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가자지구에서 죽은 열셋의 문인 그리고 송경동

임인택 기자 2024. 1. 5.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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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 이후 가자지구내 사망한 팔레스타인인 가운데 시인, 소설가, 작가도 최소 13명에 이른다는 집계(미국 문학 전문웹 리터러리허브)가 나왔다.

그중 시인이자 활동가·교수인 리파아트 아르이르가 북 가자지구에서 공습으로 숨진 건 지난달 6일이다.

향년 44. 전달 공습 중에도 의연히 학생들과 시 수업하는 그의 모습을 뉴욕타임스가 타전하기도 했다.

올봄도 어느 거리에선 그를 부를 테지만 시인은 이미 당도해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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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23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베들레헴의 구유 광장에서 한 여성과 어린이가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촛불을 켜고 있다. AP 연합뉴스

내일 다시 쓰겠습니다
송경동 지음 l 아시아 l 1만원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 이후 가자지구내 사망한 팔레스타인인 가운데 시인, 소설가, 작가도 최소 13명에 이른다는 집계(미국 문학 전문웹 리터러리허브)가 나왔다. 그중 시인이자 활동가·교수인 리파아트 아르이르가 북 가자지구에서 공습으로 숨진 건 지난달 6일이다. 향년 44. 전달 공습 중에도 의연히 학생들과 시 수업하는 그의 모습을 뉴욕타임스가 타전하기도 했다. 11월초 올린 그의 시 한 편은 죽음을 전후하여 40개 언어로 에스엔에스 등을 통해 퍼졌다. 우리 말로 처음 번역하자면 이러하다.

“내가 죽어야 한다면,/ 당신은 살아주오/ 내 이야기를 전해야지/ 나의 물건들을 팔아야지/ 천 조각을 사야지/ 끈 몇 개도,/ (긴 꼬리를 달아 하얗게 만들지)/ 가자 어딘가 아이 하나가 / 하늘을 바라보며/ 화염 속에 사라진 아빠를 기다리지/…/ 그 연, 당신이 만든 나의 연이 날아오르지/ 그리고 잠시 생각해, 천사가 거기 사랑을 되찾아준다고/ 내가 만약 죽어야 한다면/ 그걸로 희망을 가져다주오/ 그걸로 이야기를 지어주오”
팔레스타인의 시인이자 활동가, 교수로 전쟁 중에도 가자 이슬람 대학에서 시를 가르쳤던 리파아트 아르이르. 지난해 11월26일 “나는 살아있다(I am alive)”며 올린 인스타그램 사진 갈무리. 그는 그리고 열흘 뒤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숨졌다. 향년 44.

시참이 된 노래에 감응된다면, 아마도 산 자들에 당부된 몫 때문이다. ‘연’은 인연이고 책임이다. 거리의 시인 송경동의 거처이기도 해서, 새 시집 함께 읽어볼 만하다. 시인에겐 희망도 낭만적 권리가 아닌, 비장한 책무다.

“희망은/ 의무를 동반하지//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한다는 건/ 어떤 절망에도 굴하지 않고/ 행동하겠다는 굳은 약속이/ 필연적으로 포함되어 있지// 사랑을 꿈꿀 때/ 모든 걸 거는 것처럼/ 행동이라는 의무를 자임하지 않는/ 모든 희망은 가식이지”

여러 노래들이 절정으로 날아오른다면, 송경동의 시는 절개로 뛰어내린다. 절망과 죽음에 대한 의리랄까. 저 죽음을 기억해 이 죽음을 막겠다는 “철부지” 근성. 블랙리스트, 세월호·용산·이태원 참사는 여전한 그의 현장이고, 억압과 폭력이 자행되는 국제무대로도 그는 이제 뛰어내린다.

“영웅도 겁쟁이도 되지 않겠다고 했던/ 미얀마 시인 켓티는/ 2021년 5월8일 쿠데타군에 끌려간 다음 날/ 살해당한 채 노상에서 발견되었다// 쿠데타군은 그의 시신에서/ 심장을 떼어내고 버렸다/ 켓티는 생전에 “그들은 머리에 총을 쏘지만/ 혁명은 심장에 있다는 걸 모른다”고 썼다// ‘A는 B다’라는/ 은유의 깊은 뜻을 모르는 악령들을 가르치는 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젠 내가 켓티다’라고 얘기해주는 것이다”

이런 시가 누군가 그토록 희구하는 연 하나 되지 않을 까닭이 없다. 송경동의 시는 편파적이라 자연도 사랑도 낙관도 “빠져 있”는 것투성(‘한 시절 잘 살았다’)이지만 질긴 것 하나는 제일이니 말이다.

“늘 주변을 챙기는 지인이/ 봄 왔으니 예쁜 스카프 하나씩 나눠 갖자고/ 아홉 장을 챙겨 와서/ 여러 쓰임에 대해 얘기해준다// …// 그러나 한심한 나는 그게 자꾸/ 집회 시 경찰채증 방지용 얼굴 가리개로만 보인다// 사는 바에 따라/ 비로소 맞는 봄의 쓰임도/ 이렇게 각기 다르다”

올봄도 어느 거리에선 그를 부를 테지만 시인은 이미 당도해 있을 거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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