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형평 위한 30년 노력을 물거품으로
[세상읽기] 박복영 | 경희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세금을 내고 거두는 것은 전쟁과 같은 일이다. 국가가 탄생할 때부터 지금까지 궁극의 경제 문제는 결국 세금 문제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순조롭지 않으면 전쟁이나 혁명이 일어난다. 미국 독립전쟁도 프랑스혁명도 조선의 동학봉기도 모두 그 뿌리에는 세금 문제가 있었다. 이 문제를 국민대표들 사이에 타협으로 해결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 의회민주주의다. 그래도 조세 문제에서 합의를 이루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누구나 세금은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금이 없어서는 안 되니 어떻게든 타협해야 한다. 한편으로 같이 세금을 낸다는 것은 허구의 집단을 국가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새해 벽두 대통령이 폐지하겠다고 공언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도입하기까지 장장 30년이 걸렸다. 연구하고 토론하고 싸우고 설득하고, 그래서 어렵게 어렵게 사회가 합의해 입법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이것을 없앤다면 30년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조세형평을 후퇴시키고 미래의 조세 기반을 허무는 통탄할 일이 될 것이다.
금투세는 주식이나 채권 같은 금융자산의 매매차익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2020년 여야 합의로 도입이 결정되어 2023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시행 직전인 2022년 말 윤석열 정부는 시행을 유예하겠다고 했고, 투자자 반발을 의식한 민주당도 이에 합의해 시행을 2025년으로 미루었다. 그런데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올해 대통령은 급기야 폐지를 공언하고 나섰다.
증권시장이 성장하면서 금융자산가들에게는 투자소득이 전체 소득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극히 일부 대주주를 제외하고는 이런 소득에 세금을 매기지 않았다. 직장인의 근로소득과 자영업자의 사업소득에는 꼬박꼬박 세금을 매기면서, 그보다 노력이 덜 드는 주식이나 채권 매매차익에 대해서는 과세하지 않는 것은 조세 형평성에 어긋난다. 거주하는 집의 매매차익에도 양도세가 부과되는 것을 생각하면, 금융자산 매매차익 비과세는 얼마나 특별 대우인지 짐작할 수 있다.
금투세 도입 주장은 주식 투자가 대중화된 1990년대 초부터 있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토론회, 수십편의 논문과 보고서, 끊임없는 정치적 논의가 있었다. 이 많은 논의에서 경제전문가 중 금투세 도입을 반대한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조세 형평성을 위해서도 필요했고, 홍콩과 싱가포르 같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 선진국은 이미 수십년 전 도입했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소득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나라에서도 다수가 도입했다. 그런데도 오랫동안 도입하지 못한 이유는 투자자 눈치 보기 때문이었다.
반대 논리를 보면, 우선 증권시장 발전 수준이 낮은 상태에서 과세하면 시장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주장이 있다. 이득은 과세하면서 손실은 보상해주지 않아 불합리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도입 때 자칫 자금이 이탈해 시장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이유는 이제 설득력이 없다. 우리나라 주식시장 규모는 세계 10위권으로 성장했다. 매매 손실을 보면 결손금은 5년간 이월되어 공제받게 되어 있다. 금투세 도입으로 시장 충격이 발생한 사례도 찾기 어렵다. 무엇보다 모든 투자자에게 과세하는 것도 아니다. 연간 투자소득이 5천만원을 초과한 개인에게만 과세하는데, 지난 10년간 통계를 보면 대략 15만명으로 전체 투자자의 1% 남짓이라고 한다.
저출생과 고령화로 인구구조가 재앙과 같은 수준으로 바뀌면서, 재정지출 수요는 늘고 세수 기반은 줄어들고 있다. 그러니 세수는 늘리고 지출은 효율화해야 한다. 지출을 남발하는 것이 좌파 포퓰리즘이면, 감세를 남발하는 것은 우파 포퓰리즘이다. 우파 포퓰리즘은 감세 혜택을 상위계층에게 집중시켜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세수 부족과 정부투자 감소를 초래해 성장잠재력을 훼손한다.
지난해 대규모 세수 부족으로 곤욕을 치르고 늘어나는 국가부채를 숨기기 위해 재정 분식회계까지 한 정권이 표를 얻겠다고 또 감세를 들고나왔다. 만약 야당이 이번에도 표 계산을 하며 동조한다면 공범이 되고 자기부정이 되는 것이다. 쌓는 데는 수십년이 걸려도 허무는 데는 순식간이라더니 이것이 바로 그 짝이다.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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