명예를 지키고 또한 고 채 상병의 진실 규명에 노력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의 총선 출마는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 현역 군인인 박 대령이 출마하려면 먼저 전역해야 하는데, 군인사법상 군인이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때에는 전역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박 대령은 항명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심 군사재판을 받고 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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