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금융 허브 ‘화려한 도시’ 이면엔… 90년간 19번 ‘쿠데타의 상처’[장은수의 도시와 문학]
운하건설 뒤 태국 경제 중심에
‘동양의 베네치아’로 불려
세계대전 후엔 美원조·日투자
무역금융 도시로 변신했지만
난개발·양극화 등 그림자도
리어우와린 걸작 ‘평행선…’
“고난의 세월을 잘 견뎌냈어”
60년 걸친 민주화 과정 그려
“우리 둘은 각자의 편에 서로 서 있어. 각자 이념에 따라 평행선상에 있지. 틀린 것도 없고 맞는 것도 없어. 흰색도 없고 검은색도 없지.”
‘평행선 위의 민주주의’에서 작가 윈 리어우와린은 말한다. 이 작품은 1932년 인민당 혁명 이후 1992년 ‘잔인한 5월 사태’에 이르기까지 약 60년에 걸쳐서 태국의 민주화 과정을 11편의 연작 단편을 통해 그려낸 걸작이다.
1932년 6월은 태국사의 결정적 분기점이다. 1782년 이후 이 나라를 지배한 짜끄리 왕조가 인민당 쿠데타로 몰락했기 때문이다. 입헌군주제가 시행되면서 태국은 다수 시민이 정치를 주도하는 민주주의를 향해 성큼 나아갔다. 나라 이름도 시암(Siam, 샨족의 나라)에서 자유를 뜻하는 타이(Thai)로 바뀌었다.
그러나 민주화는 더뎠다. 혁명 세력 내부의 대립은 갈수록 심해졌고, 왕실은 틈날 때마다 영향력 복구를 노렸다. 국왕 비호 아래 군부 세력은 지난 90년간 19번이나 쿠데타를 일으켰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민주 세력이나 자유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피로 진압하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총칼을 정권 유지 및 탈취 수단으로 사용하는 무도한 정치, 군부독재와 왕정이 공존하는 태국식 입헌군주제가 고착된 것이다.
‘평행선 위의 민주주의’는 혁명 이후 등장한 두 세력을 각각 상징하는 인물의 대립과 갈등, 화해와 우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평민 출신의 경찰인 뚜이 판켐은 체제 전복을 노리는 인물 여이와 평생에 걸쳐 맞선다. 여이는 군부독재를 타도하려는 반체제 인사이자 악독한 부자들을 터는 의적으로 활동한다.
두 사람은 1932년 혁명, 1957년 싸릿의 쿠데타, 1973년 따놈 군사정권을 타도한 시민 의거, 1976년 10월 군부가 학생들 봉기를 학살로 진압한 혹뚤라 참사, 1992년 짬렁 방콕시장의 단식 투쟁을 계기로 일어선 시위대에 대한 유혈 진압 등 태국 현대사의 주요 국면에서 사사건건 마주친다. 각 사건 현장에서 여이는 군부독재에 맞서고, 뚜이는 이를 막아 체제를 수호하려 한다.
작품은 노년의 두 사람이 상대방 진심을 확인하고, 화해하는 장면에서 끝난다. “자네는 태국 민주주의가 커다란 싸이나무 같다고 생각지 않나. 권력은 폭풍과 같고, 폭풍이 불면 나무도 심하게 흔들리지. 그래도 민주주의 나무는 고난의 세월을 잘 견뎌냈어.” 군부 모리배나 권력 중독자와 달리, 삶의 방향은 달랐으나, 두 사람은 나라를 위하는 열정에선 하나였다. 대화를 통한 보수와 진보의 상호 인정은 국가 역량의 손실을 막고, 갈등과 분열을 잠재우는 유일한 길이다.
작품의 무대는 태국 전역에 걸쳐 있지만, 그 중심엔 태국 수도이자 민주화 성지인 방콕이 있다. 방콕은 태국의 젖줄인 짜오프라야강 삼각주에 있는 인구 약 830만 명의 거대도시다. 정식 이름은 끄룽텝 마하나콘으로, ‘신들의 도시’라는 뜻이다. 태국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소승불교의 영향이 짙은 이름이다.
15세기 초까지 방콕은 짜오프라야강 하구의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방콕은 그 위치 덕분에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무역을 국부의 원천으로 삼았던 아유타야 왕국은 이곳에 톤부리 세관을 두고 요새를 건설해 강과 바다를 오가는 선박을 감독했다. 톤부리란 말뜻대로 ‘바다를 장식하는 보물의 도시’가 된 것이다.
1767년 아유타야가 미얀마 침략을 받아 멸망한 후, 탁신은 이 지역을 근거 삼아 미얀마를 무찌르고 톤부리 왕조를 열었다. 그러나 화인 출신 평민으로 기반이 약했던 탁신은 서툰 개혁을 성급히 추진하다가 15년 만에 몰락했다.
1782년 라마 1세가 탁신을 끌어낸 후 방콕에서 짜끄리 왕조를 열었다. 늪지를 개척하고 운하를 건설해 수도로 삼은 이후, 이 도시는 태국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운하의 아름다움, 수상가옥의 이국정취 덕분에 동양의 베네치아로 불리기도 했다.
라마 1세는 아유타야 왕국의 정통성을 이어받고, 민중에게 불법(佛法)의 수호자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라마끼엔’을 직접 지어서 퍼뜨렸다. 인도 서사시 라마야나를 태국 실정에 맞추어 토착화한 이 작품은 라마인 프라람이 악마 톳싸깐을 물리치고 불법과 정의를 수호하는 내용이다. 태국 국왕들이 대대로 라마를 왕호로 계승하는 이유다.
이후 방콕은 발전을 거듭했다. 아름다운 왕궁과 사원이 건설되고 도시는 빠르게 몸집을 키워갔다. “강엔 물고기가 있고 논엔 쌀이 있다”는 옛말대로 사람들은 풍요를 누렸다. 중국인과 서양인이 몰려들어 넘치는 쌀을 실어 나르고, 진귀한 산물들을 내려놓으면서 방콕은 자연스레 동남아 무역의 중심에 섰다. 국제성과 개방성이라는 도시 특성이 이 무렵부터 확연해졌다.
19세기 후반, 영국이 미얀마를 지배하고 프랑스가 베트남에 자리 잡으면서 제국주의 세력의 압박이 태국에 닥쳐왔다. 그러나 국왕이었던 몽꿋과 쭐랄롱껀은 “강대국 외교에선 어디에도 지지 않는다”는 오랜 외교 전통을 이어받아 ‘약자의 지혜’를 발휘할 줄 알았다. 두 사람이 재위한 1851년부터 1910년까지 60년 동안 태국은 영국과 불평등 조약을 감수하고 프랑스에 라오스 땅을 넘기는 등 굴욕을 감수하면서도 무력 충돌을 최대한 피했다.
두 왕이 집중한 건 내정이었다. 이들은 도로를 건설하고, 신문을 도입하며 노예제를 폐지하고, 보통 교육을 시행하는 등 국가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지방의 세습 영주를 타도해서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관철하고 치앙마이, 푸껫 등을 통합해 국경을 확고히 했다. 이들은 현재 태국의 국가 정체성을 만들어 냈다. 다른 동남아 국가와 달리, 태국이 식민화를 피하고 독립을 지킨 것은 자주보다 생존을 우선했던 이들의 유연한 통치술 덕분이라 할 수 있다.
태국 현대문학의 아버지 씨부라파는 ‘사내대장부’(1928)에서 가난한 목수 아들로 태어난 마놋 락싸마콤이 부유한 귀족 집안의 람판과 우정을 나누고, 공부를 통해 판사가 되어 귀족이 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신분 질서를 넘어선 근대적 자아를 연출한 마놋은 “진정한 사내대장부”로서 태국인들의 가슴에 영원한 역할모델로 남았다.
근대화는 방콕 발전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운하와 도로가 건설되고, 철도와 전기가 도입되면서 사람들이 방콕으로 몰려들었다. 대학이 설립되고 공원이 들어서는 등 도시계획이 시행되면서 방콕 풍경도 완연히 달라졌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뛰어난 외교 역량을 발휘해 승전국 대열에 섰던 태국은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에 협조하는 등 진영을 수시로 옮겨 다녔다. 그 탓에 방콕은 연합군 폭격을 당하기도 했다.
전후 방콕은 미국 원조를 받아서 국제 관광 도시로, 일본 등의 투자로 무역 금융 도시로 변신했다. 그러나 난개발로 인한 불균형, 뿌리 깊은 봉건주의, 극단적 소득 불평등, 쿠데타를 정치 수단으로 삼은 군부와 왕실의 야합 등은 초고층 빌딩이 즐비하고 고급 주택이 넘쳐나는 열대 도시 방콕에 지속적으로 차가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민주화의 상징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는 지난 20년간 선거에서 패배한 적이 없다. 그러나 2010년 왕실과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정부를 전복하고, 의회를 해산하며 시위대를 공격하는 등 유혈 진압으로 민주화 요구를 억눌렀다. 그러나 무엇도 시대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삐?’에서 작가 쎄니 싸오와퐁은 말한다. “갈수록 저 같은 도깨비가 생겨납니다. 여러분같이 높은 분들은 도깨비를 없애야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도깨비는 세월이란 갑옷을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방콕은 과연 언제 도깨비들의 도시가 될까. 여기에 이 도시의 미래가 달려 있다.
출판평론가
■ 용어설명 - 혹뚤라 참사
1976년 10월 6일 방콕 탐마삿대학에 학생들이 모였다. 3년 전 탱크와 헬리콥터에 맞서 숱한 희생을 치르고 쫓아낸 독재자 따놈의 귀국에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평화롭게 시위하던 학생들을 군인과 우익 민병대가 습격했다. 수백 명이 학살당하고, 3000여 명이 다쳤다.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다시 정권을 탈취했다.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나, 아직 진상조사도 없었고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태국 민주화 운동의 가장 큰 상처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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