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2023년 위기, 그리고 2024년 위기
"산을 넘었더니 태산이 앞을 막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2023년이 가고 2024년이 밝았다. 희망차게 한해를 시작하고 싶지만 맡고 있는 건설부동산 분야는 여전히 시계가 좋지 않다. 지난해 말 PF(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로 시공능력평가 16위의 중 건설사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것을 계기로 미뤄졌던 건설업계의 부실 위험이 현실화한 탓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작년 9월 말 기준 PF 대출잔액은 134조3000억원에 달한다. 워크아웃을 신청한 태영건설에 노출된 PF만 4조원이 넘는다. 쉬쉬해오던 PF 시장에 태영 사태로 위기가 닥치자 중소형 건설사는 물론 대형사들의 자금 상황도 좋지 않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들려온다. 구체적으로 태영건설의 다음 타자는 누가 될 것이란 이름도 나온다.
이미 건설사들 사이엔 '비상경영', '인력축소', '구조조정' 등과 같은 얘기들이 공공연하게 흘러나온다. 사업성이나 부실 위험이 높은 사업장을 재점검해 위험을 줄이는 비상경영에 돌입한 것이다. 어려워진 국내 대신 해외 수주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사실 이번 위기는 부동산 경기가 호황이던 시절 건설사들이 앞다퉈 자금을 빌려 방만하게 사업장을 운영해오던 것이 부동산 경기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 금융사들도 사업성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묻지마식으로 투자한 책임이 크다.
위기 조짐은 이미 지난 2022년 말 레고사태로 나타났다. 당시 정부는 부동산 금융 시장 전반 부실을 막기 위해 총력 지원에 돌입했다. 시간이 지날 경우 부동산 경기가 반등해 부실 확산을 막아줄 것이란 기대감도 저변에 깔려 있었다. 정부는 식어가는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해 가계부채 확대를 감수하면서까지 특례보금자리론 대출과 각종 규제 완화 등에 나섰다.
하지만 인위적 부양만으로 경기는 쉽게 살아나지 않았다. 추석 이후 부동산 경기가 재차 위축되면서 PF 부실 위기가 증폭됐고 태영건설 사태가 결국 발생했다.
이번 위기와 관련, 근본적으로는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야 사업성도 살아나고 건설사들도 살아날 수 있다. 부동산 경기가 반등하지 않으면 PF 관련 부실은 더 커지고 확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올해 부동산 시장은 거래 부진 속 위기로 시작했다. 금리 인하가 부동산 경기를 살리는 해법이 될 수 있지만 한국은행은 충분히 물가가 하락하지 않을 경우 긴축을 지속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사실상 시장을 살릴만큼 충분한 금리 인하는 없으리라는 관측이다. 가계대출을 늘리는 정책도 쉽지 않다.
이에 가장 중요한 건 정부의 행보다. 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PF 부실이 전반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전망이다. 건설업계 특성상 일부 업체에서 발생한 자금 리스크는 전체 업계에 영향을 끼친다.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형 건설사들의 돈맥경화는 심각해질 수 있다. 도미노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묻지마 지원을 해서는 안된다. 사업성이 없는데 무리하게 PF 대출을 일으켜 부실을 키운 업체들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PF 대출 및 부동산 금융시장 재구조화를 통한 옥석가리기에 돌입해 부실을 만든 기업과 금융사들이 책임을 지워야 한다. 건설업계가 한동안 어려움을 겪더라도 그래야만 건설업은 물론 부동산 금융시장이 바로 설 수 있다.
작년 1월 건설부동산 부장을 맡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바로 '위기'였다. 작년만 버티면 올해는 분명 상황이 나아질 것이란 기대감으로 버텼다. 하지만 연말부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더니 PF 위기가 현실화됐다. 기대감은 올해 경기도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위기감으로 반전됐다. 부디 이렇게라도 부실을 털고 건전한 전성기가 다시 오길 바래본다.
김경환 건설부동산부장 kennyb@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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