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9개 학군 분석한 심정섭 소장 "맹모삼천지교도 아이가 맹자여야 가능"
아이가 겨울방학을 맞는 1월, 학부모들의 고민은 커진다. 같은 반 친구는 대치동, 목동으로 이사 간다는데, 여기 남아 있으면 우리 아이만 뒤처지지 않을까. 학군 전문가 심정섭 소장이 그 기준을 들려준다.
심정섭 더나음연구소 소장은 저서 '심정섭의 대한민국 학군지도’를 통해 학군의 의미를 이렇게 축약한다. 그는 20년간 대치동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다 입시 위주 교육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새로운 방식의 교육에 관심을 가진다.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독서 교육이나 토론 교육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지만, 학부모로부터 돌아오는 질문은 '대치동으로 이사 가야 하나요?’ '목동으로 이사 가야 하나요?’ 같은 것이었다.
심 소장은 전국의 주요 학군 19곳을 직접 방문해 조사한 뒤 2016년 '심정섭의 대한민국 학군지도’를 펴냈다. 부동산 상승장을 타고 화제에 오른 이 책은 2019년과 2023년에 각각 개정판이 나왔다. 부동산 조정기, 고교학점제 시행, 2028 대입 개편 시안으로 인한 내신 경쟁 완화 등 학군과 관련된 다양한 변화를 앞두고 이슈가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 2024년, 학군 전문가 심 소장을 만났다.
마포가 명문 학군이 아닌 이유
학군 전문가의 명문 학군 정의가 궁금합니다.
아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6년간 이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입니다. 단순히 살기 좋은 곳과는 다릅니다. 길음뉴타운이나 아현뉴타운처럼 신축 아파트가 모여 있는 곳은 신혼부부에게 인기가 높죠. 하지만 이곳에 사는 분들도 아이가 중학교에 진학하기 전 교통이 비교적 불편한 중계 학군으로의 이사를 고려합니다.
살기 좋은 곳과 좋은 학군이 일치하는 건 아니군요.
서울 마포구 아파트값이 부동산 상승기 때 많이 올랐습니다. 마포 지역이 새로운 학군으로 떠오르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는데요. 초등학교 저학년 대비 고학년 비율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2022년 기준으로 강남구 서울대치초등학교 1~3학년 평균 학생 수는 181명이고, 4~6학년은 316명입니다. 약 1.7배 많죠. 반면 마포구의 서울염리초등학교 1~3학년 평균 학생 수는 243명, 4~6학년은 237명이니까 고학년 때 이사 간 학생이 있다고 봐야겠죠.
주요 학군과 입시 실적의 연관관계는 어떤가요.
고등학교 입시 결과가 중요합니다. 결국 서울대와 의대에 진학하는 학생 수로 순위를 매길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입시는 상대평가 구조입니다. 전국 3000등까지는 의대에, 6000등까지는 서울대에 간다고 단순화해볼 수 있는데 의대와 서울대로 학생들을 많이 진학시키는 학교에서 순차적으로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이 많을 수밖에 없죠. 이를 바탕으로 전국 고등학교 순위를 내보면 100위권 학교 중 절반은 특목·자사고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서울 대치동과 목동, 대구 수성구에 있는 일반고입니다.
심 소장은 대치동 A 고등학교 입시 결과를 제시했다. 2023학년도 입시 결과 A 고등학교에서 의약 계열에 합격한 숫자는 81명, '서연고’로 불리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합격생은 각각 23명, 50명, 54명이다. 한 학생이 중복으로 여러 학교에 합격할 수 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엄청난 결과다.
결과만 보면 당장 대치동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입시 성과만 보면 압도적입니다. 내신 3등급(23%) 안에 들면 톱 10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정도죠. 하지만 주요 학군일수록 N수 비율이 높다는 점도 감안해야 합니다. 대치권에서 재수 비율은 절반에 가깝습니다. 또 학내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점도 알아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A 고등학교의 1학년 1학기 국어 내신 결과를 보면 90점을 넘는 학생이 27%입니다. 그러니까 90점이 넘는 성적인데도 4등급을 받는다는 이야기죠. 주요 학군이더라도 내신이 5등급 밖으로 밀리면 비학군지에서 2~3등급을 받아 수시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학교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높은 주거비, 매달 200만~300만 원에 달하는 사교육비를 써가면서 학군지에 있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죠.
투자 대비 좋은 결과가 나올지를 생각해봐야 하는 거네요.
대한민국 교육에서는 이성적인 판단보다 심리적인 영향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남들 다 하니까 우리도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건데, 보다 정량적인 판단이 필요하죠. 양질의 사교육을 받는다면 점수가 높아질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등급을 바꾸기는 어렵다고 저는 강조합니다.
무슨 말인가요.
초등학교 수학은 엄마의 힘, 중학교 수학은 학원의 힘, 고등학교 수학은 자기 힘으로 성적이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주도학습이 안 되는 학생은 초중학교 때 부모와 학원 도움으로 점수를 올려놔도 고등학교에서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교육이 잘하는 애를 더 잘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지만 공부 못하는 아이를 잘하게 만들어주는 건 아닙니다. 학군지 이사를 맹모삼천지교에 많이 비유하잖아요. 하지만 맹모삼천지교가 의미가 있으려면 그 아이가 맹자여야 합니다. 맹자가 아닌데 학군지 학원에서 레벨 테스트를 보고 대치동으로 이사하고 그럴 필요가 없는 거죠. 이게 상식적인 이야기인데 그 상식이 대한민국 사교육계에선 잘 통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아이가 주요 학군에서도 공부를 잘할지 판단할 수 있나요.
모의 테스트를 해봐야 합니다. 진학하고자 하는 학군지 중학교 시험지를 구해서 시험 시간 그대로 한번, 시간제한 없이 오픈 북으로 풀어보게 하는 겁니다. 오픈 북 테스트는 학생이 받을 수 있는 점수의 상한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해당 학군에서 잘 적응하려면 오픈 북 테스트에서 적어도 80점 이상은 나와야 합니다.
80점의 의미는 뭔가요.
상위 20~30%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안에는 들어야 적어도 톱 30 대학에 진학할 수 있죠. 대한민국 입시는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두는 게 아닙니다. 냉정한 현실이죠. 명문 학군에서 높은 주거비와 교육비를 감당하는 건 노후를 포기한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20~30% 안에 들지 않으면 그 노력이 무의미합니다.
학군지 이사에는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필요한가요.
개인적으로 아이 공부 역량도 중요하지만 경제적 역량에 따라 이사 여부를 판단하길 권합니다. 상징적인 금액을 200만 원으로 봅니다. 주거비, 교육비, 생활비를 제외하고 200만 원 이상 저축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이사해도 괜찮다는 거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특목·자사고 진학을 노린다든지, 비학군지 일반고에서 내신 1등급을 받으면서 수능 최저 등급을 맞춰 톱 10 대학에 진학하는 방법을 노리는 게 더 현명하다고 봅니다.
전세가율 60%가 매수 타이밍
초등학교 고학년 때를 추천합니다. 저학년 때 경쟁이 치열한 학군으로 이사하면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기 쉽습니다. 대치동 학원은 초등학교 때부터 반마다 레벨이 다 정해져 있습니다. 대치동에서 오래 강의하면서 어릴 때부터 번아웃이 온 학생을 많이 봤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공부든 운동이든 반에서 상위권에 드는 경험을 해보는 게 중요합니다. 그게 아이의 자존감과 회복탄력성 형성에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문제집 푸는 공부는 중고등학교 6년 동안 바짝 해도 되죠.
고등학교 때 이사하는 건 늦나요.
현실적으로 톱 10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려면 중2부터 고3까지 최소 5년간 하루 3~4시간씩 자습해야 한다고 봅니다. 중학교 때부터 공부에 그 정도 시간을 투자하는 게 익숙한 학생이어야 고등학교 때 학군지로 전학 가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주요 학군에서 주변 지역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고요.
저는 책 초판을 낼 때부터 소위 '탈대치’를 추천했습니다. 대치 대신 서초나 잠실, 강남 변두리 등 내신 경쟁이 덜 치열한 학교로 진학하는 겁니다. 목동 대신 우장산 학군 등 강서 쪽으로 이동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죠. 매매나 전세 가격이 주요 학군보다 최대 2억~3억 원 가까이 저렴하니 노후 준비에도 유리하고, 내신 경쟁은 덜하면서도 학군지 학원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의대 진학만을 목표로 하는 경우 지방 의대는 지역인재전형 인원이 전체의 40%(강원·제주 20%)인 점을 고려해 아예 수도권 밖으로 이사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수도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 조정기이기도 합니다. 학군지 이사를 고려하는 경우 매매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기인가요.
2~4년 정도를 지켜보면서 전 고점 대비 20~30% 하락하거나 2019년 가격으로 수렴하는 경향을 보일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현재 대치 학군에 속한 서울 강남구 도곡렉슬의 중위 가격을 보면 전 고점 대비 13% 정도 하락했습니다. 또 한 가지 포인트는 전세가율입니다. 전세가율이 60% 정도까지 상승하면 매수 타이밍에 근접했다고 봅니다. 본인이 관심을 가지는 지역의 전세가율을 지속적으로 체크해야 합니다.
저출생 시대 학군의 미래
2028 대입 개편 시안 영향으로 주요 학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거라고 보시나요.9등급에서 5등급 체계로 바뀌는 내신 경쟁 완화에 관심을 많이 두시지만, 더 중요한 건 수도권 16개 대학 정시 40% 선발이 유지된다는 겁니다. 수시에서 수능 최저 등급을 충족하지 못해 발생하는 정원까지 고려하면 절반 정도가 수능 성적으로 수도권 16개 대학에 가게 되는 거죠. 결국 수능 대비가 유리한 고등학교로 학생들이 몰릴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학군지에 대한 수요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학군지 학원에서의 수능 대비가 훨씬 철저하기도 하고요.
책이 개정될 때마다 다양한 자료가 업데이트될 텐데 7년간 '대한민국 학군 지도’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가장 큰 특징은 학군의 양극화입니다. 가령 경기 분당은 중학교 학군이 굉장히 좋은 곳으로 유명했습니다. 2016년 중학교 순위를 매겼을 때 100위권 안에 있는 학교가 17곳이나 됐습니다. 2022년에는 7곳으로 줄었죠. 반면 대치는 2016년 13곳에서 2022년 11곳으로 큰 차이가 없었어요. 분당은 수도권 신도시 중에서 첫 번째로 꼽히는 학군입니다. 왜 과거에 비해 중학교 학군이 약해졌을까를 헤아려보면, 대치동으로 이사한 경우가 늘었다는 점과 분당 중학교 내에서도 성취도가 높은 중학교로 몰렸을 거라고 유추해볼 수 있죠. 이런 식으로 학군 중에서도 명문 학군 수요가 증가하고, 학군 내에서도 특정 학교로 몰리는 현상이 발생한 겁니다.
신흥 학군이 생기긴 어려운 구조겠네요.
학군의 위계는 공고합니다. 대치동에서 분당으로 이사하는 경우는 적지만 반대는 많죠. 특히 저출생 상황에서 명문 학군이 새로 만들어지는 일은 더 줄어든다고 봐야 합니다. 경기 동탄 경우만 해도 일자리 기반의 신도시고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이 많아서 판교처럼 학군이 발달할 것 같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용인 수지나 수원 영통 쪽으로 이사 가는 경향을 보입니다.
10년 뒤 학군의 의미가 퇴색될 거라고 지적했습니다.
수능 응시 인원 40만 명대가 유지되는 10년간은 명문 학군에 대한 수요는 늘고 학군 양극화가 더 심해질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 유치원생의 경우 수능 응시 인원이 20만 명대로 줄어들게 됩니다. 톱 30위권 대학 정원을 10만 명으로 본다면 절반의 학생이 진학할 수 있는 수치죠. 그때는 구직난이 아니라 구인난의 시대가 될 겁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하는 교육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아이들을 충북 증평군에서 키우는 건가요.
저는 아이들이 어릴 때는 자연과 함께 지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지자체의 지원이 많아서 사교육비 쓸 일도 없고요. 학생들이 적으니 병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1등 하는 경험을 해볼 수 있죠. 어릴 때부터 학군지에 살면 거길 빠져나오는 게 쉽지 않거든요. 사교육에 처음 발을 담그는 나이가 계속 낮아지고 있어요. 주변 이야기만 듣고 가정 형편에 맞지도 않는데 무리하기보다는 이성적인 판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국 주요 학군 6곳
사진 홍태식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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