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이건 사야해!” 결심한 순간, 기억할 것들[책과 삶]
누누 칼러 지음 | 마정현 옮김 | 현암사 | 328쪽 | 1만8800원
수많은 인터넷 쇼핑 사이트, 인스타그램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홈쇼핑을 보다보면 “어머, 이건 사야 해!”라는 메시지가 뇌를 스치는 순간이 있다. 나도 모르게 카드 결제를 했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다. 기분이 안 좋은 날은 안 좋아서, 기분이 좋은 날은 좋아서 산다. 세일해서 사고, 지금이 아니면 사라질 기회 같아서 산다. 대형 마트를 한 바퀴 돌고나면 마음속에 정해놓고 간 목록보다 더 많은 품목이 카트에 담겨 있다. 마트의 카트가 크고 깊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물욕의 세계>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소비’에 관한 여러 질문을 담은 책이다. 오스트리아 저널리스트 출신인 저자 누누 칼러는 2014~2019년 그린피스 소비자 대변인으로 일했고 지금은 강연자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저자는 2012년 한 해 동안 옷이든 전기제품이든 그 무엇이든 새 물건을 전혀 구입하지 않은 경험을 알리면서 유럽에서 유명해졌다.
책은 저자가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참모습을 느끼러 벼룩시장에 가 경험한 일부터 시작한다. 그는 분명, 진열대가 아니라 현지인을 관찰하러 나갔다. 그의 걸음은 ‘나만의 향수’를 만드는 가게 앞에서 멈췄다. 그는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고 표현했다. 저자는 향수 1병도 아니고 3병을 사가지고 나왔다. 이 책은 소비를 둘러싼 주관적인 경험과 객관적인 자료들을 더해 ‘지속 가능한 삶’이라는 가치와 ‘물욕’ 사이에서 헤매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원제는 ‘Kauf mich!’(나를 사줘요!).
책은 시종일관 묻는다. “어떻게 우리는 생존에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소비하게 되었을까.” “좋은 소비란 무엇인가.”
“내가 구입하는게 곧 나”인 세상
날로 커지는 쇼핑 카트·장바구니
1년간 물건 구입 않고 버틴 저자
“무엇을 사야 하나” 익숙한 질문을
“기업은 그렇게 생산해도 되는가”
프레임 전환으로 던지는 메시지
저자는 물건을 사는 이유를 뇌과학, 진화생물학, 심리학 등을 들어가며 설명한다. 물건을 구매할 때 뇌 속의 ‘간질간질하고 짜릿한 느낌’은 도파민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 물건을 빌린다고 기분이 좋아지진 않는다. 쇼핑은 자존감을 높아지게 하기도 하고, 부유한 사람들과 똑같은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사회적 만족감을 주기도 한다. 또는 나만 제외되지 않기 위해, 소속감을 위해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구입하는 것이 곧 나”가 되어버렸다.
저자는 기업들의 갖은 마케팅을 조목조목 짚는다. 쇼핑 카트와 장바구니 크기는 몇년 사이에 커졌고, 이제 마트에서 빵도 직접 굽는다. 냄새로 소비자를 자극하기 위해서다. 슈퍼마켓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제품은 서로 멀리 떨어뜨려놓는다. 소비자들이 온 매장을 가로질러 한 번이라도 더 많은 상품을 마주하기 위해서다. 이케아 매장은 한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되어 있다. 소비자가 익히 다 아는 상술이지만 막상 그 안에 들어가면 어느샌가 무언가 사고 있다. “수요가 공급을 결정짓는 시스템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공급이 공급을 결정한다.” 여기에 인터넷 쇼핑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물리적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되니 쇼핑은 더 쉬워졌다.
저자는 소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전 세계적인 ‘아이러니’도 함께 꼬집는다. 2019년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며 정리 유행을 일으킨 곤도 마리에는 보관상자, 주방용품 등을 파는 온라인숍을 열었다. 화장을 하지 않는 듯한 화장법을 알려주며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한 유튜브 영상에 등장하는 화장품을 사다보면 171달러가 든다. “과잉 공급은 결코 좋은 소비가 될 수 없다.”
저자는 자신도 한때 쇼핑중독이었다는 고백과 함께 싼 옷을 양산하는 패스트 패션 업계를 강하게 비판한다. 섬유산업은 기후에 최악의 영향을 끼치는 주범 중 두번째라고 지적하면서 이들의 위선을 꼬집는다. ‘환경을 생각한다’는 한 패스트 패션 매장을 찾은 저자는 충격을 받았던 일화를 전한다. 매장 한구석에 지속 가능성을 생각한다는 의미의 ‘컨셔스(conscious)’ 코너가 있었다. 찢어진 옷을 수선해주고 미세플라스틱 섬유 조각을 걸러주는 세탁망도 진열된 공간이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본 순간, 100% 폴리에스테르로 된, 재활용도 되지 않는 블라우스가 족히 100개는 넘게 빽빽이 걸려 있었다.
환경보호에 앞장선다지만 결국 기업의 본질은 변한 게 없다는 것이 저자의 비판 지점이다. 이른바 ‘그린 워싱’. 예를 들어 루이비통은 비닐이 들어간 합성면을 제품에 사용한다. 비닐은 연화제투성이고 재활용이 안 된다. 그 재료를 그대로 사용하는 루이비통은 2011년 파리에서 꿀벌 구조하기 운동에 뛰어들었다. 근사하게 ‘그린’ 이미지를 심었지만 그들의 핵심 사업과는 무관했다. 저자는 10년 전 삼성이 환경에 매우 위험한 브롬계 난연제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작은 글씨로 ‘주력제품’인 TV는 제외한다고 써놓은 부분을 꼬집기도 했다. 저자는 기업들이 환경보호를 홍보하면서 제품을 더 친환경적으로 만드는 데는 힘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성토한다. “생산자는 변할 필요가 없지만 소비자는 여전히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는 게 현실이다. 저자는 “우리는 무엇을 사야 하는가가 아니라 기업은 왜 그렇게 생산해도 좋은가”라고 묻는다.
물론 소비를 줄이는 건 중요하다. 저자는 캐나다 일러스트레이터 사라 라자로비치의 ‘욕구의 구매단계’를 인용한다. ‘①사용하기 ②빌리기 ③교환하기 ④중고 사기 ⑤스스로 만들기 ⑥구매하기’. 저자는 구매하기에 앞서 ‘정말 필요한지 생각하기’를 추가한다.
저자는 이어 질문의 방향을 바꾼다. 그는 텀블러를 들고 다니다 딱 하루 종이컵을 사용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이야기한다. 물욕을 부추기는 이 세계에서 더 중요한 것은 기업에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는 것. 우리는 소비자이자 시민이다. 저자는 “정치·경제·사회적 방법을 총동원해 사용할 제품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공정한 대우를 받고, 그 제품이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제조되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익숙한 메시지를 담은 책이지만 다양한 사례와 풍부한 인용으로 소비를 둘러싼 생각을 다시금 일깨운다. 무엇보다 저자의 진정성 있는 외침은 울림이 크다. “기업들은 법적인 처벌은 고사하고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계속 인권을 유린하고 환경을 파괴할 수 있는데 왜 나는 세계의 정의와 건강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갑 속에 넣어둬야 할까.”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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