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이 아닌 생추어리가 필요한 까닭 [사람IN]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돌봄은 종합운동이다.
세 사람이 호흡을 맞춰 곰을 한 마리씩 옆 칸으로 옮기고 밤새 쌓인 똥을 삽으로 퍼내며 물청소를 했다.
SNS에 곰 영상을 올릴 때 "'귀엽다' '춤춘다' '재롱을 부린다'처럼 사람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동물을 표현하지 않는다. 동물을 의인화, 대상화하는 것은 결국 야생동물과 인간에게 필요한 적절한 거리를 이해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김민재)"이다.
'언제나 사람을 좋아하는 무해하고 귀여운 야생동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돌봄은 종합운동이다. 온몸의 근육을 이용해 썰고, 들고, 끌고, 당긴다. 2023년 12월15일, 강원도 화천 산골에 내려앉은 운무 사이로 차갑고 굵은 비가 내렸다. 2021년에 문을 연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의 조아라 활동가(28)가 곰 13마리가 먹을 고구마, 사과, 당근 등을 썰어 바구니에 부었다. 과일을 가득 담은 식사 바구니가 수레에 차례로 쌓였다. 김민재(29)·강지윤(28) 활동가가 수레를 끌고 오르막길을 올라가 곰들의 보금자리 앞에 세웠다.
식사를 나눠주기 전에 먼저 곰이 있는 방을 깨끗이 치워야 한다. 세 사람이 호흡을 맞춰 곰을 한 마리씩 옆 칸으로 옮기고 밤새 쌓인 똥을 삽으로 퍼내며 물청소를 했다. 그런 다음에는 각 방에 있는 해먹, 타이어 등으로 만든 장난감에 먹을 것을 숨겨둔다. 야생의 본능을 되살리는 방법이다. 다시 원래 방으로 곰을 유인해 옮기고 옆 칸으로 넘어간다. 이렇게 13회를 반복한다. 아침 8시에 시작한 일이 오전 11시가 넘어서 끝났다. 오후에는 곰 합사 훈련과 100평(330㎡) 규모의 방사장에서 산책이 이어진다.
야생에서 사는 곰은 하루 종일 먹을거리를 찾아다니며 자극을 받는다. 반면 웅담 채취용 사육 곰들은 한 평(3.3.㎡)짜리 방에 갇혀 하루 한 번 음식물 쓰레기나 개 사료를 받아먹는다. 갇힌 곰은 한자리를 빙글빙글 돌거나 철창에 머리를 찧는 정형행동을 한다. 엉덩이 살이 다 보이게 털이 빠지기도 하고, 스트레스로 공격성이 강해져 옆 칸의 어린 곰을 죽이기도 한다.
‘야생’과 ‘한 평 철창’ 사이에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가 있다. 이곳은 야생과 인간 사회의 중간 보호구역인 셈이다. 웅담 판매처가 사라진 2023년 대한민국에서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어’ 철창에 가둬둔 사육 곰이 300여 마리에 이른다. 이런 곰을 더 많이 구조해 안전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생추어리(평생 머물 수 있는 안식처)를 건립하는 게 이 단체의 목표다.
생추어리 건립까지 갈 길은 멀다. 돈도, 인지도도 부족하다. 하지만 동물원처럼 곰을 ‘홍보’하진 않는다. SNS에 곰 영상을 올릴 때 "‘귀엽다’ ‘춤춘다’ ‘재롱을 부린다’처럼 사람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동물을 표현하지 않는다. 동물을 의인화, 대상화하는 것은 결국 야생동물과 인간에게 필요한 적절한 거리를 이해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김민재)”이다. ‘언제나 사람을 좋아하는 무해하고 귀여운 야생동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아라씨는 “곰 돌보는 일을 한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이 '푸바오처럼 한 공간에 있는 거야? 나도 곰돌이 보러 가도 돼?'라고 묻는다”라며 난감하게 웃었다.
곰이 '곰답게' 사는 것은 왜 중요한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막 한국에서 싹튼 생추어리 운동은 인간이 만든 비극을 본래 상태로 되돌리는 일에서 시작된다. 강지윤 활동가는 “아직도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사육 곰들이 있다는 것을, 이들을 구조하고 돌보기 위해 노력하는 활동들이 있다는 사실을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한다. 활동가들은 다시 우비를 챙겨 입었다.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을 앞장서서 하고 있는 이들이 곰들 곁으로 다가갔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의 소식은 인스타그램(@project_moonbear)에서 만날 수 있다.
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