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생태성 복원하는 한해가 되길
모든 생명체 유기적으로 관계 맺어
현시대, 성장 거치며 각자도생 치열
의지하고 보듬는 삶의 생태성 잃어
외면·방심하면 회복 기회 없을수도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었으니, 그새 오십년도 훌쩍 넘은 기억이다. 그럼에도 그때의 기억은 내 몸과 마음에 화인처럼 남아 자주 눈앞에 떠오르곤 한다. 나는 충청도 시골에서 태어나 아홉살 때까지 살았다. 그 어느 해 겨울의 일이었다. 옆집 할아버지가 초저녁에 밖으로 나가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이 마을에 퍼졌다. 그러자 이 집 저 집에서 남자들이 몰려 나와 저마다 손에 횃불을 들고 할아버지를 찾아나섰다. 나도 삼촌의 손을 잡고 그들의 뒤를 따라 구석구석 헤매고 다녔다. 새벽녘에야 사람들은 개울 건너에 있는 아무개 집에서 태연히 잠들어 있는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먹물 같은 어둠 속에서 꿈처럼 몰려다니던 그 횃불의 휘황한 행렬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중에 커서야 들었는데 당시 그 할아버지는 치매를 앓고 있었다고 한다. 그날을 떠올릴 때마다 여지없이 가슴이 숯불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곤 한다. 소설가로서 이때껏 써온 글도 어쩌면 그 밤의 장엄한 광경에 가닿기를 갈망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싶은 것이다.
수구초심이라고 했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쩍 어렸을 때 시골에서 살았던 기억들이 생각나곤 한다. 여름의 푸르른 논에 하얗게 내려와 있던 황새들, 고기를 잡으며 놀 때 보았던 개울의 눈부신 반짝임, 뽕나무밭 저편에서 들려오던 아낙네들의 노랫소리, 쟁기를 끌며 밭을 갈던 마을 아저씨의 뒷모습, 추수가 끝난 뒤 서리가 내린 들판, 눈이 내리고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가는 계절이 되면 나는 외양간에서 소가 푸우 하고 숨을 몰아쉬는 소리를 들으며 안도감 속에서 잠이 들곤 했다.
그렇게 나는 자연에서 성장했고 그것이 그대로 내 삶의 원형을 형성했다. 그것이 축복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이십대 후반에 소설가가 되고 나서였다. 계절의 순환에 따른 소멸과 생장의 주기를, 생명의 아름다움과 생태의 원리를 이미 유년기에 체득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생태란 모든 생명체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며, 그중 하나에 변화가 생기면 연쇄적으로 주변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경제 개발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에 도시로 나와 살게 되면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다섯번의 전학을 다녔고,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에 세상의 각박함을 일찌감치 경험했다. 1980년대에 이십대를 보내면서도 온전한 행복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늘 삶에 치여 사는 부모의 고단한 얼굴을 바라보는 게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오직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1990년대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시대는 유독 사회적 재난이 자주 발생했다. 다리와 백화점이 무너지고 유람선이 불타고 이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쳤다. 이후 무한 경쟁의 신자유주의 시대 속 세상은 더욱 각박해졌다. 그리고 우리는 바야흐로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고 지배하는 4차산업혁명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문제는 세대간 계층간 갈등, 가족의 해체, 출산율의 급격한 저하, 인구 소멸로 인한 농촌 공동체의 붕괴, 심각한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에서 비롯된 재난들이다. 이는 우리나라에 근대화가 시작되고 나서 대략 100년 사이에 발생한 현상들이다. 그렇게 가시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사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삶의 생태성이 파괴됐고, 연령과 무관하게 삶의 만족도가 지극히 낮은 상태에서 이제 남은 것은 각자도생뿐이다. 서로가 생존 경쟁의 대상이기에 과거 공동체의 미풍양속이라든가 관용과 선의와 환대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시대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돌아보면 우리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욱 많은 삶을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환경오염과 기후재난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됐고 모두가 나서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더불어 우리 삶의 생태성도 회복해야만 한다. 외면하고 방심하다 보면 더 이상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변하게 마련이지만, 사람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우리는 저마다 믿고 의지하며 서로를 보듬으며 살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 이것이 바로 삶의 생태성이고 삶의 변함없는 원리이기도 하다.
어려서 고향을 떠난 뒤 다시 찾은 것은 몇년 후였다. 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려 고향으로 향하면서 나는 줄곧 마음이 설렜다. 가장 그리워했던 것은 푸른 논배미에 하얗게 내려와 있는 황새들과 하늘에 촘촘히 밝혀 있는 별들이었다. 읍내 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한데 마을로 걸어 들어가면서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곳곳에 서 있는 전봇대의 불빛이었다. 마을에 근대화와 산업화의 상징인 전기가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순간 나는 낙원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작고한 소설가 박완서 선생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자연이 한 일은 모두 옳았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과 하나인 존재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만물일여(萬物一如·모든 것은 하나)라고 한다. 또한 그 일체성의 아름다움을 세계일화(世界一花·세계는 한송이의 꽃)라는 선적(禪的) 언어로 표현한다.
내가 유년기에 경험한 그 밤의 풍경은 더 이상 재현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과거의 신화적 이미지로만 흐릿하게 남게 되리라. 그렇다 해도 우리는 숨이 다할 때까지 서로 기대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생의 존재들이다. 그러기에 모두가 스스로 마음의 불을 밝히고 서로의 삶을 밝혀야 한다. 더는 늦지 않게 삶의 생태성을 건강하게 회복해야 한다. 부디 그런 한해가 되기를 간구하며 부족한 글을 맺는다.
윤대녕 소설가·동덕여대 교수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