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궁상과 병상 사이에서

관리자 2024. 1. 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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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게 이런 명령문(?)을 전달하는 것으로 2024년을 시작한다.

카드 내역서를 살펴보면 대부분 장보기 비용과 남들에게 밥 산 것, 그리고 각종 대중교통비다.

궁상은 나 자신을 업신여기고 무시하고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이다.

자기 몸과 마음을 돌보지 않다가 병들어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이 한결같이 "나한테 가혹하게 군 것이 가장 후회된다"고 한 말도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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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궁상떨지 말아라!”

나는 내게 이런 명령문(?)을 전달하는 것으로 2024년을 시작한다.

지난 연말에 감기 몸살 탓에 몽둥이로 맞은 듯 삭신이 쑤셨다. 약을 먹어도 근육이 아프기에 안마원에서 안마를 받았다. 안마사는 꾸준히 치료받길 권했다. 계산할 때 보니 10회 비용이 100만원 정도였다. 그날 쓴 비용만 내고 돌아왔다. 호텔 스파나 강남의 에스테틱 비용에 비하면 절대 비싼 금액이 아닌데도 쓰는 데 망설여졌다.

집에 돌아와 홈쇼핑에서 구입한 마사지 기구로 뭉친 어깨를 풀다가 갑자기 자신이 한심해졌다.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골프도 안 치고 명품 수집도 안했는데 왜 내게 필요한 돈마저 쓰는 데 주저할까. 사치나 향락이 아닌 건강을 위해서 쓰는 것인데도 말이다.

카드 내역서를 살펴보면 대부분 장보기 비용과 남들에게 밥 산 것, 그리고 각종 대중교통비다. 장보기 품목도 백수라서 세끼를 챙겨 먹는 남편을 위해 산 반찬, 주류와 안주다. 세살짜리 손자에게 주려고 한우고기나 활전복을 사면서도 내가 먹을 용으론 냉동 수입육을 고른다.

지난해에는 유난히 지방에서 한 강의가 많았다. 경남 남해나 제주 등지를 다녀왔다고 하면 지인들은 “싱싱한 해산물 많이 드셨겠네요” “근처 관광명소도 가보셨어요?”라고 묻는다. 나는 고속도로 휴게소나 공항 푸드코트에서 김밥이나 떡볶이로 끼니를 때웠다. 곧바로 강의장으로 갔고 다시 기를 쓰고 재빨리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을 조절하면 하룻밤 묵으면서 여유롭게 보낼 수도 있는데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우리나라가 후진국이던 시대에 태어나 중진국 시대에 성장했고 선진국 시대에 중장년이 된 내 또래들은 근검절약 정신이 몸에 배어 있다. 개그맨 이영자씨는 호텔 뷔페에 가서 자신도 모르게 갈비나 회가 아니라 김밥을 잔뜩 접시에 담는다며 “몸이 (어린 시절의) 가난을 기억해”라고 말했다. 그런데 나의 소비행태는 가난의 기억이 아니라 ‘궁상’이다.

궁상은 나 자신을 업신여기고 무시하고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은 증거다. 고가의 명품으로 온몸을 휘감거나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수시로 유람선 여행을 가는 것이 나를 사랑해주는 방법은 아니다. ‘사랑’의 사전적 의미는 아끼고 위해주는 것이다. 나는 나를 아끼지 않고 혹사하면서 나를 위해 뭔가를 해주는 것에는 인색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의 취향이 무엇인지, 언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는지, 어떤 상황에 즐거워하는지를 안다. 그런데 나는 상 줘야 마땅할 만큼 성실히 살았는데도 나를 벌주며 살았다.

몸살로 끙끙 앓으면서 ‘궁상떨면 병상 간다’란 말이 실감났다. 자기 몸과 마음을 돌보지 않다가 병들어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이 한결같이 “나한테 가혹하게 군 것이 가장 후회된다”고 한 말도 떠올랐다.

새해 목표는 스스로 던진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것이다. 궁상떨지 않고 나를 존중해주는 것.

“인경씨, 오늘 기분은 어떠신가요? 품위 있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보실까요?”

이렇게 매일 아침 내게 존댓말을 쓰며 하루를 시작하려 한다. 더 늙어서 나를 원망하지 않으려고….

유인경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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