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인문의 힘으로 민주주의 위기를 넘어

고명섭 기자 2024. 1. 5.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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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기대작-학술·지성
우리 시대 최전선에 선 철학부터
인류사의 고전 번역·해설서까지
자본주의와 생태위기 극복 방안
동아시아 분석, 한반도 평화론도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우리 시대를 새롭게 해석하는 최신의 철학 저작, 우리의 생각을 깊게 해줄 인류 고전의 번역서와 해설서, 그리고 자본주의 이후를 모색하고 민주주의와 생태 위기를 숙고하는 책들이 새해 독자를 찾는다.

한길사에서 펴내는 책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미쉬나’다. 히브리어로 ‘공부’를 뜻하는 ‘미쉬나’는 ‘구약성서’, ‘탈무드’와 함께 히브리-유대학의 3대 고전에 속한다. 오래전부터 구전돼오던 랍비들의 가르침을 모은 책이며 3세기 초에 집대성됐다. 유대인들의 신앙과 종교, 정신과 사고, 법과 도덕, 생활과 문화가 녹아 있다. 모두 여섯 권으로 이루어진 이 저작을 유대학·성서학·고대근동학을 전공한 연구자들이 한 권씩 맡아 번역하고 상세한 주석과 해설을 붙여 국내 최초로 펴내는 기념비적 작업이다. 여기에 ‘미쉬나’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한 권의 개론서가 더해져 모두 일곱 권으로 출간된다.

한길사에서 내는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책은 구조주의 인류학을 창시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신화학 4: 벌거벗은 인간’이다. 남북아메리카 원주민 신화를 독창적으로 해석하는 신화학 4부작의 마지막 저작이다. 이보다 앞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분석한 프랑스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의 ‘클라우제비츠 완성하기’도 1월에 한길사에서 선보인다. 한국칸트학회가 기획한 ‘칸트 전집’ 열네 번째 책으로 국내에 처음 번역되는 ‘서한집’도 한길사의 주목할 만한 책이다.

브뤼노 라투르의 철학을 바탕에 두고 ‘종교적 은혜’를 새롭게 설명하는 ‘사변적 은혜: 브뤼노 라투르와 객체지향 신학’(애덤 밀러 지음)이 갈무리 출판사에서 나온다. 마찬가지로 갈무리에서 나오는 ‘저주체: 인간 되기에 관하여’(티머시 모튼, 도미닉 보이어 지음)도 눈길을 끈다. 저주체(hyposubject)는 이제까지 세상을 지배한 ‘초주체’에 맞서는 인간형이다, “저주체는 필연적으로 페미니즘적이고 반인종차별주의적이며 다인종적이고 퀴어적이며 생태적이고 트랜스휴먼이자 인트라휴먼이다.” 갈무리에서 나올 또 다른 저작 ‘객체란 무엇인가: 객체에 관한 신유물론적 이론’(토머스 네일 지음), ‘사물의 통치: 푸코와 신유물론’(토마스 렘케 지음)이 신유물론 르네상스를 알린다. 신유물론과 함께 철학 최전선에 선 신실재론 저작으로는 열린책들에서 나올 ‘허구의 철학’(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이 주목할 만하다. 독일의 젊은 철학자 가브리엘은 허구와 실재의 잘못된 대립을 바로잡고 실재하는 우리 삶의 영역을 올바로 인식해야 함을 치밀한 논리로 설득한다.

악셀 호네트.

사월의책이 역점을 두는 책은 독일 비판이론 3세대의 대표자 악셀 호네트의 ‘자유의 권리’다. 사회적 통합의 원리로서 자유를 재정초한 역작이다. 평등의 민주적 원리에 기초한 자유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자유임을 역설한다. 21세기 프랑스 인류학의 최고 걸작으로 불리는 필리프 데스콜라의 ‘자연과 문화를 넘어서’도 사월의책에서 나온다. 데스콜라는 자연과 문화의 이원론이 서구만의 개념일 뿐만 아니라 최근에 발명된 개념임을 입증하고, 서구식 자연 인식이 어떻게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라는 위기를 낳았는지 이야기한다.

필리프 데스콜라. 위키미디어 코먼스

‘니체 전집’을 낸 책세상 출판사는 국내 니체 연구 권위자 정동호 전 충북대 교수가 니체 문서고의 자료를 바탕으로 삼아 니체의 독서 이력을 추적한 ‘니체의 서재’를 낸다. 또 국내 니체 연구자들이 모여 니체 저작별 해설서 시리즈를 펴낸다. ‘도덕의 계보’ 해설서가 그 첫 책이 될 예정이다. 그린비 출판사는 프랑스 작가 모리스 블랑쇼의 ‘무한한 대화’로 ‘블랑쇼 선집’을 15년 만에 완간한다.

다석 유영모.

도서출판 길은 지난해 예고했던 대작들을 올해 상반기에 출간한다. 먼저 이정우 경희사이버대 교수의 ‘세계철학사’가 ‘현대편’ 출간과 함께 모두 네 권으로 완간된다.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신학: ‘형이상학’ 제12권의 번역과 주석’도 200자 원고지 1만2000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올봄 독자를 맞는다. 또 ‘막스 베버 선집’을 번역하고 있는 김덕영 교수가 ‘직업으로서의 과학/직업으로서의 정치’를 새롭게 번역해 상세한 해제와 역주 작업을 거쳐 선보인다. 20세기 한국의 종교사상가 다석 유영모가 1955년부터 쓴 ‘다석일지’(전 3권)가 정양모 신부의 주해 작업을 거쳐 도서출판 길에서 나온다.

막스 베버.

한국과 동아시아의 전통사상에 대한 탐구와 재해석을 담은 묵직한 책들도 출간된다. 글항아리에서 나올 ‘다산 논어’(김홍경 지음)는 다산 정약용이 저술한 ‘논어고금주’를 한자 한자 꼼꼼하게 짚어가며 다산의 논어 읽기 실체에 다가가는 1300쪽에 이르는 방대한 연구서다. 이 연구서는 ‘논어고금주’에 제시된 주장에 기반해 ‘논어’ 전문을 한글로 옮긴다. 돌베개 출판사는 ‘원본 열하일기’(김혈조 교감)를 펴낸다. 연암 박지원의 걸작 ‘열하일기’는 정본으로 확정된 텍스트가 없다. ‘원본 열하일기’는 국내외의 수많은 ‘열하일기’ 이본과 대조하여 ‘열하일기’의 본디 모습을 복원하고 원본의 오류까지 찾아내 바로잡은 교합본이다. 돌베개는 중국 신좌파 지식인 그룹의 대표자 왕후이의 ‘현대중국사상의 흥기’(전 4권)도 펴낸다. 창비 출판사는 ‘한국사상선’(백낙청·임형택·최원식·백영서 외 엮음) 1차분 10권을 펴낸다. ‘한국사상선’은 계간 ‘창작과비평’ 60돌을 맞는 2026년까지 모두 30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최초의 세계사인 ‘라시드 앗 딘의 집사’(전 5권)를 펴낸 사계절 출판사는 ‘한 권으로 읽는 집사’를 펴낸다. ‘집사’ 한국어본을 완역한 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명예교수가 칭기즈 칸에서 시작하여 가잔 칸으로 이어진 몽골제국 200년사 가운데 역대 주요 제왕의 활약과 제국의 흥망성쇠를 드라마틱하게 옮긴다. ‘중화와 이적’도 사계절 출판사의 야심작 가운데 하나다.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가 조선 전기와 후기의 경계선에 있는 병자호란에 새롭게 접근해, 인조와 홍타이지가 주고받은 문서의 폭발성을 추적하고, 병자호란의 결과로 재구성된 조선의 정체성이 우리의 현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까지 분석한다.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할 방안을 찾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분석한 책들도 나온다. 글항아리에서 내는 ‘보수주의’(에드먼드 포셋 지음)는 19세기부터 오늘날의 미국-유럽 강경 우파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보수주의의 실상을 신선하고도 날카롭게 해부한다. 갈무리 출판사의 ‘희망 없는 시대의 희망’(존 홀러웨이 지음)은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 에른스트 블로흐(‘희망의 원리’)를 이어 희망의 가능성과 원리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오월의봄 출판사는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에서 착상을 얻은 ‘야망계급론’(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 지음)을 낸다. 오늘날 부유층은 물질적 소비보다 정신적 소비로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고자 하는 ‘야망계급’이다.

너머북스는 미국 예외주의를 뒤집는 새로운 미국 제국사 ‘아메리칸 엠파이어’(A. G. 홉킨스 지음)를 펴낸다. 어크로스 출판사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쓴 스티븐 레비츠키와 다니엘 지블렛의 신작 ‘소수의 폭정’을 펴낸다. 소수의 독재가 어떻게 파국을 부르는지 해부한다. 에코리브르가 펴내는 ‘상처받은 자유: 자유지상주의적 권위주의의 양상들’(카롤린 암링거, 올리버 나흐바이 지음)은 자유지상주의와 권위주의가 결합하는 양상을 독일의 현실 정치를 자료로 삼아 분석한다. 이음 출판사는 사회학자 김홍중 서울대 교수의 ‘미래의 분열분석: 21세기 사회이론의 대안을 찾아서’를 펴낸다. 코로나19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 인류세의 현실을 통해 인간과 성장 중심의 관점으로 세상을 읽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동아시아와 한국의 정치 현실을 분석하는 책들도 나온다. 책과함께가 펴내는 ‘일본은 왜 독일과 달리 이웃 국가와 화해하지 못하는가’(월터 해치 지음)는 일본이 주변국과 화해하지 못한 배경에 미국이 있다고 주장한다. 한겨레출판에서 펴내는 ‘다시 보는 한반도 평화론’(문정인 지음)은 윤석열 정부의 ‘평화론’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한반도에 꽃 피워야 할 진짜 평화는 어떤 형태여야 하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조목조목 이야기한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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