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리당략만 셈하다 끝난 선거제 논의…어떤 국회 바라는지부터 합의를

기자 2024. 1. 5.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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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성 없이 이뤄진 토의, 정답 없는 문제라고 결론까지 회피…제도 자체보다 운영이 더 중요한 문제
대표성·비례성·책임성…우리 사회에 필요한 국회의 모습부터 고민해야

2023년 한 해 동안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논의가 활발했다. 20년 만에 국회 전원위원회가 열렸을 뿐 아니라, 역사상 최초로 일반 국민 500명을 대상으로 한 공론조사까지 치렀다.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지역구 중대선거구제와 김진표 국회의장이 제안한 도농복합 선거제도 등도 논의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내용의 양으로만 따지면 충실한 토의가 진행되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그런데 토의에만 그쳤다. 올해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어떤 형식으로 치를 것인지에 대한 결론은 결국 내지 못했다. 못한 것이 아니라 아마 안 했을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개편하는 주체가 그 제도 변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국회의원들이기 때문에 현역 의원 개인과 소속 정당의 이해관계를 따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불확실한 새로운 제도보다는 한번 경험해본 과거의 제도가 더 낫다는 판단을 은연중에 했을 것이다. 이변이 생기지 않는 한, 올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는 4년 전에 마련한 준연동형 제도 혹은 8년 전 사용했던 병립형 선거제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작년 제도 개편 논의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상황이다.

2023년에 진행된 선거제도 개편 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명확한 방향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마련하는 과정에서는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의 수가 비례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나름의 합의가 있었다.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위성정당 방지법,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농복합 선거제도, 지역구 중대선거구제 등의 대안들이 정당과 정치인들의 이익 극대화의 방편으로 논의되었다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가장 아쉬운 지점은 선거를 100일 정도 남겨 놓은 상황에서 선거제도를 정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제도 개혁 논의 과정에서 방향성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대체 무슨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선거제도 개혁인가?

선거제도에는 정답이 없다. 특정 선거제도가 다른 선거제도에 비해 우월한 것은 아니다. 국가의 구성원들이 합의하는 원칙에 충실한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그것의 장점을 살리고, 약점은 보완하는 방향으로 운영하면 되는 것이다. 연동형 제도의 부작용인 위성정당? 유권자들이 위성정당에 투표하지 않으면 된다. 병립형 제도? 지금보다 비례대표 비율을 현저하게 높이면 병립형 제도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 지역구 중대선거구제? 한 지역구에 각 정당이 복수 공천을 하지 않으면 비례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 이처럼 제도 자체의 문제보다는 주어진 제도의 운영이 더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정답 찾기에만 골몰한 모습을 보인 것이 현실이다.

선거제도 개편 논의는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만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선거가 임박한 상황에서는 당리당략에 의해 논의가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우리나라에 현재 필요한 국회의 모습이 어떠한지에 대한 합의가 요구된다. 일반 국민들의 모습과 유사한, 대표성이 담보된 국회를 원하는지, 정당들의 입장이 골고루 고려되는, 비례성이 높은 국회를 원하는지,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유권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책임성에 충실한 국회를 원하는지부터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선거제도 개혁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은 정당법 혹은 공천제도의 개편 논의로 집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소멸하는 지역의 정치적 목소리를 대변하기에는 정당법 개정을 통해 지역정당을 설립하게 해주는 것이, 제한된 비례대표의 수를 권역별로 나누는 것보다 낫다. 올 4월 선거의 결과가 어떠하건 상관없이, 선거제도와 정당법에 대한 차분한 토의가 재개되었으면 한다. 더 이상 승자의 기득권 보호나 패자의 복수를 위한 전략 차원에서 논의되어서는 안 된다.

하상응 서강대 교수·경실련 정치개혁위원회

하상응 서강대 교수·경실련 정치개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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