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보존 넘어 국민과 향유… 2024년은 ‘국가유산’ 체제 원년” [현안 인터뷰]

박세희 기자 2024. 1. 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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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안 인터뷰
62년 만에 ‘문화재→국가유산’ 전환… 최응천 문화재청장
국보 등 유형유산 보존 중심서
문화·자연·무형유산까지 통합
함께 가치 누리도록 정책 전환
국가유산 보호구역 확실히하되
그렇지 않은 곳에선 규제 완화
‘문화재’ 명칭 사용국 한·일뿐
재화 개념 벗어내는 인식 필요
경복궁 담장 훼손사건 큰 충격
국가유산 소중히하는 인식필요
지난 4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최응천 문화재청장. 최 청장은 올해 문화재에서 국가유산으로 체제가 전환되는 것에 관해 “핵심은 문화유산의 당위적인 보존에서 국민과 함께 국가유산을 향유하는 방향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윤슬 기자

2024년은 ‘국가유산’ 체제의 원년이 될 전망이다. 지난 1962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 체제로 유지되던 것이 올해 5월을 기점으로 ‘국가유산’ 체제로 바뀐다.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이름을 바꾸는 것은 물론, 관련 법과 제도, 국가유산청 내 조직 구조 등 많은 것이 변한다.

62년 만의 체제 변화를 앞두고 최응천 문화재청장과 만나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최 청장은 “체제 전환의 핵심은 문화유산의 당위적인 보존에서, 국민과 함께 국가유산을 향유·진흥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전환되는 것”이라며 “한마디로 말해 문화재로 국민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우리가 널리 사용하는 ‘문화재’(文化財)라는 용어는 1950년에 제정된 일본의 문화재보호법에서 인용한 것으로, ‘문화재’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국가는 일본과 우리나라뿐이다. “‘국가유산’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통해 아시아의 틀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헤리티지’(heritage) 개념에 맞춰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한 최 청장은 ‘문화재’라는 용어가 갖는 재화적 성격에 대해 이야기했다.

“‘TV쇼 진품명품’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기도 했지만 ‘문화재는 돈이다’라는 인식도 함께 심어줬어요. 국가유산은 소중히 유지하고 후대에 물려줘야 하는 것입니다.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부동산이 아니지요. 이제 재화의 개념에서 벗어날 때가 됐습니다.”

국가유산 체제로 바뀌면서 국가유산청(현 문화재청)이 다루는 유산의 범위도 더욱 넓어진다. 국보, 보물 등 유형 문화유산의 보존에 중점을 둔 현 체계에서 벗어나, 문화유산·자연유산·무형유산 모두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게 되는 것이다.

최 청장은 “오랫동안 손보지 않은 복잡한 틀을 다시 풀어 헤쳐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무형유산, 이 세 가지 틀에 정리해 넣은 것”이라며 “최근 유네스코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유산의 유형적 가치만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유산의 유무형 가치는 물론, 주민 참여 등 사회경제적 가치까지 통합적으로 보존하는 정책으로 변화 중이다. 이 같은 추세에 맞춰 한복, 김치, 전통놀이 등 무형유산과 아름다운 명승, 천연기념물, 전통조경 등 자연유산에 대한 발굴, 조사, 보존 및 활용 정책 기능을 수행할 인력과 조직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슬로건도 바뀐다. 현재 문화재청의 슬로건은 ‘어제를 담아 내일에 전합니다’이고, 국가유산청의 새로운 슬로건은 ‘국민과 함께 누리는 미래가치, 국가유산’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슬로건은 ‘예전의 것을 그대로 받아 물려준다’는 좁은 의미만 갖고 있어요. 손도 못 대게 하고 활용도 못 하게 하고 보존만 하겠다는 게 내포돼 있는 것이지요. 규제로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 국민이 함께 국가유산의 가치를 누리자는 게 미래의 비전입니다.”

국가유산 체제로의 변화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산업과의 연계다. 국가유산 분야에서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 기술 개발, 외국과의 교류를 통해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는 게 최 청장의 설명이다.

“그동안 문화재, 국가유산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국민을 불편하게 하고 규제를 앞세우고요. 이제 국민과 멀어지는 게 아니라 함께 향유하고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유산을 온전히 보호하는 것과 도시 개발은 늘 상충하며 마찰을 빚는다. 서울 풍납토성, 김포 장릉 아파트 등의 현안은 뜨거운 이슈다. 이에 대한 의견을 묻자 최 청장은 ‘선택과 집중’을 이야기했다.

“국가유산을 개발로부터 지켜야 하는 것은 문화재청의 당연한 숙명이지만, 시대에 따라 정책 방향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성장 우선 시대에는 개발로부터의 안전한 보호가 최우선 과제였지만, 지금은 새로운 보존 정책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지요. 문화재청도 이 변화를 정책에 충실히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지켜야 할 국가유산은 확실히 보호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합리적으로 규제를 완화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습니다.”

최근 문화재청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 대한 규제범위를 기존 500m에서 주거·상업·공업 지역에 한해 200m로 완화했다.

그러면서도 최 청장은 이탈리아 로마의 사례를 들며 보존·관리 원칙을 강조했다. “이탈리아 로마를 보면 도로가 울퉁불퉁하고 낡아 살기에 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감수하고 살며 모범적인 문화유산 보호 사례를 보여주고 있지요. 체코 프라하는 아예 신도시를 구도심 오른쪽에 옮겨 지었어요. 불편하지만 과거와 공존해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는 최근 경복궁 담장이 낙서로 훼손된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큰 충격이었고 분노가 치밀었다”며 “작은 낙서 하나도 국가유산 훼손이라는, 국가유산 보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하나의 계기가 됐을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훼손을 계기로 문화재청은 궁·능 내부를 조사해 연필과 펜, 수정액 등을 사용한 낙서 훼손을 확인했다. 기둥과 같은 목재에 글자 등을 새기는 훼손 유형이 가장 많았고 벽체와 벽돌 등에서 그림과 글씨를 확인했다. 이러한 훼손은 계획적이기보다는 문화유산을 소중히 하는 인식 부족이 그 원인이라 생각한다. 인식 개선에 힘을 쏟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스프레이로 단 몇 분 만에 소중한 국가유산이 훼손됐고, 이를 복구하기 위해 매일 수십 명이 열흘 가까이 엄동설한에 고군분투하며 매달렸다.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K-팝, K-드라마가 어디에서 왔을까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닙니다. 우리의 소리에서, 우리의 몸짓과 같은 케이 헤리티지(K-heritage)에서 비롯된 거죠. 국가유산 체제로의 변화는 계승자가 없어 사라질 위기에 처한 무형유산이나 관리할 인력과 자원이 없어 훼손 위기에 놓인 유형유산 등을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하겠다는 겁니다. K-헤리티지를 더 많은 사람이 즐기고 향유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K-컬처의 뿌리이자 원동력인 K-헤리티지를 말입니다.”

“말 많던 광화문 월대·현판 복원… 10년 만에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 작년 국가유산 분야 성과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 선정도

지난 2023년은 국가유산 분야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성과가 다수 이뤄진 한 해였다. 광화문 월대(사진)와 현판을 복원해 공개한 것은 특히 큰 성과다. 최응천 문화재청장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광화문 월대와 현판 복원”이라고 말했다.

“복원이 진행될 땐 여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왜 굳이 복원해 교통 체증을 만드느냐, 고종을 미화하는 정치적인 작업 아니냐 등. 하지만 전 국민이 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제가 없앴던 것을 경복궁 중건 당시 모습에 가장 가깝게 복원했고, 그럼으로써 지금 많은 시민이 좋아하잖아요. 월대를 걸어보고 서수상 앞에서 기념 촬영도 하고요. 국민이 즐기고 누리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합니다. 제 임기 중에 경복궁의 첫 얼굴인 광화문이 지금의 온전한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된 것은 청장으로서도 큰 영광입니다.”

지난해는 가야고분군이 세계유산에 등재된 해이기도 하다. 2013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이후 10년 만인 지난해 9월 등재 결실을 맺었다. 최 청장은 “기나긴 시간 동안 문화재청과 지방자치단체, 등재 추진단, 지역 주민 등이 다 함께 힘을 모아 철저한 조사·연구와 유적 정비 등에 나서 가야고분군의 가치를 되살린 노력의 성과”라며 “주변국과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독특한 체계를 유지하며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증거의 가치를 세계가 인정한 것과, 영남과 호남의 7개 고분군으로 구성된 연속유산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으로도 선정됐다. 1997년과 2005년, 2013년에 이은 네 번째 위원국 진출로, 향후 2027년까지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으로 활동하게 됐다.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역사적으로 민감한 사항인 사도광산이나 군함도 등을 논의하는데, 이때 우리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의 의미가 큽니다. 일본은 현재 위원국인데 2025년도에 임기가 끝나요. 아시아에선 우리나라가 논의를 주도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게 된 셈입니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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