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양도세 완화로 “주식시장 활성화” 근거 없다
[왜냐면] 김현동
배재대 교수(조세법)
우리나라에서 20억원을 벌어도 그 소득에 세금으로 단 1원도 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주식시장에서 매매로 번 돈이다. 어디까지 세금을 안 낼까? 얼마를 벌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2023년까지 적용한 세법을 보면, 주식을 매도한 해의 직전 연도 말 기준으로 한 종목의 보유 비율이 1% 이상(유가증권시장 기준)이거나 보유총액이 10억원 이상이 아니라면, 얼마를 벌었건 세금은 전혀 없다.
이 글을 읽는 이들 가운데 한 종목에 10억원 이상의 주식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국예탁결제원 자료를 보면, 2020년 12월말 결산 기준으로 한 종목당 10억원 이상 소유한 개인은 4만3800명이다. 이는 전체 개인 소유자 913만3800명의 0.48%에 해당한다. 10억원 이상 구간의 1인당 평균 보유금액은 74억원6119만원이다. 요약하면 주식양도로 과세 대상이 되는 비율은 100명 중 0.48명꼴로, 평균적으로 1개 종목에 74억원을 가진 개인이다. 이렇듯 주식양도세를 부담하는 경우는 지극히 제한적이고 예외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2024년부터 종목당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더 올리는 개악을 단행했다. 가뜩이나 주식양도세를 내는 사람이 드문 판에 과세 기준을 더 완화한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이번 주식양도세 개정에 ‘공정하지 않다’는 거센 비판이 일리라. 그런데 원래부터 주식양도세를 부담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개미’(소액주주)들까지도 이번 개정에 큰 지지를 보낸다. ‘큰손’들에 주식양도세를 매기지 않거나 줄여주면 주가에 긍정적 효과를 낳고 이는 개미들에게도 이익이라고 여기는 까닭에서다. 윤 정부가 노리는 대목이 정확히 이 부분이다. 겉으로는 주식시장 활성화를 내세우지만, 내심은 1424만명(2022년말 기준)에 달하는 개인투자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총선용 이벤트 카드다.
주식양도세가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의 고갱이는 양도세 부과기준에 걸리지 않도록 큰손들이 연말에 ‘매물 폭탄’을 던진다는 것이다. 일단 통계는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2022년 12월 한달(최종 2영업일은 제외) 동안 개인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각각 1조2431억원, 9997억원을 순매도했다. 특히 과세 기준 종료일(12월27일)과 그 직전일 이틀간 집중적으로 매도물량(유가증권시장 1조7472억원, 코스닥 7553억원)이 몰렸다. 그런데 통념상 주식의 본질적 가치에 변화가 없고 오로지 양도세 회피를 위해서 팔았다면, 다시 매수해야 하지 않을까? 통계는 이 통념을 지지한다. 2022년 과세 기준 종료일 익일부터 그 다음날까지 이틀간 개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7483억원, 코스닥시장에서 7924억원 만큼 순매수했다. 쏟아낸 주식을 다시 싹 주워 담은 것이다. 다른 연도를 분석해봐도 이런 패턴은 같다.
시장지수로 보자면 2022년 12월1일 코스피가 2479.84였고 과세 기준 종료일에 2332.79로 다소 하락했다. 코스닥도 740.6에서 704.19로 살짝 하락했다. 그러나 2021년은 12월1일 2899.72, 과세 기준 종료일 3020.24로 오히려 상승했다. 코스닥도 마찬가지로 상승했다. 2020년과 2019년 역시 같은 패턴이다. 정리하면, 주식양도세가 큰손의 투자에 미치는 영향은 없고 주가지수에 미치는 영향도 마찬가지다. 이 말은 정부가 내세우는 주식시장 활성화도 근거가 없다는 뜻이 된다. 이미 주요 선진국들은 우리나라가 2025년부터 시행하려다 윤석열 대통령이 폐지 방침을 밝힌 금융투자소득세처럼 보유 비율이나 총액 구분 없이 모든 주식양도 차익에 세금을 물리고 있다. 정부 논리대로라면 다른 나라는 주식시장에 찬물을 끼얹으려고 저러는 걸까?
그간 여당인 국민의힘이 주류경제학계에서조차 회의적으로 보는 감세의 ‘낙수효과’를 추앙해온 것처럼, 정부도 똑같이 주식양도세를 미신적 사고로 대한다. 미신에서 벗어나기는 참 어렵다. 역대 최악의 세수 결손이 일어난 비상 상황에서 거꾸로 세금을 줄이고, 조세 평등을 크게 훼손해도 저렇게 아랑곳하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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