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KCGI… 회장 물러난 현대엘리엔 “미흡”, 주식 사 준 DB하이텍엔 “환영”

정민하 기자 2024. 1. 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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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만에 18% 차익 보며 DB하이텍과 싸움 종결
떠나며 DB측 긍정 평가... “지배구조 그대로인데, 주식 사줬다고 호평?”
현정은 물러난 현대엘리엔 “첫 단추 끼웠으나 아쉽다” 상반된 모습
강성부 KCGI 대표. /뉴스1

행동주의 펀드 KCGI가 DB하이텍 지분을 처분하면서 “거버넌스 개선의 모범 사례”라고 DB 측을 높이 평가한 것에 대해 증권업계 일각에서 생뚱맞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지배구조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는데 주식을 되사줬다는 이유로 긍정 평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 KCGI는 DB 측이 되사주는 것 말고는 마땅한 퇴로가 없었다. 소액주주들은 지배구조가 개선됐다는 명분으로 KCGI 혼자만 빠져나갔다고 반발한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정반대 사례다. 마찬가지로 KCGI의 공격을 받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는 현정은 회장이 퇴진했음에도 KCGI로부터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DB하이텍 경영혁신 계획 발표 및 지분 매각 관련 KCGI의 입장글. /웹사이트 캡처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른바 ‘강성부 펀드’로 불리는 KCGI는 최근 DB하이텍에 대한 행동주의 캠페인을 종료했다. DB하이텍이 대주주 지분 확대와 함께 지배구조 개선, 주주친화 전략 강화를 골자로 하는 경영 혁신 계획을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지난해 3월 지분 매입을 공시하며 시작한 경영권 분쟁이 9개월 만에 마무리됐다.

KCGI는 “주요 주주의 요구사항에 변화로 화답해 준 DB하이텍 이사회와 경영진의 전향적인 결정을 환영한다”며 “소모적인 경쟁과 대립이 아니라 일반주주와 이사회, 경영진 간 상호 대화를 통한 우호적인 거버넌스 개선의 모범 사례로 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소액 주주는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당초 KCGI가 주주서한을 통해 지적했던 것과 비교하면 DB하이텍 지배구조가 크게 달라지진 않았음에도 ‘엑시트(투자금 회수)’에 성공하면서 성과를 자축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KCGI가 등판할 때만 해도 과거 한진칼 사례처럼 지배구조 개선과 더불어 주가 부양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이들은 그만큼 큰 배신감을 느끼는 분위기다.

KCGI는 지난해 6월 DB하이텍의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을 담은 주주서한을 공개했다. 독립적인 이사회 구성, 내부통제 강화 통한 경영 투명성 및 경영 효율성 제고, 주주권익 증진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이에 DB하이텍은 지난달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친화정책 강화를 골자로 하는 경영혁신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사회 다양성 확보를 통한 감시와 견제 방안 등은 빠져 있었다.

특히 KCGI가 주가 저평가 원인으로 꼽았던 오너가(家)의 사적이익 추구와 관련해서는 양측 모두 일절 언급이 없었다. KCGI는 앞서 모회사의 지주회사 전환 회피와 물적분할 후 이중 상장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김남호 회장과 김준기 창업회장이 각각 37억원·31억원의 과도한 보수를 받아갔고, 거액의 기부금을 김 창업회장이 소유한 김준기문화재단에 지급했단 점을 강도 높게 지적했었다.

KCGI가 제기한 2개의 가처분 소송도 지난달 양측이 지분 거래에 합의하면서 끝을 맺었다.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인 KCGI가 법원에 신청 취하서를 제출하면서다. DB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는 DB Inc.는 지난달 28일 KCGI의 투자목적회사 캐로피홀딩스가 보유한 DB하이텍 지분을 당시 종가(5만8600원)보다 12%가량 높은 6만6000원에 매수해 줬다.

2023년 11월 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CGI자산운용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명재엽 KCGI자산운용 주식운용팀장(왼쪽)과 정연대 KCGI자산운용 실장이 발언하고 있다. /소가윤 기자

이같은 모습은 또 다른 타깃인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한 행보와 대조된다. KCGI가 메리츠자산운용을 인수하며 사명을 바꾼 KCGI자산운용은 주주 행동주의를 선언하며 현대엘리베이터를 첫 타깃으로 꼽았다. 그리고 지난해 8월 현대엘리베이터에 현정은 회장과 이사회 분리를 통한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 등을 골자로 한 주주 서한을 보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이에 화답했다. 향후 당기순이익의 50% 이상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 최저배당제 시행 등 주주들에게 안정적인 배당을 이어간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이들의 요구대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등기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에서 내려오기까지 했다. 그러나 KCGI자산운용은 “이사회 정상화의 첫 단추”라면서도 주주환원 계획 등이 여전히 아쉽고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갈등의 불씨를 키운 것은 사실이다. 기습적으로 임시주총 개최 공시를 낸 데 이어 감사위원 선임 안건을 깜짝 공개해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제안할 통로를 차단했다. 하지만 어쨌든 오너 일가의 퇴진은 분명한 지배구조 개선 요인이고, 행동주의펀드라면 이에 의미 부여를 더 해줬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행동주의 펀드 또한 수익을 추구하는 사모펀드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는 분석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KCGI는 행동주의를 표방하지만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이기도 해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거둬야 펀드 내부수익률(IRR)을 높일 수 있다”면서 “다만 DB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예전만큼 소액주주가 KCGI를 믿고 지지할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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