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사람의 척도로 풀어낸 기후변화의 시간

한겨레 2024. 1. 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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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우리말 '해'가 태양과 일 년을 모두 의미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시간의 마디를 만들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이것을 기준 삼아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을 생각해 보는 일.

사람들은 매해 이것을 반복하며 한 해라는 시간 감각을 몸에 익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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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물에 대하여
안드리 스나이르마그나손 지음, 노승영 옮김 l 북하우스(2020)

새해가 밝았다. 우리말 ‘해’가 태양과 일 년을 모두 의미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지구에서 바라본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 삼아 흘러가는 시간을 쪼개고 묶어 하루, 한 달, 또 일 년을 만들어 냈다. 시간의 마디를 만들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이것을 기준 삼아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을 생각해 보는 일. 사람들은 매해 이것을 반복하며 한 해라는 시간 감각을 몸에 익힌다.

태양이 아니라 얼음이 시간 기준이 된다면, 우리의 시간 감각은 어떻게 달라질까? 아이슬란드의 작가이자 환경운동가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은 ‘시간과 물에 대하여’에서 사람의 시간과 빙하의 시간을 느슨히 엮어낸다.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이 남긴 자료를 살펴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기후변화의 모습을 드러낸다. 할아버지가 바트나예퀴들 빙하 바우르다르붕카산에서 눈에 파묻힌 미군 수송기를 구조했던 이야기나, 아이슬란드 빙하연구회에 소속되어 바트나예퀴들 빙하로 탐사 겸 신혼여행을 떠났던 조부모의 이야기에서 눈과 얼음은 빠질 수 없는 존재다. 뒤이어 마그나손은 2019년에 아이슬란드에서 최초로 사라진 오크 빙하의 추도사를 썼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영원한 흰색 거인”으로 남을 줄 알았던 빙하도 젊고 아름다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시절만큼 덧없이 사라졌다.

마그나손은 가족들의 이야기로 기후변화의 시간을 감각시키고자 한다. 2008년에 태어난 마그나손의 딸은 1924년에 태어난 마그나손의 할머니, 그리고 2092년 정도에 태어날 딸의 증손녀를 잇는 260여년의 시간에 걸쳐 관계를 맺고 기억될 것이다. 아흔을 훌쩍 넘겨 두 번의 전쟁과 사회변화를 지켜본 할아버지는 지난 10년의 변화가 가장 컸다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긴 시간과 변화의 가속도는 사람의 척도로 환산되어 비로소 구체화된다.

그리고 독자는 자연스레 빙하의 시간에 인간의 시간을 대입한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긴 시간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삶의 일부였던, 그리고 지구의 기후를 조절했던 빙하는 빨라지는 변화 속에서 어떤 모습을 하게 될 것인가?

‘시간과 물에 대하여’는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로 가장 지구적인 위기를 논한다. 마그나손은 기후변화가 ‘백색잡음’ 혹은 ‘블랙홀’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들리나 들리지 않고, 존재하나 보이지 않는 것. 대부분의 사람에게 기후변화는 무색무취의 무언가다. 과학자들은 “숫자를,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수백만 종의 동물들을, 수백만 년 동안 없었던 가장 빠른 변화”를 이야기하며 기후변화를 손에 잡히는 무언가로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한 기후변화 회의에서 마그나손이 목격한 것은 “일종의 집단 무감동”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기후변화 “그 너머로, 옆으로, 아래로, 과거와 미래로 가는 것, 개인적이면서도 과학적인 태도로 신화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만이 이 주제에 대해 쓰는 방법이라 강조한다. 과학의 언어보다는 이야기가 가진 힘을 믿는 이 책은 개인의 삶이 기후변화와 켜켜이 얽혀 있음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이코노미스트’가 “기후위기에 관한 많은 책 중에서도 단연 특별하고 강렬한 책”으로 평가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강연실 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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