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노량'의 북소리, 새해의 북소리
지난 12월 29일, 직원들과 함께 영화 '노량'을 관람했다. 2023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종무식을 겸한 자리였다. 명량과 한산에 이어 '이순신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만큼 영화는 장중했다. 7년 동안 계속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마지막 해전답게 영화 속 노량해전은 처절했다. 100분 가까이 이어지는 해상전투 장면을 숨죽이며 지켜봤다. 2시간 30여 분의 상영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이 숨을 거두는 장면은 이미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다뤘지만, 볼 때마다 가슴 뭉클하다. 눈을 감으며 남긴 장군의 마지막 말은 들을 때마다 비장하다. "싸움이 급하다.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
영화 노량을 보며 역사와 리더십을 생각했다.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당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3국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고 엇갈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서둘러 전쟁을 끝내고 철군하려는 일본, 어차피 끝나가는 남의 땅 전쟁에서 불필요한 희생을 줄이고 실리를 도모하려는 명나라, 한양을 버리고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피난하면서 추락한 왕과 조정의 위신을 살려야 하는 조선. 이 복잡한 셈법의 한복판에서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에 임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적들을 살려 보내서는 올바로 이 전쟁을 끝낼 수 없다."
그가 지키고자 한 것은 대의(大義)였다. 의를 세워야 온전히 국가와 국토를 지킬 수 있다고 장군은 굳게 믿었다. 앞선 명량해전에서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에 맞서 대승을 거둔 리더십도 이러한 신념에서 비롯되었다고 필자는 믿는다. 이순신 장군은 문서의 끝에 남기는 자신의 서명에 '일심(一心)'이라는 두 글자를 사용했다. 글자 그대로 한결같은 마음, 하나의 마음을 뜻한다. 장군이 이 단어를 자신의 서명으로 사용했던 이유는 "오직 한마음으로 나라와 백성에게 충성을 다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게 후세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해석이다. 그가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대의가 진정 무엇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24년 새해가 시작됐다. 비상하는 청룡처럼 우리 사회가 힘차게 도약하길 바란다는 소망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안팎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글로벌 경제 상황과 국제정세의 급변은 국내에도 지속적인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기술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지정학적 충돌 위험도 여전하다. 여기에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3고(高) 현상으로 대변되는 경기침체와 저성장의 기조가 장기화하고 있다. 서민들의 근심은 깊어지는데 밝은 소식은 갈수록 찾기 어렵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2024년 세계경제 전망 보고서를 통해 이런 키워드로 새해 전망을 요약했다. '당겨쓴 여력, 압박받는 성장.'
그래도 희망은 있다. 우리에게는 위기 때마다 힘을 합쳐 난관을 헤쳐온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 목표가 정해지고 한마음 한뜻으로 달려가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승리의 함성이, 2016년 불의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들었던 촛불이, 코로나19 팬데믹을 수준 높은 시민의식과 연대의 힘으로 물리쳤던 재난 극복의 경험이 그 증거다. 유성구가 새해 구정운영 방향을 담은 사자성어로 '중심성성(衆心成城)'을 선정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여러 사람의 마음이 성을 이룬다는 뜻으로, 모두의 마음을 모아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미래 선도도시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영화가 끝나도 북소리는 오랫동안 귓가에 맴돈다. 영화관 밖을 나서도 여전히 심장이 울린다. 영화 '노량'에서 이순신 장군이 울렸던 북소리는 전투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말라는 독려였다. 힘을 하나로 합쳐 당면한 위기를 헤쳐 나가자는 외침이었다. 동시에 불의에 무릎 꿇지 않고 마침내 대의를 바로 세우고야 말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2024년 새해에도 그런 북소리가 필요하다. 유성구와 대전시를 넘어 대한민국 전체가 더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 힘찬 전진의 북소리를 울리자. 우리 모두가 그 북을 두드리는 고수(鼓手)가 되자. 정용래 대전 유성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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