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선진국 발돋움, 텍스트 생산에 달렸다
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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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칼럼인데 새해 벽두부터 뜬금없이 웬 텍스트인가 싶을 것이다. 미술선진국은 좋은 작품을 제작하는 좋은 작가가 많으면 되는 것 아닌가? 물론 그렇다. 다만 좋은 작품의 기준이 무엇이며, 그걸 누가 정하고 평가하느냐가 문제다. 게다가 제조업에서 보듯이 선진국은 제품을 잘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 만드는 방법을 생산하는 나라다.
좋은 미술을 정의하는 담론, 즉 텍스트는 그동안 서구에서 독점적으로 생산했다. 그들이 기준을 정했으니 당연히 그들이 좋다고 평가한 작품이 좋은 작품이다. 아무리 작품이 좋아도 우리에겐 발언권을 주지 않아 그들의 평가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국내 최고 권위를 지닌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국내 대다수 미술상 심사위원에 외국인이 초대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정하더라도 그들의 인증을 받아야 국제적 공신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처럼 미술선진국 되기는 작품보다 텍스트의 생산에 달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전시 ‘물의 왕: 동학과 화엄의 두물머리’
2023년 말, 서울 인왕산 자락의 한 미술관에서 열린 작은 전시가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영화, 미술, 무용을 넘나드는 전천후 예술평론가 김남수씨가 2년여에 걸쳐 준비·기획한 ‘물의 왕: 동학과 화엄의 두물머리’라는 전시다. 김지하의 말년 사유를 담은 책 <수왕사>를 텍스트로 자신의 사유를 전개하고, 이를 참여작가들과 공유해 제작한 작품들을 한자리에 펼쳐놓았다. 기획 과정에서 함께 텍스트 읽기에 참여했던 분들의 연계 강연과 퍼포먼스가 이어지고 입소문이 나면서 김지하, 생명사상, 개벽사상, 동학에 관심 있는 인사들이 삼삼오오 전시를 찾았다.
2022년 별세한 김지하는 사실상 한국 근대화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지식인이다. 근대화 초기인 식민 치하에서 서구문화와 사유를 도입했던 지식인들이 처한 상황과 노력을 국문학자 김윤식은 <이광수와 그의 시대>라는 저술로 그려냈다. 근대화를 스스로 이뤄내는 1960~1990년대, 이에 따른 억압과 폐해를 비판적으로 반성하며 다시 자기에 대해 눈뜨기 시작한 이 시기는 ‘김지하와 그의 시대’라고 부를 만하다. 김지하를 중심으로 선배인 조동일, 후배인 미술가 오윤, 마당극의 임진택, 탈춤의 채희완, 대중가요의 김민기 등 그와 가까운 인물들뿐 아니라 그보다 앞선 신동엽부터 지금의 환경운동과 한살림운동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의 사상적 지형을 그의 사유가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김지하는 민주화운동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운동권의 ‘얼굴마담’이었지만 그가 생명사상에 경도됐던 1980년대 신군부 치하에서는 진보 진영으로부터 이미 변심의 의혹을 샀다. 1991년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는 변절자로 낙인찍히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후 그의 이름은 2012년 박근혜 지지를 선언했을 때 잠깐 회자했을 뿐 대중에게서 잊혔다. 그래서 막상 그의 장례는 문학계도 문화계도 아닌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러졌다. 뒤늦게 이부영을 중심으로 ‘김지하시인추모문화제추진위원회’가 조직되면서 사십구재를 빌려 문화제를 치렀다.
김지하는 ‘오적’을 쓴 시인이자 군사독재에 저항한 민주투사이고, 한국문화를 되살리고 일군 민족적 문화운동가다. 또한 동학을 재발굴하면서 생명과 살림에 관한 사상을 펼친 생명사상가다. 그는 오늘, 바로 지금 가장 뜨거운 화두인 생명사상을 1980년대에 이미 설파했고, 최근 사상적·역사적 의의를 새롭게 조명받는 동학에 평생 심취했다. 한마디로 김지하는 시대를 앞선 사상가로, 우리가 버려서는 안 될 귀중한 ‘텍스트’다.
텍스트는 생각을 담은 글이다. 인류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한 시대를 올바로 살아가기 위해 갖춰야 할 생각이 우린들 왜 없었겠는가. 그동안 우리는 앞선 서구를 배우느라 철저하게 서구의 텍스트를 습득하는 데 올인했고, 그러다보니 근대 이후 한국에 사상가가 있었는지를 물을 지경이 됐다. 반면 서구는 매 시기 주요한 사상가들의 계보를 촘촘하게 세워 연구한다. 앞선 사상가를 읽으면서 자신의 사유를 세우고, 그 사유 위에 후학이 다시 자기 사유를 세우는 식으로 연구가 쌓이면 사유는 점점 더 정교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서구는 좋은 사유, 좋은 텍스트가 생산되기 유리한 선순환 구조가 확립돼 있다.
우리의 경우, 수년 전 철학자 이정우가 스승인 박홍규의 사상을 담아 <동일성과 차이생성: 소은 박홍규와 서구 존재론사>를 출간했다. 서구 존재론사를 그리스 철학에서 근대를 생략하고 앙리 베르그송으로 바로 뛰어넘어 축약·정리한 박홍규의 서구 존재론사를 다룬 책이다. 하지만 본인의 생각을 더해, 스승의 사유를 빌려 자신의 사유를 밝혔다. 텍스트는 이처럼 외워야 할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거기에 기대어 자신의 사유를 전개하는 비빌 언덕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서구의 텍스트를 절대적 진리인 양 암기하면서 우리의 소중한 텍스트와 독자적인 사유, 즉 새로운 텍스트의 생산능력은 방기됐다.
우리 텍스트 읽고 소개해야
이제 우리 텍스트를 알리고 쓰는 작업이 저술과 전시에서 시작되고 있다. 스승의 텍스트를 알리면서 자신의 텍스트를 쓰는 이정우의 저술이나 김지하라는 텍스트를 모티브로 갑오농민전쟁 실패 이후 동학 재정립을 도모하던 당시의 사유를 오늘의 현실을 읽고 헤쳐나가기 위해 소환한 김남수의 전시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마침 홍콩 미술계에서 서울을 방문한 한 연구자가 내게 물었다. 한국문학이나 역사, 문화를 알고 싶은데 중요한 작가나 사상가, 사건 등을 알려달라고 말이다. 나는 한국의 주요한 텍스트로 김지하와 동학이 있다고 말했다. 연구자는 곧바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관련 게시글을 찾아본 뒤 내용이 맞냐고 물었다.
아무리 우리 텍스트를 알리고 싶어도 외부의 관심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국을 향한 외국의 관심이 높은 지금, 우리는 텍스트를 생산하는 나라로 발돋움할 문턱에 와 있다. 그리고 생산은 텍스트를 쓰고 연구하는 일뿐 아니라, 우리 텍스트를 스스로 읽고 소개하는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이승현 미술사학자 shl2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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