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탁 점령한 수입 먹거리…식량안보가 흔들린다 [2024 농업·농촌 6대 과제]
하루 밥 한공기 반…쌀 소비량 급감
빵·면 소비 꾸준히 늘어 밀 수입 증가
외국서 들여오는 축산물·과일 폭증
돼지고기 수입량 20년새 5배 육박
국산 설자리 잃으며 농가도 감소세
식량자급률 50%도 못넘어 ‘경고등’
#2002년 A씨의 삼시 세끼
아침 7시, A씨는 온 가족과 식탁에 둘러앉아 흰쌀밥에 콩나물국과 김치·나물·김을 곁들여 식사를 했다. 점심은 회사 근처 백반집에서 해결했다. 그의 선택은 흰쌀밥에 얼큰한 김치찌개. 큼직한 돼지고기가 든 김치찌개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저녁은 특식이다. 짭짤한 양념에 조린 한우갈비다. 신선한 상추에 밥과 갈비, 마늘과 고추까지 야무지게 올려 싸 먹었다.
#2023년 B씨의 삼시 세끼
B씨의 아침은 커피와 빵이다. 입 안이 까끌까끌해 아침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은 지 꽤 됐다. 대신 점심때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닌다. 주로 이탈리아산 크림소스나 프랑스산 버터가 든 파스타·피자를 즐긴다. 살을 빼고 싶어 저녁엔 주로 샐러드를 먹는다. B씨는 하루에 쌀밥을 한번도 먹지 않는 날이 많은데 주변 지인들도 비슷하다.
오늘 하루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떠올려보자. 흰쌀밥과 김치로 차린 ‘한식’이 있었는지. 쌀밥에 고깃국, 김치와 나물 반찬을 먹었다면 우리농산물을 먹은 것일까. 외국산 재료로 차린 한식은 진짜 한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신토불이’는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중국산 김치, 브라질산 닭고기, 미국산 쇠고기 등 수입 농축산물이 우리 밥상을 차지하고 있다. 식생활도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주식으로 밥 대신 빵·면을 먹거나 체중 조절을 위해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는 이들이 많다. 해외 식문화가 활발히 유입되면서 외국 먹거리를 찾는 모습이 더이상 낯설지 않다. 우리농산물의 위기다.
한식의 대표 메뉴인 흰쌀밥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통계청의 양곡소비량조사에 따르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2022년 56.7㎏으로 조사됐다. 전년(56.9㎏)과 견줘 0.4%, 20년 전인 2002년(87.0㎏)과 비교해 34.8% 줄었다. 1인당 하루 쌀 소비량은 2022년 155.5g에 그쳤다. 밥 한공기에 대략 쌀 100g이 들어가는 점을 고려하면 하루에 한공기 반 정도 먹는 셈이다. 이는 1963년 통계를 작성한 이래 가장 적은 양이다.
반면 빵 소비량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빵은 대부분 수입 밀가루로 제조한다는 점이다. 2022년 밀 수입량은 약 270만t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수입 밀은 식품 제조·가공 업체에서 밀가루로 제분돼서 면·빵·과자 제조에 쓰인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축산물이다. 소비량이 증가하면서 가격이 저렴한 수입 축산물을 찾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농식품수출정보(KATI)에 따르면 2022년 돼지고기 수입량은 58만7273t으로 20년 전보다 45만5772t 증가했다. 이는 무려 346.6% 늘어난 규모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추정한 2022년 돼지고기 소비량은 151만여t으로, 우리 국민이 1년 동안 먹은 돼지고기 상당 부분이 외국산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2022년 쇠고기와 닭고기 수입량 역시 2002년보다 각각 41.7%·130.1% 늘었다.
이렇듯 축산물 수입량이 폭발적으로 급증한 이유는 가격이다. 한·호주, 한·캐나다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서 수입 축산물 가격이 낮아졌다. 공격적인 마케팅도 한몫했다. ‘청정한 자연’을 내세운 홍보 전략이 먹히면서 수입 먹거리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이 약해진 탓이다.
그밖에 외국 과일도 흔해졌다. 젊은 세대 중심으로 망고·아보카도·리치 같은 열대과일 인기가 높아지면서 과일 수입량 증가를 이끌었다. 그만큼 사과·배처럼 전통적으로 사랑받던 국산 과일은 그 지위를 위협받고 있다. 소비량이 갈수록 감소하고 재배농가도 덩달아 줄었다.
“우리 몸엔 우리 건데 남의 것을 왜 찾느냐.” 배일호가 부른 노래 ‘신토불이’ 가사다. 건강을 위해 신선한 우리농산물을 먹자는 내용이다. 신토불이는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그 가치가 건강에 국한되지 않는다. 수입 농산물 소비가 늘면 소득이 줄어 농업을 포기하는 농가가 생길 테고 결국 식량자급률이 크게 떨어질 것이다. 식량자급률은 나라의 전체 식량소비량 중 자국산 비율을 뜻한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지속적인 감소세로 2021년 기준 44.4%다. 식량은 생존에 필수적인 것으로 ‘식량안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밀 가격이 급등하면서 위기를 겪은 바 있다. 신토불이를 그저 유행가로만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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