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무관 크리스토퍼 놀런 이번엔 받을까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그가 새 영화를 내놓기만하면 전 세계 영화계가 들썩인다. 그의 작품을 보는 건 이제 세계 영화계 큰 이벤트 중 하나일 정도다. 그와 그의 영화 모두 강력한 팬덤을 갖고 있다. 흥행에 성공할 뿐만 아니라 완성도 면에서도 대체로 최상급 평가를 받는다. 그가 야심가이고 실력자이며 천재라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처럼 더 화려할 수 없는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지만, 그에게 전혀 없는 게 하나 있다. 상복이다. 그는 미국 아카데미에서 작품·감독·각본상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골든글로브에서도 이 3개 부문 수상 경력이 없다.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마찬가지다. 크리스토퍼 놀런(Christopher Nolan·54), 말하자면 그는 무관의 제왕이다.
◇또 한 번 도전하는 무관의 제왕
올해도 시상식의 시간이 돌아왔다. 오는 7일(현지 시각) 골든글로브를 시작으로 3월에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까지 온갖 종류 영화 관련 행사가 줄줄이 이어진다. 놀런 감독은 '오펜하이머'로 감독이 받을 수 있는 주요 3개 부문인 작품·감독·각본상에서 생애 첫 수상에 도전한다. 일단 '오펜하이머'는 골든글로브에서 작품·감독·각본 포함 7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박스오피스 부문 제외). 골든글로브는 오스카 향방을 가늠해볼 수 있는 시상식. 만약 골든글로브에서 상을 받는다면 오스카를 손에 넣을 확률도 올라간다. 놀런 감독이 이번엔 상을 받을 수 있을까.
◇'다크나이트'로도 작품·감독·각본 후보 못 올라
놀런 감독은 '오펜하이머'까지 모두 12편의 장편영화를 내놨다. '메멘토'(2001) '다크 나이트' 3부작(2005·2008·2012) '인셉션'(2010) '인터스텔라'(2014) '덩케르크'(2017) '테넷'(2020) 등 하나 같이 강렬한 작품들이지만, 그는 시상식에서만큼은 철저히 외면 받았다.
일례로 미국 아카데미에서 작품 부문 후보에 오른 건 '인셉션'과 '덩케르크' 두 차례, 감독 부문 후보에 오른 건 '덩케르크' 한 번이었다. 각본 부문에선 '메멘토'와 '인셉션' 두 번이 전부였다. 수상한 적이 없다는 건 그렇다 쳐도 후보 지명 횟수 역시 놀런의 이름값이 무색하다. 놀런 영화 중 가장 열렬한 지지를 받은 '다크 나이트' 3부작 중 '다크 나이트'(2008)는 작품·감독·각본 부문 후보에 오르지도 못했고 남우조연(히스 레저)과 음향편집 부문 상을 받는 것에 그쳤다. '인셉션' '인터스텔라' '테넷' 등도 이들 작품이 보여준 파급력에 비하면 정작 시상식에선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그렇다면 '오펜하이머'는?
놀런 감독이 지난해 여름 선보인 '오펜하이머'는 무관 설움을 날려줄지도 모른다. 각본과 연출 모든 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줬다는 데 이견이 없고, 흥행에도 성공했으며, 연기도 빼어났다. 영미권 영화계가 좋아할 만한 소재와 캐릭터를 다루고 있기도 하다.
우선 완성도. '오펜하이머'를 평가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이 작품이 최고 수준 영화라는 데는 관객과 평단 모두 동의한다. 미국 평론 사이트인 메타크리틱에서 '오펜하이머'는 89점, 영화데이터베이스 사이트 IMDB 관객 평가는 8.4점, 대중적인 평점 사이트인 로튼토마토에선 93%를 기록 중이다. 만장일치에 가까운 높은 평가다. 주요 3개 부문 상을 받으려면 작품성이 전제 돼야 한다는 조건을 일단 만족했다고 할 수 있다.
◇완성도 OK 흥행 OK
다음은 흥행. '오펜하이머'는 전 세계에서 매출액 약 9억52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바비'(14억4200만 달러)와 '슈퍼 마리오 브러더스'(13억6200만 달러)에 이은 지난해 3위 기록이었다. 놀런 감독 영화 중엔 '다크 나이트 라이즈'(11억1400만 달러) '다크 나이트'(10억3000만 달러)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치이기도 하다.
물론 트로피와 흥행 성적은 큰 관련이 없다. 지난해 오스카에서 작품상 등 7관왕에 오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전 세계 매출액이 1억43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렇긴 해도 완성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동시에 흥행에도 크게 성공하는 사례가 많지 않기에 충분히 의미 있는 숫자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오펜하이머'는 일단 완성도와 흥행 모든 면에서 딱히 흡잡을 데가 없다.
◇빠지는 게 없긴 한데…
주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오펜하이머'의 트로피 수집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지난해 공개 직후 킬리언 머피가 남우주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남우조연, 에밀리 블런트가 여우조연 부문에 이름을 올릴 거라는 전망이 나왔고, 이중 킬리언 머피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지금도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로 언급되고 있다. 연기 부문과 작품·감독·각본 부문이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투표권을 가진 이들에게 '오펜하이머'가 더 자주 거론될 거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밖에도 영미권 영화계가 2차 세계 대전이 소재인 작품을 유독 좋아한다는 점, 남성 캐릭터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아낸 이야기를 꾸준히 지지해왔다는 점도 '오펜하이머'에 긍정적인 부분이다.
◇그런데 경쟁작이 너무 세다
이렇게만 보면 '오펜하이머'의 수상이 유력해보이지만, 이번에도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오펜하이머'만큼 빼어난 작품이 대거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가장 강력한 경쟁작은 배우 유태오와 그레타 리가 주연한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 한국계 셀린 송 감독이 만든 이 작품은 지난해 나온 영화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셀린 송 감독은 '넘버3' 송능한 감독 딸이다). 인디와이어·롤링스톤·엠파이어·할리우드리포터 등 해외 주요 연예 매체가 2023년 최고작으로 이 작품을 꼽았을 정도다. '기생충' '노매드랜드' '코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수상 사례에서 보듯 최근 미국 영화 시상식이 백인 남성 중심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있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가여운 것들'(Poor Things)도 '오펜하이머' 수상을 낙관할 수 없게 한다. '더 랍스터' '킬링 디어' '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 등을 만든 란티모스 감독은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지만 알 만한 관객은 다 아는 연출가이자 작가다. 지난 12월 초에 공개된 신작 '가여운 것들'은 란티모스 감독 최고작으로 꼽힌다. 각본과 연출 모두에서 빼어나고 엠마 스톤, 마크 러팔로, 윌럼 더포 등 연기도 흠잡을 데 없다는 게 공통된 평가다.
이밖에도 작년 최고 흥행작인 그레타 거윅 감독의 '바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플라워 킬링 문' 등도 '오펜하이머'와 놀런 감독을 막아설 가능성이 있는 작품들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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