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여성 세밀화가 겸 식물·곤충학자의 대표작 [책&생각]

최재봉 기자 2024. 1. 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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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지빌라 메리안(1647~1717)은 선구적인 여성 화가이자 식물학자·곤충학자였다.

여성에게 교육 기회가 부족했고 여성 화가에 대한 편견이 있던 시기에 메리안은 세밀화에서 일가를 이루었으며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식물학과 곤충학 분야에서 불후의 업적을 남겼다.

메리안의 곤충 세밀화의 특징은 하나의 그림 안에 애벌레, 번데기, 성충의 모습을 모두 담았고 곤충의 먹이가 되는 식물을 함께 그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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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살 넘어 떠난 수리남 관찰여행
더위와 풍토병과 싸우며 기록한
애벌레와 곤충의 생리와 변태
화려한 채색 동판화와 글에 빼곡
주민들이 ‘미스펠 나무’라 부르는 나무에서 발견한 애벌레와 그 애벌레를 집으로 가져와 번데기를 거쳐 얻은 나비. “형언하기 어려우리만치 아름다웠다.” 나무연필 제공

수리남 곤충의 변태
과학적 지성과 예술적 미학을 겸비한 한 여성의 찬란한 모험의 세계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지음, 금경숙 옮김 l 나무연필 l 3만3000원

새로운 꽃 그림책
피어오르는 자연과 의지로 가득한 예술의 우아한 대결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지음, 허정화 옮김l 나무연필 l 1만5000원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1647~1717)은 선구적인 여성 화가이자 식물학자·곤충학자였다. 여성에게 교육 기회가 부족했고 여성 화가에 대한 편견이 있던 시기에 메리안은 세밀화에서 일가를 이루었으며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식물학과 곤충학 분야에서 불후의 업적을 남겼다. 특히 그는 쉰두 살 나이에 당시 거주하던 네덜란드에서 뱃길로 두 달 남짓 걸리는 남아메리카 수리남으로 관찰 여행을 떠났으며 그곳에서 2년 가까이 현지의 식물과 곤충을 관찰한 결과를 글과 그림에 담은 책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럼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잊혔던 그의 존재는 20세기 말에 들어 ‘여성’ 과학자에 대한 관심 속에 망각의 늪에서 건져 올려졌다. 독일의 지폐와 우표에 그의 얼굴이 들어갔고, 마거릿 애트우드는 소설 ‘홍수의 해’에서 그를 성인(聖人)으로 등장시키기도 했다.

‘새로운 꽃 그림책’에 실린 팬지 꽃 그림. 나무연필 제공

‘수리남 곤충의 변태’는 메리안이 1699년에서 1701년까지 수리남에 머무르며 관찰하고 기록한 결과를 담아 1705년에 펴낸 책이다. 책에는 식물과 곤충의 모습을 담은 60점의 채색 동판화와 글이 실렸는데, 90여 가지의 애벌레와 굼벵이, 구더기가 어떻게 탈피하여 색깔과 형태가 변하며 종국에는 나비, 나방, 딱정벌레, 벌, 파리 등으로 변하는지가 상세히 담겼다. 메리안은 자신의 집 정원에서 발견한 식물과 곤충을 채집·관찰한 것은 물론 사람이 다니지 않는 깊은 숲속으로 답사를 다녀오기도 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유언장을 써 놓고 여정에 올랐던 그는 열대의 무더위와 풍토병 때문에 계획했던 3년을 채우지 못하고 2년 만에 귀국해야 했다. 비용 때문에 망설이다가 귀국 4년 만에야 펴낸 책은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를 비롯해 나라 안팎 독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그가 그린 식물 및 곤충 수채화도 큰 인기를 끌었다.

난쟁이 엉겅퀴의 뿌리를 먹고 있던 작은 굼벵이(그림 왼쪽)와 그 굼벵이가 변태한 노란 얼룩무늬 딱정벌레(아래). 썩은 나뭇조각에서 발견한 다른 종류의 굼벵이(그림 가운데)는 오른쪽 위에 보이는 형태를 거쳐 가운데 오른쪽에 보이는 진한 색 딱정벌레로 서서히 변했다. 나무연필 제공

메리안의 곤충 세밀화의 특징은 하나의 그림 안에 애벌레, 번데기, 성충의 모습을 모두 담았고 곤충의 먹이가 되는 식물을 함께 그렸다는 점이다. 가령 무화과나무를 배경으로 한 그림에는 “3월22일, 노란 줄무늬가 있는 초록색이던 애벌레의 온몸이 붉은 줄무늬가 있는 꽈리색으로 변했다. 머리와 꽁무니는 검은색이 되어, 이전 모습과는 전혀 닮은 데가 없었다”는 서술에 이어 이 애벌레가 다갈색 번데기를 거쳐 4월12일에 아름다운 갈색 나방으로 변신하는 과정이 담겼다. 수박 잎사귀에 붙어 사는 특이한 애벌레에서 평범한 나방이 나오는 모습을 관찰한 뒤에는 “가장 아름답고 독특한 애벌레가 가장 평범한 곤충으로 변하고, 가장 평범한 애벌레가 가장 아름다운 나방과 나비로 변하는 일을 나는 수차례 보았다”는 보고를 내놓기도 한다. “형언하기 어려우리만치 아름다웠다. 붓으로는 그 아름다움을 흉내 내지 못한다”며 나비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표하는가 하면, “이 식물은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글과 그림으로 소개한 적이 없다”며 자신의 ‘발견’에 자부심을 표하는 대목도 있다.

네덜란드의 정물화가였던 새아버지 야코프 마렐이 그린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초상’(1679). 나무연필 제공

‘수리남 곤충의 변태’와 함께 나온 ‘새로운 꽃 그림책’은 메리안이 출생지인 독일에서 출간한 꽃 그림책 세 권을 한데 묶어 1680년에 낸 책이다. 메리안은 이 책들 말고도 ‘애벌레의 경이로운 변태와 독특한 꽃 먹이’ 1·2권을 역시 독일에서 출간한 뒤 1685년 네덜란드로 이주했으며, 1717년 그가 숨진 뒤에는 딸이 마무리한 ‘애벌레의 경이로운 변태와 독특한 꽃 먹이’ 제3권이 나왔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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