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하는 백두와 지질한 병태가 사랑 받는 이유
쿠팡 ‘소년시대’ 임시완
연기력 더해 구수함·설렘 가득
백두와 병태.
1980년대 영화 주인공 같은 두 이름이 요즘 드라마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백두는 지난달 20일 시작한 ‘모래에도 꽃이 핀다’(ENA 수목 밤 9시)에서 태백급(80㎏ 이하) 씨름선수이고, 병태는 지난 22일 마지막회를 공개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쿠팡플레이의 ‘소년시대’에서 별명이 ‘온양 지질이’인 고등학생이다. 백두는 신동에서 별 볼 일 없는 선수가 됐고, 병태는 안 맞고 사는 게 목표다. 두 청춘이 어려움을 딛고 성장하는 과정이 시청자들한테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선사한다. ‘모래에도’ 김진우 피디는 “모래판 위에서 벌이는 고군분투, 청춘들의 도전과 좌절, 극복과 성장이 공감 그 이상의 감동으로 이어지기를 바랐다”고 한다. 둘은 각각 경상도와 충청도 사투리를 쓴다. 자극적인 드라마 사이에서 사람 냄새 나는 구수함과 청춘의 풋풋함으로 사랑받는 백두와 병태 캐릭터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 장동윤의 김백두…체중까지 맞춘 섬세한 표현
장동윤은 계속 먹었다. 대략 한달간 14㎏을 늘려 지난해 6월 드라마 촬영 직전 몸무게가 80㎏을 찍었다. 그는 제작발표회에서 “그저 피자 등을 맛있게 먹었을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숨은 노력이 더 있다. 그의 지인에 따르면 단백질 위주로 평소보다 몇배는 더 먹었고 배는 나와도 씨름선수들이 발달한 등 근육 등은 살려야 해 운동을 꾸준히 했다고 한다. 이토록 섬세하게 살을 찌워 표현하고 싶던 인물이 다름 아닌 ‘모래에도 꽃이 핀다’ 김백두다. 장동윤은 제작발표회에서 “백두의 나이와 신장이 나와 비슷해서 체형까지 잘 만들면 자연스러울 것 같았다”고 했다.
이런 노력으로 탄생한 김백두는 씨름판이 주요 공간인 이 드라마의 사실감을 높이는 일등공신이다. ‘모래에도 꽃이 핀다’는 가상의 씨름도시 거산을 배경으로 거산군청 소속 선수들의 이야기다. 5회 동안 빠짐없이 김백두가 경기하고 훈련하는 모습이 등장했다. 모래판에서 샅바를 잡는 단순 동작부터 기술을 거는 모습까지도 실제 태백급 체형 때문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배우가 씨름 선수인 척, 살이 찐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 비슷한 체형으로 나오니까 김백두라는 선수가 존재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장동윤은 “씨름도 최대한 어설프게 보이지 않게 특색있는 기술을 구현해보려고 노력했다”며 “용인대 체육학과 씨름부 이태현 장사와 촬영 전 두달간 매일 연습했다”고 밝혔다.
김백두는 그 자체로 여러 내용의 드라마를 만들 수 있을 법한 살아 있는 캐릭터다. 천하장사 아버지와 금강장사·한라장사를 형들 사이에서 장사 한번 못 해봤지만 삐뚤어지지 않고 건강하다. 이런 캐릭터를 생생하게 만드는 게 의외로 경상남도 사투리다. 극에서 거산은 경남에 있다. 장동윤은 굵고 낮은 목소리톤을 잘 살려 사투리를 차분하고 또박또박 표현하며 내면의 울림을 담아낸다. “씨름 그만둔다 카니까 아무도 안 말리데 (…) 아 뭐 인제는 뭐 누가 오라 캐도 몬가겠더라고요.” 장동윤은 대구 출신이어서 경상남도 사투리가 더 힘들었다고 한다.
■ 임시완의 장병태…표정에 지질함 한가득
김백두와 반대로 ‘소년시대’ 장병태는 충청도 사투리를 얇고 높은 톤으로 구사하며 지질한 느낌을 더했다. “엄니 나 핵교를 안댕기면 안댜~?” 등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찰지다. 부산 출신인 임시완은 지난달 라운드 인터뷰에서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하려고 “3개월 동안 사투리 선생님과 연습했다”고 했다.
말투부터 지질함 열스푼 넣은 장병태는 그동안 등장한 학원물에서 보기 어려운 캐릭터다. 이 드라마는 1989년 폭력이 난무했던 시절을 배경으로, 안 맞고 사는 게 일생일대 목표인 장병태가 부여농고로 전학오는 과정에서 충남 일대를 사로잡은 짱 ‘아산 백호’ 정경태(이시우)로 오해받으면서 일이 벌어진다. 뻔한 것 같지만 그가 어느덧 짱이 된 순간을 즐기고 또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이들을 돕는 데서 방향이 바뀐다. 장병태가 아산 백호 노릇을 하는 과정에서 코미디 폭탄도 터진다. 머리를 2 대 8로 넘긴 장면에서는 “임시완 은퇴하려는 거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임시완은 “사람들이 이제 나를 보면 웃음을 떠뜨린다”며 웃었다.
장동윤이 체형 변화로 김백두에 한발 더 다가갔다면 임시완은 표정을 제대로 활용한다. 얼굴 전체가 구겨지고 눈빛에서부터 억울함이 한가득 담겨 있다. 아산 백호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 강가에서 눈물 흘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임시완은 “이 드라마를 하면서 저의 새로운 얼굴을 많이 봤다”며 “약자를 응원하려는 마음이 장병태가 사랑받은 이유인 것 같다”고 했다.
두 드라마는 각각 씨름판과 남고가 배경인데, 여성 배역을 잘 활용해 남성 중심 우려를 깼다. ‘모래에도 꽃이 핀다’에서 오유경(이주명)은 거산군청 씨름단 관리팀장이다. 여자여서 씨름을 모를 거라는 선수들의 편견을 업어치기로 시원하게 날린다. ‘소년시대’에서 박지영(이선빈)도 부여 흑거미라는 별명의 여고 짱이다. 장병태를 강하게 만들고 그가 복수할 때 지도한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현장] 기적이 필요한 노토반도…무너진 집 더듬으며 “대답 좀 해봐요”
- 김건희-대장동 ‘쌍특검법’ 정부 이송…윤, 거부권 행사할 듯
- 원희룡이 내팽개친 서울양평고속도로…수사도 사업도 ‘공회전’
- 경찰, 이재명 습격범 ‘쪽지’ 확보…내용은 함구
- [단독] 노동자 과로사 60%가 30명 미만 업체서 발생
- [단독] KBS, 전두환 호칭 ‘씨’→‘전 대통령’ 기자들에 강제 지침
- ‘지인 능욕 사진 파일’에 대법 “음란한 물건 아니다”
- 특목고 떨어진 동탄 중학생 91명…“40㎞ 밖 학교 가야할 판”
- 1.8㎞ 거리 서울역~명동 1시간 ‘감금’…퇴근길 시민들 ‘폭발’
- 총선 앞 SOC예산 65% 상반기 집행…역대 최대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