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세상 가득 눈(雪)을 다른 눈(目)으로 볼 때

한겨레 2024. 1. 5.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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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글' 계간지 '매거진 피치' 2호는 '누구나 시를 읽고 쓸 수 있다'고 말한다.

경계성 지능, 발달장애 청소년, 새로운 정보나 기술을 배울 수 없어 문자해독능력이 부족한 이들 등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시를 읽고 쓸 수 있다는 말에는 그러니까 시를 읽고 쓰는 일에 적합성을 따지지 않는 사회, 삶을 다루는 예술 작업에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사회를 형성해나가야 한다는 의미까지 담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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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빛
배지호 지음 l 계간 매거진 피치 2호(2023)

‘쉬운 글’ 계간지 ‘매거진 피치’ 2호는 ‘누구나 시를 읽고 쓸 수 있다’고 말한다. 언뜻 받아들이기 만만할 수 있지만, 알고 보면 급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어 허투루 읽히지만은 않는 말이다. 시를 어렵게 느끼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막막한 이들에게, 혹은 시는 재능을 타고난 예술가만이 쓸 수 있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시를 읽고 쓰는 존재로 ‘누구나’를 상정하기란 쉽지 않다. 저 말이 선선하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여러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먼저, 시에 대한 장벽 허물기. 시가 알쏭달쏭한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주어진 문제에 답을 찾듯이 읽지 않아도 되는 게 곧 시이다. 이는 아무리 읽어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싶은 바로 그 순간이 시를 제대로 읽는 중이란 얘기이기도 하다. 시는 시 구절을 앞에 두고 막막해하는 독자가 그런 자신을 돌아보면서 그간 스스로가 막힘없이 이해해왔던 것은 무엇인지, ‘내가 모른다’고 했던 건 무엇인지 오래 생각하도록 이끄는 자리를 마련한다. 때때로 우리는 말에 담긴 사전적 의미를 몰라서라기보다는 지금까지의 삶이 낯설게 느껴지도록 맥락을 형성해주는 말 앞에서 더 어려움을 느낀다. 시는 그 미지와 곤혹의 순간을 삶의 새로운 발견과 모험의 계기로 돌려놓는다. 그러니 지금의 삶을 소중히 다루면서 그로부터 다른 삶으로 용감하게 나아갈 줄 아는 이라면 누구나 시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는 의미에서, 그러한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모두를 우리는 시인이라 부른다. ‘매거진 피치’ 2호에 실린 다음 시를 읽는다.

“나는 겨울에 오는 눈이/ 내리는 빛이라고 생각했다./ 바닥에 있을 때는 빛처럼 반짝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투명해지는 것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겨울에 내리는 눈은 빛과 같지만/ 다르게 보면 희망처럼 볼 수도 있다” (‘하나의 빛’ 전문)

시에서 화자가 “눈”을 일컬어 “내리는 빛”이라고 말하는 순간, “눈”은 어두컴컴한 곳에서부터 지상으로 다가오는 적극적인 존재가 된다. “내리는 빛”에 의해 지상의 풍경은 암전으로 얼어붙은 공터가 아닌 환한 장면이 서린 장소로 상상되는 것이다. 마치 세상을 향해 누군가가 커다란 성냥을 켜고, 일순간 그 주위가 고요하게 밝아오는 것 같다. 더불어 이 세상을 ‘하나의 빛’으로 끝까지 감싸려는 이들의 바람이 거기에 깃들어, 그 밝기가 “투명”한 맑기를 가질 때까지 온기를 남기는 것 같다. 이를 시인은 “희망”이라 이름 짓는다. 세상을 채운 눈(雪)을 향해 다른 눈(目)을 뜨고 볼 때, 우리는 차디찬 겨울에도 투명한 희망을 길어 올릴 수 있다.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눈’을, 우리는 이 시에서 만난다.

‘피치 매거진’이 말하는 ‘누구나’에는 ‘이해하기 쉬운 글과 정보가 필요한 이들’ 모두를 포함한다. 경계성 지능, 발달장애 청소년, 새로운 정보나 기술을 배울 수 없어 문자해독능력이 부족한 이들 등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시를 읽고 쓸 수 있다는 말에는 그러니까 시를 읽고 쓰는 일에 적합성을 따지지 않는 사회, 삶을 다루는 예술 작업에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사회를 형성해나가야 한다는 의미까지 담긴 셈이다. 예술 현장의 다양한 시도는 언제나 민주주의의 실천과 이어져 있다.

양경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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