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시대’ 흑거미 이선빈 “망가지는 일? 어렵지 않아요”[스경X인터뷰]

하경헌 기자 2024. 1. 5.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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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시대’에서 박지영 역을 연기한 배우 이선빈. 사진 쿠팡플레이



할리우드에는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한 ‘블랙위도우(Black widow)’가 있다면, 한국에는 ‘흑거미’가 있다. 배우 이선빈은 지난해 11월 공개된 쿠팡플레이의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시대’에서 1989년 충남 부여를 휘어잡던 ‘싸움 짱’ 박지영 역을 연기했다.

무엇보다 화려한 액션 서사가 돋보였던 만큼, 이선빈의 날랜 몸동작이 화제가 됐는데 그는 극히 일부 장면을 제외하면 대역을 쓰지 않았다. 그 덕에 싸움 장면에서 화려한 발차기를 선보이는 이선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은 분명 이선빈이 또 한 번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제가 서울에서는 논현동에서 자랐는데, 펀치 기계를 좋아했어요. 친구들과 펀치를 하면 늘 점수가 높은 편이었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짓궂게 놀리느라고 ‘논현동 피바다’라고 별명을 불러줬는데, ‘흑거미’ 역할을 할 운명이었나 봐요.”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시대’에서 박지영 역을 연기한 배우 이선빈. 사진 쿠팡플레이



‘흑거미’ 지영은 주인공 장병태(임시완)와는 어린 시절부터 단짝이었지만 먼저 아산에서 부여로 이사하는 바람에 헤어졌다. 부여에서도 싸움하고 다니는 일을 극도로 싫어했던 아버지 때문에 학교에서는 조신한 모범생의 모습을 하다가도, 방과 후만 되면 정의를 실현하는 ‘흑거미’로 살았다.

“다채로운 매력이 있는 캐릭터에요. 모든 사람도 한 가지 면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정의와 약자를 위해 싸우는 흑거미인데 조신한 이미지로는 안 되죠. 가족이나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 앞에서는 약간 풀어진 모습도 필요했어요. 한 마디로 우악스러운 지영이의 모습도 있지만, 병태에게는 설레기도 하는 지영이도 있는 거죠.”

충청도 사투리가 관건인 작품이었는데 이선빈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충남 천안에서 나고 자란 ‘모태 충남인’이었다. 그래서 사투리로 표현된 대본을 보고 나서도 “내 아버지, 어머니, 삼촌, 고모가 하는 말 같았다”고 애정을 보인 그였다. 어투뿐 아니라 너무나 익숙한 충청도 사람들의 정서, 그 안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시대’에서 박지영 역을 연기한 배우 이선빈 출연장면. 사진 쿠팡플레이



“작품 안에서 잘 놀 수 있었던 것은 (임)시완 오빠의 존재도 있었어요. 촬영하면서 매번 ‘이런 사람이 있구나’ ‘이렇게 유연함이 있는 선배가 있구나’ 감탄하면서 찍었죠. 사실 지금은 자기 자신, 한 사람만 챙기는 연기는 없는 시대에요. 이런 오빠처럼 유연함이 있는 사람이라면 저도 더 좋은 배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님도 70 정도를 제시하시고, 30은 저희가 채울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천안에서 보내던 학창 시절 이선빈은, 자신의 주장대로라면 ‘평범한’ 학생이었다. 일찍부터 연예인으로 꿈을 정하고 연습생 활동도 했던 그라 공부가 크게 의미가 없었다. 수업도 조퇴하는 일이 잦았다. 물론 학교에서 이를 고깝게 여겼다면 쉽지 않은 생활이었겠지만 모두 흔쾌히 이선빈의 꿈을 응원해줬다. 아직도 그는 친구들과 함께 천안 시절 은사님을 뵙고 오기도 했다.

“체육 선생님들과 많이 친했는데, 당시에는 두발자유가 없어서 겨드랑이 밑으로 내려오는 머리는 잘리기도 했거든요. 다니다가 선생님들께 걸리면 ‘연예인 해야 해요’하면서 도망가는 일도 많았죠.(웃음) 아직도 저를 그런 제자로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귀여워해 주셔서 좋았어요.”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시대’에서 박지영 역을 연기한 배우 이선빈 촬영장면. 사진 쿠팡플레이



2016년 영화 ‘굿바이 싱글’에서 김혜수와 맞서는 단역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초반에는 큰 키(170㎝)와 도회적인 외모로 주로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를 중심으로 하는 이지적인 이미지의 역할을 많이 했다. 하지만 2021년 티빙 오리지널 ‘술꾼도시여자들’을 통해 이미지의 큰 변곡점을 그린다. 극 중 털털한 성격의 방송작가 안소희를 연기하면서 편안하고 개구진, 또 한 편으로는 의리가 넘치는 인물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소희도 전라도 사투리를 걸쭉하게 썼거든요. 성향이나 사투리 캐릭터라는 점은 비슷하지만, 여러모로 달랐어요.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망가지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평소 성향도 소심한 것과는 아예 반대거든요. 보는 분들을 의식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지영이를 담기 위해 망가질 줄도 알고, 표정도 신경 쓰지 않았죠. 그런 부분은 걱정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보여주고 싶어서 주근깨도 찍고, 눈썹도 일부러 관리하지 않았어요.”

그는 그 순간 ‘굿바이 싱글’을 함께 했던 선배 김혜수를 떠올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김혜수와 멱살 다짐까지 할 정도의 어려운 연기였다. 그때 김혜수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손톱까지 깎는 모습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아 종방연 때 선배의 손을 잡고 울기도 했다. 그런 마음으로 그는 이번 ‘소년시대’ 촬영장에서는 선화 역 강혜원을 챙겼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시대’에서 박지영 역을 연기한 배우 이선빈. 사진 쿠팡플레이



“저라는 사람은 ‘온·오프’가 확실해서 연기 안에서는 깊이 빠지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우울한 연기를 하면 실제로 기력도 없어지고요. 그래서 생각했죠. ‘나는 균형을 지키는 사람이구나. 그렇지 않다면 본래의 나를 잊을 수도 있겠다’. 다양한 역할은 때를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언제나 그렇듯, 저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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