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테러 당한 이란 “보복”…중동 확전 기로에

정의길 기자 2024. 1. 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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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레이마니 추모식서 84명 희생
이란 대통령 “비싼 대가 치를 것”
미국 “이스라엘 개입 증거 못찾아”
3일(현지시각)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IRGC) 쿠드스군 사령관 4주기 추모식이 열리던 이란 케르만시 ‘순교자 묘역’에서 발생한 폭발로 최소 84명이 숨진 사건 현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창문이 부서진 자동차와 구급차가 보인다. 케르만/AFP 연합뉴스

3일(현지시각) 오후 3시, 1979년 이슬람혁명이 성공한 뒤 이란에서 발생한 가장 끔찍한 테러에 전세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 이란 중부 케르만시의 ‘순교자 묘역’에서 열린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의 정예 부대인 쿠드스군 사령관이었던 가셈 솔레이마니의 4주기 추모식에서 15~20분 정도의 시차를 두고 두발의 폭탄이 터져 무려 84명이 숨졌다. 에이피(AP) 통신은 4일 “시차를 두고 두번째 폭탄을 터뜨리는 것은 첫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응급 요원들을 노려 피해를 키우기 위해 무장세력들이 자주 써먹는 수법”이라고 지적했다. 이란을 자극하는 이 공격으로 가자지구 내에서만 진행돼온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이 중동 전체로 확대될지 모르는 결정적인 기로에 서게 됐다. 

이란은 강한 분노를 쏟아내며 보복을 다짐했다. 이란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솔레이마니를 2020년 1월3일 미국의 공격으로 잃은 데 이어, 추모식에서도 큰 모욕을 당했기 때문이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이날 성명을 내어 “이란의 사악하고 범죄적인 적들이 다시 한번 비극을 일으켜 많은 사람이 순교했다”며 “가해자들은 분명히 정의로운 처벌의 대상이 될 것이고, 강력한 대가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의 경고는 좀 더 분명했다.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직접 언급해 가며 “범죄적인 미국과 시오니스트 정권에 당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매우 비싼 대가를 치르고, 후회할 것임을 말한다”고 선언했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확전을 막으려 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사태 진화에 나섰다. 존 커비 미 백악관 전략소통조정관과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3일 각각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폭발로 희생된 이란인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이스라엘이 이번 사건에 개입됐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바이든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한발 더 나아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이번 공격이 이슬람국가(IS)가 과거에 실행했던 종류의 “테러 공격”으로 보인다는 추정을 내놓기도 했다. 미국은 개전 이후 다섯번째로 4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중동에 파견했다.

확전의 키를 쥔 것은 이란이다. 미국의 한 관리는 뉴욕타임스에 이란은 누구의 소행이든 이 사태에 대해 미국과 이스라엘에 책임을 묻는 입장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상대로 직접 군사행동에 나설지는 불투명하다. 국경을 맞대지 않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취할 군사적 조처가 마땅치 않은데다 지난해 10월 가자전쟁이 시작된 뒤 미국의 항모전단이 중동에 바싹 배치돼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면, 역대 최악의 극우 정권을 이끌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게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석달 동안 가자지구에서 2만명 넘는 이들을 숨지게 한 잔혹한 군사작전으로 국제적으로 고립돼 있고, 국내적으로는 강한 사임 압박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의 선제공격을 받게 되면, 휴전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압력이 줄고 정권 유지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다.

실제 이스라엘은 최근 들어 노골적으로 확전을 꾀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달 25일엔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이 지역에서 활동하던 세예드 라지 무사비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 장성을 죽였고, 2일엔 헤즈볼라의 거점인 베이루트 부근에서 살리흐 아루리 하마스 정치국 부국장을 살해했다. 나아가 지난달 31일 가자지구에서 5개 여단 병력을 철수하는 등 레바논에서 제2전선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자전쟁이 확전될까’라는 질문은 ‘이란이 이스라엘의 미끼를 물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대체될 수 있다.

결국, 이란이 보복한다 해도 레바논의 무장정파인 헤즈볼라나 예멘의 후티 반군 등을 내세우는 간접 대응을 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하산 나스랄라 헤즈볼라 최고지도자는 3일 아루리 부국장 암살에 대해 “침묵할 수 없다”며 “이스라엘이 레바논으로 확전을 선택한다면 끝장내는 싸움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중동에선 전쟁을 지속하려는 이스라엘의 공세가 이어지고, 친이란 무장세력이 이에 대응하며 충돌이 확대될 수 있다. 하지만, 이란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한 가자전쟁이 이란과 이스라엘의 전면 대결로까진 치닫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란은 확전의 문턱에서 머뭇거릴 것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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